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비키의 명상 24시] 너무 아름다운 그녀가 부럽다고?···”그럼 난 뭐지?”
[아시아엔=천비키 <아시아엔> ‘명상’ 전문기자, 본명상 코치] “그녀는 뭐가 필요한 거지?” 바로 며칠 전 일이다. Y님과 멘토코칭을 하였다. 서로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전화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강사로 활동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욱 궁금해졌다.
3회기 중 첫 만남이므로 나는 친밀감을 위해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강사 생활은 15년 가량 되었지만 이제 코칭은 막 시작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웬 걸? 정말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나 잘 나가는 그녀였다.
S그룹의 사내 강사로 그룹의 코칭교육 4인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 뽑혀 활동했고, 몇 년 전 퇴직했지만 밀려드는 일감에 여전히 바쁜 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23개 가량 갖고 있고, 기획한 강의를 시간당 1000만원을 받고 팔기도 한단다. 연봉 수억원, 멋진 차에 일하는 아줌마를 두고 있었다. 적당한 라포(Rapport) 형성이 되어 있었지만 호기심을 버리지 못해 가족 관계를 물었다. 법인체 사장인 남편과 아직 초등학생 아이 둘이 있는데, 그들을 위해 퇴직을 했다고 한다.
가족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아침마다 사랑의 세리모니로 서로 허깅하고 “우리는 가족이다. 사랑한다”고 소리치며 힘을 준단다. 가족들은 또 다른 나의 존재들이지만 아이를 재운 후 저녁 10~12시, 새벽 5~7시는 가급적 자기개발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그 중 영어는 영문학 전공자로 나름대로 전수할 만한 학습법을 고민 중이란다.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키 168cm에 51kg까지 감량에 성공하여 내년에 화보집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녀 앞에서 나는 “와, 대단하세요. 멋져요! 탁월해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은 그에게 모든 걸 주셨구나.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할 말을 잃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헛점을 말해달라”고.
나의 약점을 스스로에게 털어놓고 느껴보라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차분해지더니 이런 답을 들려주었다. “저는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이성적으로 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어요.”
기업의 ‘이성’과 ‘논리’에 맞는 교육을 위해 학습하고 또 했단다. 그 저력은 가난한 학창시절, 김밥 사먹을 돈도 없어 단칸방에서 버텨야 했던 ‘결핍감’이었다고 했다. 늘 부족감에 시달려 어떻게 하면 잘 살지 하고 연구했단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잘 살고만 싶어할 뿐 노력이나 학습없이 푸념만 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학습을 통해 자신을 치열하게 갈고 닦기 시작했단다. 누군가가 “학습이란 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자신은 허점을 메우기 위해 끝없이 성장하고 성찰하며 학습한 ‘존재’라고 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뭔지 모를 숙연함과 따스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에게 많이 도와달라, 많이 배우고 싶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내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자동적으로 질문이 돌고 돌았다. ‘뭔 일이 일어난 거지?’ 그 질문의 첫 소리가 들렸다. ‘정말 부럽다. 그녀는 사람이야? 화성인이지!’라는 음성이었다. 몸의 감각은 내 처지에 대한 약간의 답답함과 부러움으로 상기되었고, 어떤 희망도 느껴졌다. 바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어떤 점이 부러워?’
성공이, 건강이, 돈이, 명예가, 가정이, 능력이…. 하나씩 하나씩 비교가 되었다.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끝없이 조심하고 관리해야만 하는 체력, 그로 인해 짧은 커리어와, 엄마 표현에 의하면 노후 대책이 걱정되는 딸….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내 기분을 살펴보았다. 어라? 자존심이 상하거나 자존감이 구겨지지 않았네. 질투와 시기로 남과 비교하면서 자학하고 ‘너는 되겠어?’ 하는 비아냥의 자조섞인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넌 어떻게 되고 싶은데?’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렇게 되려면 넌 당장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이성적인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그녀의 삶이 배움으로 들어왔다.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로 태어나 스스로의 삶을 일구었구나. 오늘 그녀의 성공은 어제의 피나는 학습의 결과였던 것이다.
과연 나는 그녀처럼 전심전력하며 학습했던가. 성찰이 일었다. 일상에 쫓겨 나만의 시간을 야무지게 가지지 못하고 바삐 달려가기만 했다. 일을 핑계로 마냥 미뤄둔 일들에 치였다. 늘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며, 정작 해야 할 일은 미룬 채 내가 하고 싶고 일에만 머물렀다. 충동적 호기심을 따라 이것저것에 끌려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외모는 그럴 듯하지만 골다공증으로 부실한 체력, 제목만 거창하게 달아놓은 쓰다만 노트들, 언제 썼는지 모를 벽에 눌러 붙어 있는 빛 바랜 목표들……. 다시 삶의 목표를 향해 고삐를 죄야할 때구나. 불과 몇 년 전, 고맙게도 내게 주어진 진정성, 쾌활함 그리고 열정으로 남들에게 희망과 밝음, 그리고 풍요를 전하겠다는 의도를 세우지 않았던가.
그녀의 에너지가 전해져 오면서 잠시 나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일었다. 지금처럼 자기인식을 할 수 있는 변화가 내게 일어났음을 알아차리면서 말이다.
안 되는 이유만 찾고, 속으로 불만·불평으로 궁시렁거렸던 나를 벗어나 ‘되는 이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 등에 초점을 맞추는 긍정적 사고가 내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여 주었다.
새해다. 벌떡 일어나 벽에 붙은 낡은 목표들을 떼내며 다시 한번 내게 물어본다.
“천비키, 너 정말 원하는 게 뭐야?”, “그러면 무엇을 시작 해야 하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 새해가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