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고교선수 ‘경쟁 스트레스’ 어떻게 극복했나?
[아시아엔=천비키 멘탈코치] 고등학교 운동선수인 L을 코칭하고 있다. L이 내게 가져온 이슈는 ‘경쟁의식에서 벗어나기’였다.
사연인 즉, 최근 한 친구가 자기 팀에 새롭게 들어 왔는데 그 선수 포지션이 자신과 같아서 불안감이 일었단다. L은 “팀 동료인데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우습기도 하고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느낌상 자꾸 조급해지고 긴장 된다”고 털어놨다. L은 “그 친구는 나보다 기량이 좋아 곧 내 자리를 꿰차고 주전으로 뛸 것 같다”고 초조한 맘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가슴이 먹먹하다”고도 했다.
다행히도 팀 감독이나 코치 등 지도자들은 공정한 분들이라고 했다. L은 “코치님들은 연줄같은 것은 안 따지고 실력으로 기용하시는 분들이라 열심히 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는 내내 L 얼굴에서는 막막함, 답답함, 불안감 같은 게 가득 느껴졌다. 그동안 수차례 코칭 과정에서 나는 그의 성실성과 팀에 대한 헌신성을 확인해온 터여서 새 동료가 들어오면서 그에게 생긴 ‘불편한 경쟁의식’에 마음이 짠했다.
17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경쟁 레이스에 올라 괴로워하는 그가 안쓰럽기만 했다. 나는 L과 충분한 대화와 공감 끝에 질문을 던졌다.
“L은 성공한 지도자가 꿈이라 했지? 그럼 미래의 L은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아?”
L은 심호흡 후 잠시 눈을 감더니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음…. ‘조급해 하지 마. 하던 대로 네 갈 길 가면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는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고도 했다.
나는 재차 물었다. “만약, L의 후배가 이런 문제를 들고 찾아온다면 뭐라고 조언할 것 같아?” L은 눈을 다시 감더니 “‘그냥 편히 해’라고 대답해 줄 것 같다”고 했다.
L은 그러나 잠시 후 눈을 뜨더니 “코치님, 그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L은 “그냥 편히 한다고 해서 경쟁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사라질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는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현실까지 바뀔 것 같진 않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가 스스로 답 찾기를 기원하며 L의 자각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깊은 질문을 던졌다. 가령 △진정한 경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승화시켜 자신이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쓸지 △정말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등을 그 스스로 발견하도록 질문을 더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L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아하. 정말 맘 편하게 운동하려면 제 실력이 좋아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실력이 아직 부족하니까 새로 온 친구한테 위기의식을 느껴 스트레스 받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의 ‘알아차림’을 느낀 나는 일사천리로 코칭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와 나는 진정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실력을 쌓을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점이 되는 기술은 어떤 방식으로 극대화할 것인지, 단점은 어떤 방식으로 보완하며, 잘 했을 때는 스스로에게 어떻게 보상해 줄지 등을 정리했다. 더 높은 에너지를 끌어올릴 훈련 스케줄은 무엇이며, 훈련을 빼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방법도 구체적으로 찾아냈다.
매일 하고 있는 개인훈련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도 고민했다. 이렇게 세워놓은 구체적인 훈련을 몇 달 지속한 후 달라질 L의 모습을 느껴보도록 했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는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며 “코치님과 함께 계획한 대로 훈련하면 절대 주눅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아까 그 친구가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냐고 물으니 L은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문제를 너무 크게 본 것 같네요. 제 실력이 좋아진다고 상상해 보니, 동네팀에 있는 친구로 느껴져요. 더 큰 경쟁자는 상위 랭킹의 다른 팀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어요. 무엇보다도 진짜 경쟁자는 저 자신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는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준 동료에게 고맙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삶은 경쟁의 연속이다. 난자 하나를 놓고 정자 수억개가 경쟁해서 시작된 ‘나’라는 존재부터가 그렇다. 그뿐인가? 입시경쟁, 승진경쟁, 재능경쟁, 부의 경쟁 등등…특히 지고는 못 사는 국민성만큼이나 대한민국의 경쟁의식이 세계 톱 수준이다.
불타는 에너지를 이롭게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고도의 생존전략일 수도 있다. L처럼 경쟁의식을 내면으로 돌려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힘으로 쓴다면 말이다. 대부분 위대한 사람들의 삶이 이런 식이 아닐까?
나보다 잘 하는 사람들을 만나 스트레스나 열등의식에 빠지는 대신 도전과 발전의 촉매제로 사용한다. 경쟁자는 나를 주눅들게도 하고 나를 담금질해 성공의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성공한 삶일 터다.
코칭 일주일 뒤 L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밝고 힘찼다. “코치님과 함께 세운 스케줄대로 착착 훈련 잘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 정말 고마운데요.”그는 “정말이지 그 친구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 애가 없을 때는 긴장도 안하고 그저 편안하기만해서 훈련 몰입도가 낮았는데, 그 덕분에 평안한 가운데에서 긴장도 적당히 되니 말이예요”라고 했다.
전화를 끊기 전 그가 슬며시 한마디 던진다. “어제 시합에는 주전으로도 뽑혔어요. 컨디션도 좋고 경기도 잘 풀렸어요. 천 코치님 감사드려요.”
17살 소년이 경쟁이란 스트레스를 지혜로 탈바꿈시킨 사실을 확인하며 나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훌륭해! 경쟁자들에게 감사하며 자신을 완성시켜 가는 태도! 이 마음으로 계속 가자구나. 이 배움을 준 네게, 나도 고마워. 우리 모두를 위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