미래의 등불을 밝히자: 타고르와 한용운의 가르침

미래의 등불을 밝히자: 타고르와 한용운의 가르침

<동북아역사재단-아시아엔(The AsiaN) 공동기획>

*편집자 주: 동아시아 지역 안보에 격랑이 일고 있다. 뿌리 깊은 영토분쟁과 민족갈등이 상존하는 가운데 북한 핵 위기 또한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지도부 교체기를 맞아 새로운 질서를 모색 중이다. 아시아엔(The AsiaN)은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기획으로 한·중·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동북아 역사현안 및 갈등 해소 방안을 강구하는 국제전문가 기고 시리즈를 마련했다. 총 8회에 걸쳐 한글·영어·중국어·아랍어 등 4개 국어로 게재되는 이 기고 시리즈는 역내 현안에 대한 아시아 각국 전문가·언론인의 깊이 있는 통찰과 분석, 해법을 제시한다.

[동북아현안 국제전문가기고 시리즈]?② 미래의 등불을 밝히자: 타고르와 한용운의 가르침

인류의 역사는 잔혹한 전쟁과 정복, 만행으로 점철돼 왔다. 대부분의 고대 아시아 국가들은 영토나 다른 물질적 이익을 노린 이(異)문화권의 침략을 받았다.

그러나 부처가 말했듯이 “모든 것은 변하며, 늘 같은 것은 없다.” 우리 인도에서도 문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도 대륙은 130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이슬람 침략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아랍인이, 다음에는 무굴인들이 쳐들어왔다. 그리고 무굴제국이 종말을 고하기 전인 17세기에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들어와 이후 90년간 인도를 지배했다.

이슬람의 인도 정복은 아마도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건일 것이다. 힌두교도에 대한 대학살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옛 소련의 폭정, 일본군의 중국인 학살,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1000~1500년 사이 약 8000만 명의 힌두교도가 처형됐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인종학살(genocide)’이였다. 그것은 같은 종교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고 혈연으로 맺어진 인종집단을 말살시키려는 의도된 만행이었다. 힌두 원주민들을 완전히 사멸시키려는 시도였다.

인도는 재건됐고 힌두교의 핵심은 외래 문화를 흡수해 동화시켰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전에 없이 강력한 국가가 탄생했다.

인도가 침략과 정복의 잔혹성을 경험한 유일한 나라는 아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대문화를 지닌 한국이 약 한 세기간 유사한 운명을 겪었다. 한국 역사는 난폭한 일본의 침략과 정치 암살, 문화 훼손, 폭력 등 인종 예속 상황에서 일어나는 온갖 박해로 얼룩졌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가장 오랜 문명 가운데 하나인 한국은 기원전 2333년 유사시대를 열었다. 한국은 역사상 오랜 기간 동안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1910년 일본에 합병돼 인도와 같은 1945년까지 식민통치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은 더욱 피폐해졌고 결국 두 개 나라로 분단됐다. 그것은 영국이 인도 대륙을 떠나기 전 인도를 분단시킨 것과 같다.

두 나라가 지닌 구원의 은총은 철학자와 사상가,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좀 더 진보적이고, 인도주의적이며, 자애로운 민족으로 진화해 나가려는 뿌리 깊은 의지를 구현해왔다.

민족주의와 민족 정체성을 찾으려는 투쟁의식이 높아지면서 1929년은 두 나라에 모두 중요한 해가 됐다. 항일시위가 계속되던 한국에서 그 해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은 독립운동의 역사적 전기가 됐다. 이후 일제 통치는 더욱 무자비해졌다.

인도의 독립운동도 1929년 12월 절정에 달했다. 인도 민족회의는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어 전국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이 시작됐다.

경찰의 만행에 저항한 한국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갔다. 인도에서는 젊은 바가트 싱(Bhagat Singh)이 의회 의사당에 “귀 먼 자도 듣게 하라”는 혁명철학을 주창하는 전단지와 함께 폭탄을 투척했다.

이 같은 봉기와 소요사태 속에 1929년 인도의 위대한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가 세번째로 일본을 방문했다. 그는 도쿄에서 몇몇 한국 애국 청년들과 민족주의 운동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타고르에게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간청했다.

독자적인 행보에 나선 타고르는 일본 내 국수주의 득세와 제국주의 등장을 비판했다. 타고르의 비판은 그러나 일본 국민과 정계에 환영을 받지 못했다.

한국을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타고르는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잘 인식했다. 아마도 창의적 작가의 양심과 지성이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시아의 황금시대’라는 네 연 짜리 시를 지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는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언젠가 사람들은 그가 한국 고대문화에서 받은 희망과 염원을 느낄 수 있으리라. 그가 전후 일본이 평화세력으로 재탄생한 것을 봤더라면 좀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타고르는 이슬람 침략을 겪고 영국 식민통치에 신음하던 나라 출신이고 마하트마 간디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었지만, 간디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독립운동이 국수주의적 형태를 띠는 데 강력히 반대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동시대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서게 한 요인이었다. 그는 간디가 주창한 자치권 쟁취를 위해 싸우지도 않았다.

불행히도 타고르는 인도가 영국 통치에서, 한국이 일본의 복속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러나 전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는 동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동시대인인 한국의 위대한 선승이자 시인 한용운(1879~1944)은 끊임없이 타고르의 시를 감상하고, 번역하고, 출간했다. 한용운의 시는 타고르의 휴머니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인도와 한국은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이래 정치이념과 근본주의 종교에 근거한 분열의 큰 짐을 감당해왔다. 두 나라는 전후 정치·문화적 반목과 편협성으로 인해 갈라졌다. 인도와 한국은 내부의 뿌리 깊은 편견을 해소하고 좀 더 포용적인 사회환경을 건설해야 하는 과제를 계속 안고 있다.

지난 60여년 간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국제사회 힘의 방정식 또한 바뀌었다. 그러나 지구촌 불량국가들의 침탈행위는 여전히 다른 문화를 훼손시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이 힘있고 부유한 나라들을 위협하기 위해 핵 기술이란 피난처에 의존하고 있다.

이 시대에 미디어가 여론을 선도하는 핵심어는 ‘인권’이다. 침략자들의 행위는 갈수록 정당화되기 어려워지는 반면 경제 식민지화가 예속의 또 다른 형태로 등장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통제선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정부는 국경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을 위해 파키스탄을 설득하는 의미 있는 대화를 계속 시도해왔다. 끊겼던 철도와 도로가 복구되었고 두 나라 관리들이 통상·무역에 관한 회담을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는 여전히 분단상황이다. 두 나라 국민은 역사와 문화, 문학, 음식, 혈연을 공유함에도 타고르가 혐오했던 극단적 국수주의가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냉전 이후 세계에는 사회·문화·인도주의적 고려가 완전히 배제된 복잡하고도 새로운 국가관계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남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화력 발사대 역할을 한 대가로 엄청난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거대한 중산층 시장을 가진 인도는 러시아인과 미국인을 동시에 끌어들이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둘 다 핵 억제력 정책에 강력히 의존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도 서로간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한 기고문에서 “한국과 동맹국들은 북한의 군국주의와 핵 벼랑끝 전술에 반대 입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북한이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제안을 준비해야 한다. 신뢰는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공동 프로젝트,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무역과 투자 기회 확대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구상이 실현되려면 북한이 몇 가지 전향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좌익 정치 편향이 붕괴되고 시장의 힘이 세계 정치를 압도하며 독재정치가 배격되는 현실을 고려해 북한은 새로운 사고를 통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동시대 지정학적 위상과 무역이 타고르와 한용운 같은 사상가·작가·예술가의 지적 열정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밀어 넣은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남한과 북한은 코리아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일제통치의 악몽을 떨치고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는 타고르의 꿈을 되살려줄 공동 책임이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남한과 북한, 일본 청년들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다. 그들은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 정치인들은 젊은이들의 희망과 염원에 위해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뉴 미디어에 의해 국경은 해체되고, 젊은 세대는 편견 없이 만나고 있다.

일본 청년 코이치 쿠와바라가 서울 거리에서 “평화를 위한 프리허그” 피켓을 들고 많은 한국 젊은이들과 포옹을 나눈 장면은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상징적 행위가 되었다.(아래 유투브 비디오 링크) 이것이 오늘날 젊은이들이 사고하는 방식이고 우리는 그런 정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타케시마 섬의 영유권은 문제되지 않는다.

이 젊은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타고르와 한용운이다. <글=프라모드 매튜/인도 SPOTFILM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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