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진짜 변할 수 있을까?
[아시아엔=천비키 본명상 코치] 명상가 그리고 코치. 명상으로 닦은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코칭 언어에 담아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삶. 그 삶을 살면서 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과연 나는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고. 모든 사람은 온전한 존재이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 안에 온전한 답이 있다. 도전정신과 창의성이 있기에 성장을 원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 전제는 코칭의 철학이며, 명상인이 인간을 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로 나는 인간을 ‘온전히’ 믿는가. 손톱보다 작은 겨자씨알에 어마어마한 겨자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잎, 그리고 열매가 있다는 것을 진정 뼛 속까지 믿는가? 이런 나의 믿음의 나무를 흔들어 댄 것은 코칭 내담자로 만난 여대생 민지씨였다.
“우리 아이는 학점도 좋고, 성실하고 착해요. 그런데 너무 말이 없고, 자신을 표현할 줄 몰라요. 물론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하겠지만, 주변과 의사소통을 잘 해서 친구들도 좀 많이 사귀고 가족들과도 편안하게 대화했으면 합니다” 코칭을 부탁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온 민지씨는 처음에 “코칭이 왜 필요하냐”고 거부감을 나타냈다가 부모의 설득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코칭을 한번 받아보겠다며 내게 온 것이다.
열정으로 시작은 했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그녀와 나의 도전! 나는 의욕적으로 민지씨를 변화시키려고 열정을 다해 하드 트레이닝도 시켰다. “화가 났구나. 그 화를 바라보면서 표현해 볼래?” 열심히 따라 해주었지만 만날 때마다 물어도 대답도 없고, 화난 듯한 표정에 대화가 끊기는 게 다반사. 그래도 웃다가, 달래다가, 또 해보자고 소리치면서 위태위태 나아가긴 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즐겁게 해보자”며 설정한 도전들이 점점 힘겨워졌다. 처음엔 단순히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표정을 교정하면 되리라 했는데, 민지씨한테는 공감·감사·사과 등의 언어가 없었다. 심지어는 대화 중에 끼어들기는 예사, 그러면서도 “정작 누구와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부로는 A+를 받는 대학생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상대와 어울리는 일은 유치원생이었으니!
“조금은 밝아졌는데 아직도 얘기를 잘 하지는 않아요.” 어머니로부터 그런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심란했다. 이제 겨우 몇 차례만 했을 뿐인데···. “조금 더 기다려 보시라”면서도 과연 이 친구가 코칭으로 변화될 건강한 아이인지, 아니면 병원에 가서 언어발달장애 검사라도 받아야 할 치료대상인지 갈등도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난생 처음 해본다는 소소한 일들을 시작했다. 커뮤니케이션 특강을 함께 들으며 강평회를 갖기도 했고, 화장품 가게에서 제품을 추천하는 친절한 점원의 모습을 관찰 후, 그 언니들이 권해주는 추천상품에 거절하는 실습도 해보았다. 관심 있어 하는 일본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일본에서 온 내 손님을 만나게 해주기도 했다.
열정과 도전은 그렇게 끝나는가?
그러던 어느 코칭 세션날, 민지씨는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지더니 소리를 내질렀다. “저 그만 할래요!” 이런 ‘폭탄저항’이 벌써 몇 차례던가.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다시 유치원생으로 돌아간 듯했다. 한참을 멈추어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많이 힘든가 보다. 무엇 때문이지?” 묻고 기다렸지만 답이 없었다. 거대한 침묵의 늪 속에서 달래도, 기다려도 굳어만 있었다. 그녀에게 대화를 시도하려고 살짝 무릎 위에 손을 얹자 벌레를 떼어내듯 ‘탁!’ 치며 뿌리쳤다. 무안함에 멈칫 하자 먼 산을 보며 “안하고 싶어요. 해도 늘지 않아요. 그만 할래요”라며 문 밖을 나섰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코칭을 종료하고, 남은 코칭에 대한 코칭비는 환불해 드리겠다고 했다. “역량이 부족해서 죄송하다”는 씁쓸한 인사도 곁들였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잘 되었지. 너도 힘들었잖아. 심리상담사에게 갈 친구를 네가 붙잡은 것이 애초에 잘못이었지’라는 변명인지, 양심의 소리인지 모를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변화하고 싶은 욕망으로 우리는 만났다. 민지씨는 난생 처음 해보는 여러 과제와 과정을 끊임 없이 ‘도전’을 하며 ‘성장’하고 싶어했다. 나 또한 여러 가지 창의적 시도를 동원해 코치로서 ‘도전’을 하며 ‘성장’을 꾀하고 있었다. 노력한 만큼 여전히 ‘결과’가 없을 때 그녀는 시무룩했고, 나 또한 어머니에게 탐탁치 않는 ‘결과’를 말씀드릴 때마다 시무룩했었다. 매 번 만날 때마다 “잘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그녀의 두려움도, 실은 “민지가 잘 못 따라오면 어떻게 하지?”라며 내가 느끼는 바로 그 두려움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해볼게요”라는 민지씨의 끈기와 성실함이, “다시 해보는 거야”라는 내 마음과 같았다. 그녀와 나는 서로가 칭찬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서로가 저항하는 느낌이 들면 긴장하는 같은 ‘인간들’이었다. 그렇구나! 나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자를 두드렸다.
“민지야~ 오늘 일기를 적으며 생각해 본다. 선생님이 민지와 만나면서 어떤 영향력을 주었을까? 혹시나 민지에게 선생님이 힘들게 한 점은 없었을까? 선생님은 민지가 의욕적으로 열심히 했을 때, 방긋 웃으면서 말했을 때 참 행복했단다. 그리고 민지의 성실성과 도전력, 포기하지 않는 예쁜 마음을 낼 때도~ 혹시나 선생님이 민지에게 마음을 아프게 한 점이 있었다면 훌훌 털어버리기를. 민지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었던 마음에 때로는 무리하게 했었을 수도 있으니… 처음 만났을 때 소통의 꿈을 위해 성실히 도전했던 민지를 떠올리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응원할게. 지금 잘 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말기를.” 20분 뒤 답신이 왔다.
진정으로 나누니 하나로 맺어져
“선생님 아까 일이 정말 후회스럽고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앞으로는 열심히 할게요.” 눈물이 주루륵 흘렀다. 자판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곧바로 문자를 쳤다.
“민지야! 우리 민지 정말 감동이다. 너는 해내겠다! 용기있게 고백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 선생님이 진짜 힘이 나는구나. 민지야! 그래, 이런 과정이 여러 번 올 수도 있어 선생님도 그랬거든. 지금도 가끔씩 그렇단다.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왜 그때 더 공감해주지 못했을까? 내가 왜 그때 더 친절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등등. 오늘도 그런 날이었지. 선생님도 너를 통해 성장하고 배운단다. 우리 같이 또 해보는 거야. 도전을 한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이거든. 고맙다. 나는 너를 믿어.”
지금 민지와씨 나는 10번째 코칭을 마치고 또 다시 새로운 10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민지씨는 소통의 기술 10개 항목에 모두 만족스러울 정도로 향상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인간은 무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한 인간이 진정으로 변한다는 것은 온전한 수용 속에 믿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 그녀와 내가 하나의 생명체임을 뼛속까지 느끼는 것이 우리가 함께 만든 의미있는 행복과 작은 성공,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