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직방으로” 광고판의 그녀, ‘구하라’를 생각하며
[아시아엔=천비키 SK 멘탈코치, ‘본명상’ 코치] 동네 부동산을 지나갈 때마다 그 앞에 서있는 대형 브로마이드 크기의 입광고판에서 그녀를 보고 잠시 멈춘 적이 꽤 있었다. 싱그러운 젊음과 발랄한 모습이 부러워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하며 미소 짓고 감탄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오늘도 지나가다가 만난 광고 속 그녀는 웃고는 있었지만 왠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망자(亡者)가 된 그녀다, 바로 ‘구하라’씨. 그녀의 죽음으로 더 춥게 느껴진 골목길에서 한참을 걸었건만, 그의 이미지가 잔상으로 계속 떠올랐다.
“연예인은 거저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예요.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아파도 안 아픈 척···. 한마디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악플을 달기 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봐 주세요.” 그녀의 호소문이 마음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으면 목숨을 스스로 끊었을까? 대체 어떤 말이 그녀를 죽음까지 내몰았을까? 그녀와 비슷한 나이였던 20대 후반, 나도 타인이 준 말로 고통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지인 A로부터 갑자기 날라온 공격성 문자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왜곡할 수 있을까? 당황을 너머 황당하고, 억울했다. 그에게 메일과 문자로 항변을 했다.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답신을 받으며 점점 분노가 일었다. 반성은커녕 점점 인신공격까지 해대는 A의 날카로운 입담에 찔리는 듯 가슴이 아파왔다. 그 일 이후, 나는 문자만 봐도 가슴이 콩콩 뛰었다.
A는 또다른 B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었다. 여성인 B는 정말 지능적이었다. 뛰어난 공감력으로 나의 일을 자신의 일인 양 걱정해주면서 내 맘을 무장해제 시켰다. 그리고는 B는 주변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닌 것이다. 나의 성품을 잘 아는 지인들이 “그녀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말라”면서 알려줄 때까지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말려든 바보였던 것이다!
사실, 그녀는 내게도 같은 패턴으로 몇몇 사람들을 걱정해주는 듯 언급하면서 흉을 보았다. 그런 그녀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용기를 내어 말했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다닌다는 것을 다 알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당신을 조심하라고 말하더라”고. 그녀는 깜짝 놀라며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오해다”라고 했다. 그리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조언마저도 소문으로 또 만들어 주변에 뿌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또 얘기를 해줄까? 이 말 또한 왜곡이 되어 증폭이 되면? 모를 일이다. 그녀의 교묘하고 저급함은 내가 막아낼 수 있는 상황 이상이었다. 그녀가 무서워졌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의 말과 프레임으로 나를 판단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주변까지 무서워졌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 이상 즐거움 대신 섬뜩함으로 느껴졌다.
좋은 말을 하려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먼저 말과 행동이 현실로 드러나기 이전에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태를 잘 지켜본다. 대상을 만나서 일어난 첫 느낌이 생각에 영향을 준다. 생각은 감정에 영향을 주며, 감정은 기분을 증폭시켜 말과 행동으로 표현된다. 고리를 제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느낌과 생각, 그리고 감정의 각각 단계에서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을 느끼는구나’ ‘이것은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것은 감정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라고 마음속에서 알아차림을 하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목소리를 내서 해도 좋다.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그때마다 대상과 내 마음이 분리되어 ‘객관화’가 일어난다. 내 마음의 움직임을 잘 포착하며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쉬운 것 같지만 실제 해보면 마음의 각 단계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지 느끼게 된다. 지속적으로 훈련할수록 놀랍게도 느낌·생각·감정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이 정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면 대단한 자기 관찰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겠다.
두번째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다. 가령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졌다고 치자. 그러면 ‘기분이 나쁜데···’ 하고 알아차린 후, 그 기분 나쁨이 몸의 어디에서 느껴지는지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은 끊임없이 조건과 상황에 따라 생성되고 사라지는 날씨와 같다.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말로 상처의 느낌이 생긴다면 그 순간 밀어내려고도, 더 이상 해석하려고도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며, 그 순간이 고통스러우면 호흡으로 숨통을 틔워 준다. 에너지로 말의 힘을 다루는 것이다.
세번째는 이해와 연민이다. 타인에 대한 험담이나 악담, 불평을 달고 사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의 인격과 배경을 살펴보자.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면 그 사람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의 가정 환경, 습성, 교육수준 등이 그런 미성숙한 인격과 캐릭터를 만들었을 터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뱉은 말이 결국은 자신에게 되돌아간다는 자연스런 법칙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험한 말을 상대에게 던짐과 동시에 자신의 에너지 체계가 먼저 교란·붕괴되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차라리 내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돌보는 게 빠른 길이 아닐까? 나를 돌보는 시작점은 나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서 비롯된다.
말을 하기 전에 마음 상태를 먼저 살펴보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이 말은 왜 하는지,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중요한 말인지, 이 말을 통해 누가 얼마만큼 영향을 받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특별히 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개성있는 행동을 할 때는 나의 내면을 특히 더 잘 들여다보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혹여 나의 말과 행위로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그들의 용서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