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 베트남서 싹튼 가족사랑, 그 바탕은 관심·배려·정성
[아시아엔=천비키 본명상 코치, 대한명상협회 이사, SK와이번스·LG세이커스·한체대 멘탈코치 역임] “언니, 많이 바쁘지? 그래서 우리 부부가 엄마 칠순잔치 기획을 다 했어. 그냥 몸만 따라 오면 돼. 여행 전날 가방만 싸놓아.”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한숨이 살짝 배어 나왔다. 큰딸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역할도 못하는 나. 늘 집안의 큰일들을 챙겨주는 제부씨와 동생에게 편치 않은 마음과 고마움이 동시에 올라왔다. 절로 튀어나온 한숨의 정체는? 먹먹함이었다. 마감이 코앞인 이들 밀린 일들을 어찌 할 것인가. “이럴 거면 왜 왔냐”는 엄마의 핀잔 섞인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잔소리를 듣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달리 없을 듯하여 대형 트렁크에 노트북과 서류들을 옷가지과 함께 구겨 넣었다.
그렇게 시작된 가족 단독 첫 해외여행. 5박6일 동안 얼마나 웃고 떠들며, 먹고 마셔댔는가. 물가 좋은 다낭에서 여왕처럼 호텔에서 묵으며, 늘어져 있어 보기도 하고 호사스럽게 마사지도 받았다. 아무도 없는 밤바다 백사장에 뛰어나가 폭발하는 질주본능에 어린 조카들과 하염없이 파도를 따라 뛰어논 해방감이란!
행복의 종합선물세트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이라 하지 않는가. 그건 틀림없다. 가족여행은 꿈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그 왁자지껄한 행복 속에서도 티가 있었다. 살짝 흉보기, 거침없이 말하기, 평가하기 등이 그랬다.
“언니, 엄마는 여기에 나와서까지 이렇게 잔소리가 많으셔. 왜 이렇게 가족들을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겠어.”
“네 아빠는 여기에 나와서까지도 어쩜 그렇게 술을 드시는지. 어른으로서 품위를 지켜야지.”
가족이라 더 아낌없이 주고 싶어, 아니 더 주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처럼 조언과 가르침의 말들도 쉼 없이 오갔다.
“여행에 와서 일하는 건 뭐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빨리 자야지 내일 빡빡한 일정 소화하려면 자야할 것 아니니?”
“네가 일하는 걸 보니까 일머리가 없더라. 보고서 작성때는 이렇게 해야지!”
가족의 아낌없는 조언을 들으며, 나 또한 쉴 새 없이 핸드폰을 쥐고 있는 조카들에게 몇 번 인상을 쓰며 말을 던졌다.
“윤하야. 여기는 식당이야. 가족하고 밥 먹으러 나와서 까지 음식 나오는 그 짧은 시간에도 핸드폰 게임을 하는 거야?”
나도 엄마의 잔소리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나? 너무나 가까운 가족이기에 편하게 던지는 “하지마!” 식의 교정적인 말들과 ‘해야 해!’ 식의 의무적 말이 오갔다. 남들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조언을 서로 위한다고 강도 높게 뿌려대는 우리는 정말,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가? 정녕 그런 마음도 있다. 그러나 상대는 얼마나 그 마음을 체감할까? 나 잘 되라는 조언을 받은 나 또한 기분이 상하고, 인상부터 찌푸려졌다. 조언을 받은 조카들은 배시시 웃으며 무안해했다가 며칠이 지나자, 무리에 떨어져 호캉스를 즐긴다며 독립군처럼 호텔에 남기도 하였다.
놀라운 것은 우리 가족은 10년 전이나, 그 이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 같은 패턴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말을 듣는 가족의 반응 또한 변함없이 똑같았다. 엄마는 늘 “아빠가 내 말만 들었으면 우리 집은 훨씬 더 잘 살았을 것”이라고 하고, 나도 엄마 말만 듣고 살았으면 장돌뱅이처럼 지방출장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편안하게 살 것’이라 한다. 푸념 섞인 엄마의 말은 수십년째 계속되었고, 가족이 전해주는 놀라운 성공의 비법들은 우리 가족들에게는 잔소리일 뿐이었다. 아빠가 내게, 동생이 아빠에게, 내가 동생에게 등등 그 누구도 줄 수 없고, 어디에서 들을 수도 없는 처세술과 나만을 위한 개별 맞춤의 성공학을 살뜰하게 주었지만 서로서로에게는 그냥 습관적인 말에 불과했다. 어느새 가족이 주는 피드백은 그냥 듣는 말이며, 힘없는 푸념의 쓴소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수십년째 무한 루프만을 그리는 우리 가족은 왜 서로의 조언을 실천하지 않는 것일까? 강렬한 가족 사랑을 깔았다지만, 서로 던지는 말에는 자신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으로 상대의 ‘그 꼴’을 보지 못해 쏟아내는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진정한 본질은 상대의 반응에 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의 말하는 방식에는 ‘경청하고 공감하기’보다 ‘관성적으로 말하고, 패턴처럼 반응하기’가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타박을 주는 부모님과 형제의 목소리나 그때마다 건성으로 듣는 나와 가족들···.
가슴을 터놓을 사이, 그리하여 할 말, 못할 말, 우리끼리 하는 말, 비밀스런 말, 남들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교정적인 말 등 온갖 종류의 말을 다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는 바로 가족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주고, 위안받기도 하는 가장 끈끈한 공동체이지만, 때로는 듣기 싫을 정도로 짜증도 나고 피하고 싶은 관계로 돌변할 때도 있었던 것이리라.
이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인물은 누구인가? 바로 나였다. 우리 가족의 무한궤도를 그리는 말하기와 반응하기 패턴을 알아차린 첫번째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내가 변화의 핵심이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관계를 조화롭게 하는 의도의 명상이다. 첫째, 우리 가족관계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명확히 한다.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려면 글로 쓰는 것이 좋다. 가족 구성원의 성격을 정리해보고, 그와 자주 부딪치는 상황도 정리한다. 또 관계를 멀게 만드는 장애물과 관계에서 원하는 상태 등도 상세히 적어본다.
둘째, 원하는 상태를 나의 내면에서, 내가 먼저 느낀다. 가족과 평화롭게 사랑스런 관계를 맺고 싶다면 먼저 내 안에 평화와 사랑을 느낀다. 그 상태에서 가족이 평화와 사랑으로 말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며 실감할 정도로 느낀다.
셋째, 내 삶에 미소와 감사, 배려 등을 끌어들인다는 의도를 세운다. 가족과 만나기 전에 내 삶의 의도문을 떠올리고, 관계에서 그 의도를 구현한다.
넷째,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상대를 대하면 빛과 사랑의 의식이 낮은 주파수대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다섯째, 관계는 내가 창조하고, 나로 인해 변화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위의 명상은 가족관계뿐 아니라, 관계로 갈등을 빚는 여러 사람들이 실제 변화를 경험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명상법이다. 나무가 꽃을 피울 때는 애정과 돌보는 정성이 필요하 듯이 관계의 나무도 하루 아침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 정성과 관심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정말 어떤 관계로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열망이다.
가족은 모든 관계의 근본이다.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 자매, 친척 등 이 관계를 토대로 우리는 최초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를 배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