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의 당신은 누구?

1248896658[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지혜학교 교장 역임] 만해 한용운은 식민지 조국에 대한 한스러움과 거기에 사는 민족에 대한 사랑을 시로 승화시킨 승려시인이다.

시인은 시를 쓰고 독자는 그것을 해석한다. 시인이 시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과 독자가 시를 읽는 데서 생각이 같을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다를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쓰인 시가 유독 시대적 상황에 갇혀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시인에게 ‘당신’은 여러 가지의 중의적 시어이다. ‘당신’은 조국의 독립일 수도, 이별한 연인일 수도, 간절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만일 시인이 승려가 아니라면 아마 집을 나간 자식일 수도 있겠고 우리 시대로 말하면 ‘당신’은 실질적 ‘민주주의’일 것이다.

나룻배인 ‘나’는 흙발로 나를 짓밟고 물을 건너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려도 ‘당신’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존재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그리고 다가섬이기도 하다. 시인은 수동적 능동성으로 ‘당신’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림으로 다가서는 ‘나’는 사랑 그 자체다. ‘당신’은 ‘내’가 언제나 ‘당신’을 실어다 줄 나룻배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비록 공간적으로 ‘당신’이 떠나 있을지라도 내 안에 언제나 함께 있는 존재이다.

 

나룻배와 행인(行人)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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