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육당·춘원문학상 제정 보며 되돌아본 ‘만해상 20년’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국내 문학계의 대표단체 중 하나인 한국문인협회가 육당 최남선(1890∼1957)과 춘원 이광수(1892∼1950)를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해 2017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문인협회(이사장 문효치)는 지난달 26일 이사회에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가결해 내년부터 협회 회원 중 그 해 우수한 활동을 한 문인을 뽑아 상을 줄 예정이라고 한다. 협회는 또 육당과 춘원의 유족을 찾아 문학상 제정에 관한 동의를 구하고 시상식에도 초청할 방침이다.

하지만 두 문학상의 제정을 두고 육당과 춘원의 친일활동 이력으로 문학계 안팎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문인협회는 “친일 행각과 문학적 성과는 별개로 해야 한다. 이들의 뛰어난 문학적 성과마저 매도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국문인협회는 1961년 창립됐으며 문인 1만3600여명이 회원으로 있다.

다음에 나오는 이름은 누구일까?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시린 에바디(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 이란 변호사), 아누라다 코이랄라(2010 CNN 올해의 영웅, 마이티 네팔 이사장), 모흐센 마흐말바프(이란 영화감독), 아키 라(캄보디아 지뢰박물관장), 이소선(전태일 어머니), 월레 소잉카, 모옌(莫言), 나눔의 집, 엥흐바야르(몽골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김성수 성공회 주교, ‘손 잡고’, 김지하, 비시누 니스트리(사진·네팔기자연맹 회장), 아시라프 달리(<알아라비> 편집장), 수아드 알 사바(쿠웨이트 시인), 황석영, 페툴라 귤렌, 정주영, 함세웅, 신영복…

올해 20주년을 맞는 만해대상 역대 수상자들이다. 2004년부터 만해대상 심사를 맡아오며 필자에게 확실히 자리잡힌 생각이 몇가지 있다. 첫째는 “상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훨씬 힘들고 보람도 크다”는 것이고, 둘째는 “부처님께서 만해상을 무척이나 아끼신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둘은 서로 맥이 통한다. 올해로 20회째를 맞는 만해상은 그동안 100명의 수상자를 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평화·민족·예술 사랑의 삶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만해대상은 그 권위만큼이나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때로는 심사위원의 지혜로운 선택으로, 때로는 수상자로 선정 직전 본인의 사정 등에 의해 최종 선정 및 수상이 안 됨으로써 명성과 권위를 지켜왔다고 본다. 물론 수상자 가운데는 엥흐바야르 몽골대통령처럼 자국내에서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지난 13년간 심사위원을 맡으며 인상적인 장면을 몇 대목 소개하는 것은 올해 20회째를 맞은 이 상이 50회, 100회를 넘어 영구히 만해 선생의 철학과 실천적인 삶을 조명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으며 세상을 밝히는데 앞장서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서다.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시상식은 지금처럼 8월12일이지만 심사는 3월1일에 했다. 2006년 독일의 작가 귄터 그라스(1927~2015)가 문학상 후보 직전까지 올랐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그를 만해문학상 후보로 염두에 두고 접촉했다. 2006년 벽두부터 그와 연락을 취했다.

필자가 “3월1일 심사가 있다. 선정되신다면 8월12일 열리는 시상식에 꼭 참석하여 직접 상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하자 그가 답했다. “한국의 전통 깊고 자랑스런 만해상 후보로 선정됐다니 영광이다. 그런데 곧 인도여행이 계획돼 있다. 나이가 많아 한해에 두 번 동양의 먼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어렵겠다.”

결국 그는 후보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는 외국인이라도 수상자는 본인이 직접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부득이 한 경우 가족·친지나 당해국의 주한 대사관측에서 대리로라도 참석하는 것을 관례로 만들어 가던 차였다.

그해 시상식을 한달 쯤 앞둔 2006년 7월 어느 날 독일발 외신기사가 전해졌다. “귄터 그라스 나치 협력사실 밝혀지다” 만일 귄터 그라스가 만해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면 육당이나 춘원같은 친일 전력의 문인에게 만해상을 시상하는 거와 다름없을 것이다.

2004년 만해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 선정 때의 일도 떠오른다. 만해상을 처음 구상하고 구체화·현실화시킨 조오현 스님께 평화대상 후보로 넬슨 만델라를 제안하자 그는 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만델라재단에 이메일과 전화로 “만델라 대통령을 만해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하려 한다”고 전했다. 답은 “노!”였다. “전세계 여기저기서 만델라에게 상을 드리겠다는 곳이 숱하게 많다”는 거였다. 이에 당시 주한 남아공 대사를 만나 만해상 제정취지와 만델라의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며칠 뒤 수락하는 답이 왔고, 그해 여름 대사 부부가 만해마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대신 수상했다.

2014년엔 이해인 수녀님이 심사를 통과해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수상을 사양했다. 정확치는 않으나 “나보다 나으신 분이 많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들었다. 작년 수상자로 올초 별세한 신영복 교수는 상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기부했으며 2012년 만해문학상 수상자인 수아드 알 사바 쿠웨이트 시인도 장애인 단체에 상금을 기탁했다.

심사에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참 많이 배웠다. 그 가운데 조오현 스님의 다음 말씀은 늘 내 귓가에 맴돈다. 2012년 채 40살이 안 된 캄보디아의 아키 라 지뢰박물관장 등이 선정됐을 때다. 내가 “너무 이른 나이에 받는 것 아닙니까?” 하자 큰 스님이 답했다. “그 말도 맞아요. 그런데 나이 들면 흠도 생기도 때도 묻고 그래요. 저 분들 젊은 지금 받으면 나머지 생 얼마나 열심히 멋지게 잘 살겠소. 그대로 합시다.”

올해 시상식은 12일 오후 2시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다. 수상자는 △실천대상 마리안느·마르가레트 수녀(소록도에서 40여년간 한센인들을 돌봄) △만해평화대상 청수나눔실천회(이사장 박청수 원불교 교무), 로터스월드(이사장 성관 스님) △만해문예대상 가수 이미자씨, 이승훈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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