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성장하고 있잖아”
[아시아엔=천비키 멘탈코치, 컬링국가대표·SK와이번스 멘탈코치 역임] 지난 가을,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반 지난 H가 고민이 있다며 찾아왔다. 30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인 그는 늘상 현재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게 바람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부터 ‘자기계발의 끝판’이라고 할 수 있는 명상과 멘탈코칭을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 만나던 날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마음공부 하면서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이 생기게 되었어요. 예전 알지 못했던 많은 걸 알아차리게 되면서 멘탈이 강해지고, 마음의 힘도 커졌어요.”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고민이 생겼어요.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투에 예민해졌지요. 배움이 깊어 갈수록, 상대를 예리하게 보게 되고 과거엔 지나쳤던 행위들에 대해 ‘왜 저 사람은 이럴 때 저렇게 말하지?’, ‘저 위치에서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지?’ 하는 판단이 자꾸만 올라옵니다.” H는 “그로 인해 사람들을 만날 때 불편이 커지고 에너지 소모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 내 모습이 오버랩 됐다. 처음 멘탈코칭을 할 때 얼마나 즐거움과 의욕에 넘쳤던가. 조금씩 마음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에 초자배기 시절, 나는 무모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코칭을 해주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깊이 있는 지식이 부족한데도 고민 있는 사람,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의욕을 보이는 사람 등 조금이라도 변화 가능성이 엿보이면 나의 열정을 다 받쳤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일에 치이기도 하였지만, 성취감·보람·희열로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새 나는 귀하게 배운 마음공부의 기술로 남을 재단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동료, 친구, 가족 등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만났던 그들에게서 과거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의 배려 없는 말투, 즉흥적 태도, 거친 행동, 꾸며진 모습들이 거슬려졌다. 예전에는 퉁치고 넘어갔던 과감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나는 상대방을 빛의 속도로 분석하며, 옳고 그름의
센서로 시비를 일삼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면의 불편함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급기야 공격대상은 나 자신이 되고 있었다. 마침내 그 불편함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져갔다.
‘너는 왜 그리 속이 좁니?’ 하며 이런 나를 다그치고, 혼내면서 ‘나는 진정 멘탈코치인가?’, ‘나는 명상가 자격이 있기나 한 건가?’라며 내 존재를 부정하고 있었다.
“아는 것이 힘, 모르는 게 약”이라는데, 나는 그 언저리를 갈팡질팡하면서 나와 상대를 칼로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형편도 없고 자격도 없는 코치로 평가절하했다. 전문가라는 무게가 더없이 무겁게 느껴진 어느 날, H가 나를 찾았듯, 나 또한 내 스승을 찾아갔다.
스승께선 예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을 들려주셨다.
“아무 문제 없다네. 잘 가고 있는 거야. 일단 자네가 자신과 타인에게 화살을 날리는 게 문제라는 걸 깨닫고 있으니 말일세.”
스승의 말씀은 계속됐다. “컴컴한 방에서는 공기 중 먼지가 보이지 않지만, 햇살 가득한 방에서는 세세히 다 보이지 않는가. 의식이 밝아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게야. 자네 마음이 그만큼 밝아진 것이고, 마음공부의 수순을 잘 밟고 있는 거니 안심해요.”
내 앞에 앉아 있는 H를 보니 나의 스승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H에게 그 분의 말씀을 메신저처럼 그대로 들려주었다. H는 내가 과거 스승의 말씀을 듣고 안도했던 것처럼 내 말을 듣고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 성장해 간다. 배움은 좀 더 세밀한 것을 알고 볼 수 있게 해준다.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보게 한다. 하지만, 잘못하면 배움을 통해 자유를 얻기 커녕, 머리만 커져 점점 더 많은 것들로 자신을 가두어 숨이 막히게도 된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 표정이 밝지 못하고 주변에서 까칠하다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진정 마음공부는 바깥세상을 평가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그 대신 나 자신의 자유를 얻어가는 행복한 여행이다.
지금 여기 잠시 멈추어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