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비키의 명상24시 16] 번잡한 출퇴근길서 찾는 내 마음의 여유

[아시아엔=천비키 본명상 코치] 올해 필자에게는 도전적인 일이 생겼다.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의 일이다. 모 기업에 상주하며 상담을 맡게 된 나는 9시 반 출근과 6시 반 퇴근, 12시 점심이라는 짜여진 틀 속에 가둬진 것이다. 물론 필자가 주로 머물렀던 명상센터도 삶의 리듬과 규칙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택 근무 수준으로 집에서 가까운 위치 덕분에 여유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기에 출퇴근자의 긴장을 몰랐다. 긴 방학이 끝나고 3월에 학교를 가는 학생이랄까.

고작 30분 가량 전철을 타고 가는 곳인데 푸시맨이 친절하게 차 안으로 밀어주는 시간대라서 그런지, 그 길은 평소와 달리 정말이지 길고 유구하게 느껴진다.

나는 과연 이 아침 30분의 금싸라기같은 이동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내 몸이 어디에 있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의식의 빛이 밝고 밝다면 제한된 시공을 넘어서 원하는 상태를 창조할 수 있지 않는가. 당연히 그 상태는 빛나고 보람된 값진 하루를 보내기 위해 컨디션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바로 생활명상이다. 고개조차 들기 민망할 정도로 서로의 얼굴이 맞닿은 빡빡한 공간에서, 아직 숙취에 다 못 깬 이웃 아저씨의 입김이 가까이에서 훈풍으로 불어올 때, 전철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몸이 회전문처럼 휙휙 돌아갈 때, 큰 소리로 떠드는 상식 밖의 이웃으로 인해 불쾌감이나 짜증으로 오염시키지 않고 어떻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따뜻한 연민의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미소마저 지을 수 있을까?

다시 전철을 탄다. 혼잡함과 분주함, 어지러움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선다. 그리고 펼쳐진 거대한 삶의 장을 바라본다. 중심을 잡고 온전한 이웃의 체험을 통해 성숙한 존재의 길을 가보겠노라. 출퇴근의 여정 속에 고결한 삶이 있노라하며 거창한 존재론에 머쓱한 웃음을 짓고 짐짓 마음을 다잡는다.

풍경1: 기다림

분주하게 걷고 뛰다가 차 문 앞에 섰다. 줄을 서는 기다림에 약간 초조감이 든다. 이내 알아차리고 구겨진 몸을 완전히 펴서 이완한다. 정수리를 들어 올리고 후~하고 깊게 내뱉고, 어깨의 힘을 빼 다시 한번 후~하고 이완한다. 두 발도 일직선으로 두고 온 몸에 호흡을 통과시켜 전신에 힘을 뺀다. 기다리는 동안 하나, 둘, 셋…열 하며 날숨에 맞춰 호흡수를 세면서 마음을 평정히 한다. 어느새 지하철 차량은 도착해 있다. 먼저 타려는 마음을 알아차려보며 품격있는 신사숙녀처럼 옆으로 서서 온전히 서 있는다.

풍경2: 중심잡기
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부터 밀리고 부딪혀 가까스로 안으로 들어간다. 주변의 복잡함으로 인해 인상 쓴 모습을 알아차리고 흐트러진 몸의 중심을 잡는다. 눈을 감는다. 의도적으로 호흡을 하며 얼굴의 근육을 푼다. 어깨의 들어간 힘을 이완하고 두 다리에 힘을 주어 균형을 잡는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다리를 이완한다. 두 발의 감각을 느낀다. 정거장마다 열차가 서고 흔들거린다. 이 때마다 온 몸에 의식적으로 힘을 준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무쇠처럼 만들어 근육을 단련한다. 흔들림이 심할 때는 손잡이를 잡고 한 발을 살짝 들어올려 균형을 잡는 훈련도 해본다. 어느새 나는 지금 헬스장에 있다.

풍경3: 자리에 앉기
몇 정거장 지나고 나면 잠시라도 자리에 앉아 부족한 잠을 자고 싶다. 본능적으로 앉을 자리를 찾는다. ‘누가 빨리 자리에서 내릴까’하며 점을 치는 마음. 유치하지만, 빈 자리가 나오자마자 화색이 돌며 “오, 땡큐!”가 절로 나온다. 앉기가 무섭게 몸이 무너져 내린다. 순간, 알아차리고 허리를 곧추 세운 후 정좌를 한다. 약 3분간만이라도 곧게 펴고 앉아 몸과 마음을 호흡으로 조율한다. 작은 차이가 짝퉁과 명품을 만들 듯 조율 후 조는 것이 좀더 효과적인 컨디션으로 이끈다. 가끔씩 조는 중에 연세 드신 분이 들어설 때도 있다. 앉은 자리가 순식간에 가시방석이 돼버린다. 매번 그러진 못하지만 양보한다. 그들의 주름진 눈과 이마에서 갈매기가 접힌다. 그들 마음의 갈매기가 내 마음으로 날아든다. 가슴이 바다처럼 넓어진다. 벌떡 선 보람이 있구나. 내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되어 한결 가벼워지고 열감(熱感)마저 느껴진다.

풍경4: 관찰하며 이웃만나기
앉아서 휭 하고 둘러보니 전철 안의 풍경은 고단하다. 앉거나 서거나 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장해보면 두 모습 중 하나이다. 눈을 감고 있거나 핸드폰을 보는 사람이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도 귀에는 이어폰이다. 피로하고 잠에서 덜 깬 얼굴들, 무표정한 얼굴로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들 한분 한분을 보며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짓는다. 마음 속으로 ‘모두들 행복하기를’하고 축원을 담고서. 우리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그들 속에 내가 있고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음이다.

풍경5: 공부하기

조심스럽게 가방 속에서 작은 책을 꺼내 읽는다. 한페이지 읽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나에게 주는 선인의 지혜를 되뇌인다. 나는 이 순간 선인과 함께 하며 현실을 바라본다. 한 단원을 읽고 눈을 감는다. 음미하며 오늘 나는 세상에 기여하고 살아갈지를 화두삼아 세상살이에 동참한다.

풍경6: 한숨 돌리고 감사하기
출퇴근 길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해 하는 순간이 곧 다가온다. 드디어 한강다리를 건넌다! 넘실거리는 한강의 물을 바라보기 위해서, 2분 가량 되는 그 장관을 위해 조는 것도, 읽는 것도, 모든 것을 중단한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 틈새에 낀 몸을 겨우 빼고 창 밖으로 다가간다. 햇빛에 한강이 반짝이며 황금이 된 모습을. 더없는 아름다움을 몸과 마음에 담고 싶어 그저 그 자체를 바라보며 호흡한다. 잡념이 일면 돌로 만들어 저 푸른 강에 호흡으로 퐁당~하고 던져버린다. 맑고 투명한 물처럼 오늘의 삶의 의도가 온 몸에 흐른다.

1초가 아까운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 나는 오늘도 덜컹거리는 전차에서 헬스장으로, 수면실로, 관광지로, 세상 돌아가는 현장으로, 우리 이웃들과 더부살이를 하며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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