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엥흐바야르 몽골 제3대 대통령 “아시아연합(EU) 필요성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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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기자는 지난 10월 3일, 꼭 10년 만에 몽골공화국 제3대 남바린 엥흐바야르(2005~2009년 재임) 대통령을 만났다. 울란바토르 중심가의 한국식당 ‘한국가든’에서였다. 기자는 이번까지 모두 세번 엥흐바야르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첫 번째는 2005년 8월 기자가 한국기자협회장 시절 이메일로, 두 번째는 2006년 12월30일 대통령궁에서 이뤄졌다.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사)아시아기자협회(아자)가 몽골에서 주관한 ‘한몽미래포럼’ 방문단 일행을 오찬에 초대했다. 애초 약속시간인 12시30분보다 5분 가량 미리 도착해 일행을 맞은 대통령은 “9월초라면 맑은 강물에도 뛰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미소띠며 말문을 열었다.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식사 뒤엔 개개인마다 모델이 돼 사진촬영에 응해줬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오찬에서 방문단에게 비친 그의 모습은 ‘소탈’ ‘격의 없음’ ‘세심한 배려’ 바로 그것이었다. 나물과 불고기, 전 등이 차려진 식탁에는 17.5도짜리 ‘처음처럼’이 올랐다. 대통령은 “몽골 전통 마유주(말 젖으로 발효시켜 만든 술)를 마시고 가야 진짜 몽골을 체험하는 것”이라며 특별히 주문해 참석자들 전원이 맛보도록 했다.

기자가 “한국의 대표 음료인 ‘처음처럼’ 소주의 글씨를 쓴 신영복 교수도 대통령이 2006년 받았던 만해상을 2015년 수상했다”고 소개하자 그는 신 교수의 전공은 무엇이냐, 어느 대학교수이냐 등을 물으며 깊은 관심을 표했다.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일행이 전날 ‘13세기 게르’를 방문했다고 하자 “그곳은 칭기스칸이 머물던 곳”이라며 그곳에서 매우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번잡한 머리를 맑게 하는 데 게르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그는 몽골 게르와 ‘게르 스테이’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해 갔다. “공직에 있을 때는 바빠서 못 찾았지만, 요즘은 종종 머물다 온다. 전화도 안 되고 몸을 씻을 수 있는 물도 없다. 보이는 거라곤 높은 하늘과 끝없는 초원뿐이다. 거기서 양떼와 말들을 보면서 대화하면 어느 새 몸과 맘이 느슨해지며 본래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한밤 중 별이 쏟아지는 걸 바라보면 세상 시름과 맘속 번뇌는 나도 모르게 스르르 사라진다. 다음에 몽골 올 때는 사흘 정도 꼭 게르스테이를 체험하기 바란다.” 그는 기자가 “게르에서 3일 이상 체험하는 한국인에게는 비자면제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하자 “그것, 좋은 생각”이라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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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엥흐바야르는 국회의원과 대통령 재임 시절 만났던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과의 기억을 잠시 언급했다. 그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별세해 아쉽다”며 이명박 대통령 근황을 물었다.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선거가 언제이며 누가 출마하느냐?”고 관심을 표했다.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선거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2007년 한국방문때 외교부장관이던 반 총장을 만났다고 했다.

남북한을 모두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남북관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한 어조로 이어갔다. 그는 “한국의 통일을 진심으로 바란다”며 “마카오나 홍콩처럼 처음에는 1국2체제(Two System One Country)로 시작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생전에 만난 적이 있냐는 물음에 “(김정일을) 만나자고 평양에 갔는데 바쁘다고 해서 못 만나고 왔다”며 “북한의 생각을 바꾸는 건 참 어려운 일 같다”고 했다.

기자는 2005년 그에게 남북한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 유사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엥흐바야르 대통령의 답은 이랬다.

“한국이 두개의 국가로 나뉜 지 50여년이 지났다. 역사적으로 보면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동안 남북한은 언어·문화·생활방식·사회경제 상황·사고방식에서 큰 차이가 생겼다. 통일은 긴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통일의 최선의 방법은 양쪽의 모든 면에서의 협력과 신뢰다.(중략) 한국정부와 국민이 북한이 국제연합 회원국이고 독립적인 국가임을 존중하고,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한반도 평화 문제에 영향력이 큰 미국, 일본 등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6자 회담을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배움·가족·신과의 만남이 인생 최고 가치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배움과 가족 그리고 신과의 만남”이라고 했다. 그는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며 “인생의 모토는 몽골의 오래된 교훈 그대로 ‘내가 노력하면 운명도 노력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이던 2005년 인터뷰에서 “국가복합 발전정책을 세워 이를 추진하고 있다”며 “민주주의 정착, 실업 및 빈곤 감소, 국가경제 및 국민생활수준 향상, 그리고 몽골 민족의 인도적인 유산을 중 요시하는 정책을 수립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정치 입문 전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기자와 정치인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피력했다.

아시아지역 평화·번영 위해 아시아연합(AU) 창설 필요

“진정한 기자와 정치인의 유사점은 모국·민족·국민의 행복을 위해 인간의 공통적인 가치관인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해 헌신하는데 있다. 차이점으로는 기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원하고 정치인들은 정치활동의 활발하게 할 분위기를 바란다. 정치인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기자들은 결정 결과 및 이에 대한 국민과 일반사회의 반응을 소개하는 일을 맡는다.”

그는 특히 “나는 기자들의 ‘거울’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그 거울은 왜곡이 없어야 하며 왜곡하는 거울에는 모든 것이 현실대로,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 일은 아주 중요하고 재밌는 일”이라며 “전쟁시대엔 군인들의 총칼이 최고지만, 평화 시기인 지금은 말과 글, 즉 기사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말했다.

디킨즈·고골 소설 몽골어로 번역한 문학도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모스크바의 문학대학교와 영국의 리스대를 졸업했다. 1990년대 몽골의 번역가·칼럼니스트·작가들 모임의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몽골 고전 서사시, 서양소설, 특히 영국의 찰스 디킨즈와 러시아 작가 고골의 소설들을 번역했다.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1985년 정계에 입문해 1992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그해부터 1996년까지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이어 2000년 7월26일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총리로 지명돼 4년간 재임했다. 2005년 5월23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몽골공화국 제3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는 내년 2월 예정인 서울 한몽미래포럼 때 참석해달라고 하자 “고맙다. 아시아기자협회의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 기회는 무척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기자협회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각국의 기자들과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교환하며 협력하며 인류미래에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시아기자협회 역할 적극 지지

기자는 2006년 말 그와의 인터뷰를 찾았다. 첫 두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목소리는 힘찼고 막힘이 없었다. 그는 말끝마다 “국민들이 잘 살게 하는 게 대통령인 나의 존재이유이며 과제”라고 했다. 그후 10년 목소리는 여전히 힘찼고 막힘이 없었다. 2007년 1월3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그와의 인터뷰 중 눈길 가는 대목을 <매거진N> 독자들께 소개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유럽연합(EU)처럼 ‘아시아연합’ 같은 게 이제 아시아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이신지?

“아시아연합의 필요성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구체 시기를 말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지역 평화와 경제공동체 형성 등을 위해 그렇게 가야한다고 본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종교·언어·경제수준·정치체제 등이 워낙 다양한 게 난점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일본 같은 강대국보다는 몽골이나 한국 베트남 같은 규모의 국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가능성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내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이 우선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2006년)을 축하드린다. 한때 세계의 절반을 정복한 나라 아닌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한 전쟁은 정복된 국가들 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시 몽골제국의 국경 안에서 정치·경제·문화의 새로운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아시아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하나의 강한 통치 아래 들어감으로써 그들 서로간의 전쟁과 위험 및 분단상황이 사라지고, 남북의 정치, 문화, 무역 교류가 급격히 확대됐다. 세계의 주요종교들이 그때부터 서로에 대해 알게 됐고, 한 도시에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천주교가 동시에 같이 존재하고, 신앙의 자유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지 않은가.”

몽골 방문단 일행은 식사 후 그에게 각자 조그만 선물을 전했다. 기자는 강석재 아자 부회장이 전한 세계태권도연맹에서 제작한 태권도 도자기, 그리고 천비키 본명상 코치가 기자에게 준 손지압를 전달했다. 법현스님이 수레국화차와 손목 염주를 선사하자 독실한 불교신자인 대통령은 두손으로 합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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