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반가사유상’은 1400년만에 만나 무슨 얘기 나눴을까?
[아시아엔=정지욱 영화평론가, 문화평론가, 가톨릭문화원 어린이영화제 ‘날개’ 수석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중생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을 좇지 않고 다 함께 잘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10m 거리를 두고 마주 앉은 한국과 일본의 두 보살님은 두눈을 내리 감고 깊은 상념에 잠겨 계신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며 앉아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
1400년만에 함께 자리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두 보살님의 고뇌처럼 세상 모든 인류가 행복해지는 세상은 언제쯤 도래할 것인가? 어두운 공간에 두 보살님에게만 은은한 조명을 하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들 모두가 숙연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게다.
한국과 일본의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지난 5월24일부터 6월12일까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한국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주구지(中宮寺) 목조반가사유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특별전시가 열렸다. 전시 기간 휴일 없이 보름 동안 열린 전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공유한 불교사상의 가장 뛰어난 한 부분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였다.
6세기에 제작된 금동반사사유상은 삼국시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작품이고, 목조반가사유상은 7세기 아스카(飛鳥)시대를 대표하는 불교조각품이다. 하나는 금동으로 주조했고, 다른 하나는 녹나무(樟木)를 깎아 만들었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작품 모두 그 당시 유행했던 미를 신앙을 바탕으로 한 반가사유상이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주구지(中宮寺) 목조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의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보살상이다. 인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져 불교에서 많이 만들어지는 예배의 대상이다. 두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자.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 82cm로 금동으로 주조해 만들었다. 손가락을 뺨에 살포시 댄 채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상념에 든 보살의 끝없는 평정심과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는 이에게 전한다. 조각의 세부적인 표현은 평면적이지만, 부드러운 신체 곡선과 우려하게 흘러내리는 천의(天衣), S자로 주름잡힌 의자 뒷면의 표현 등이 보는이로 하여금 변화무쌍한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양 어깨에 튀어나온 천의 자락과 장식이 가득한 보관(寶冠) 등의 특징이 6세기 후반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동으로 이뤄진 보살상 전체가 일정한 두께로 이뤄져 당시 뛰어났던 우리나라의 주조기술과 전체적으로 뛰어난 조형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주구지 목조반가사유상은 높이 167.3cm로 머리에는 두 개의 둥근 상투를 올렸으나 자세히 살피면 못 구멍 자국을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원래는 보관을 착용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살며시 올라간 입가와 편평한 귀의 묘사가 예스럽고, 커다란 크기임에도 신체의 비율이 자연스러우며 치맛주름이 유려해 후대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특히 뒷면엔 커다란 대나무가지 모양의 받침대를 세워 광배를 꽂아 화려함을 연출했다.
당시에 뛰어났던 목조기술을 활용해 녹나무로 제작했으며, 나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각 부위를 끼워 맞추는 방식을 택했다.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574~622)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일본 나라현 주구지(中宮寺)에 소장된 작품으로 한반도에서 전래된 반가사유상을 일본적인 조형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불교조각으로 평가된다.
어둡고 고요한, 전시장이라기보다 이곳은 사유하는 곳
전시 공간에는 두 보살조각상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전체 조명도 어둡다. 두 작품을 비추는 국부조명마저도 비교적 어둡게 해놓았다. 특히 주구지 목조반가사유상의 조명이 어두워 관람객 중에는 너무 어둡다며 불평하는 이도 있었지만, “온도·습도에 취약한 목조라서 일본측에서 100럭스(lux) 이하로 전시해 달라”는 일본측 요청에 의해 그렇게 처리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비교적 밝게 조명해 놓았다.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에서, 그것도 두 작품을 사방에서 다 볼 수 있도록 배치해 놓은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약 두배의 크기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수도 있는 금동반가상이었지만 10m라는 거리를 두고 배치한 것은 단순히 크기의 차이를 극복할 뿐 아니라 두 작품을 좀 더 객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관람객 동선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겠다.
이 전시실은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국보를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의 고통과 번뇌로부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돌아다니며 사방으로 두 작품을 볼 수 있게 해놨다. 현대인들에게 단순한 박물관을 뛰어 넘어 이곳에 찾아와 보살의 깊은 뜻에 귀 기울이고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며 무한한 쉼의 찰나(刹那)를 느끼는 휴식공간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이며 획기적인 두 반가사유상의 특별한 만남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던 지난해 한국과 일본에선 여러 행사가 기획됐다. 이 전시도 그중의 하나로 결실을 맺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 개관하던 2004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던 이영훈 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제박물관협회(ICOM) 총회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국보 83호와 일본 국보 1호인 고류지(廣隆寺) 목조반가사유상이 만나는 전시가 이뤄진다면 한일 양국간 긴밀한 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염두에 둔 한국과 일본 관계자들이 오랜 시간 여러 차례 협의했지만 고류지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아, 결국 반가사유상이라는 관점에서 공통된 양국의 두 보살상을 한자리에 전시하는 것이었다. 이 전시 공개에 앞서 기자들과 전시장을 함께 둘러봤던 오하시 가쓰아키(大橋一章)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쌍둥이 불상’이라 불리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교토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이 함께 전시됐다면 좋았겠지만, 고류지 불상은 신라 불상이니 한일 양국의 대표 반가상을 비교 감상한다는 취지에는 이 두 점이 더 적합하다”고 이번 전시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했다. 의욕적으로 이 전시를 준비했던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직접 관람객들 앞에서 ‘반가사유상 특별전의 기획 및 전시 과정과 의의’를 설명하는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두고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국가 소유의 문화재이기 이전에 종교적 의미를 담은 예배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에게 차를 올리는 헌다(獻茶)의식을 특정 종교행사라는 이유로 불허해 논란이 일어난 것은 매끄럽지 못한 행정적 처사라 하겠다. 특히 전시 개막 전인 23일 주구지 목조반가사유상에는 개안(開眼)의식에서 일본측의 헌다 및 헌화가 진행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커진 것이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조계종을 방문해 이에 대해 해명하고 일본 전시에서는 보다 합리적으로 행사가 이뤄지도록 협조하기로 했다는 것은 다행이다.
서울 전시는 이미 종료됐다. 하지만 6월21일부터 7월10일까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본관에서 “미소의 부처-두 반가사유상”(ほほえみの御?―二つの半跏思惟像)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개최될 이 전시는 또 다른 두 반가사유상의 특별한 만남의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전시를 통해 많은 일본인들이 양국의 국보 반가사유상을 이해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다만 서울에서 무료로 관람객에게 공개됐던 것과는 달리 도쿄에서의 전시는 유료(일반 1000엔, 대학생 900엔, 고교생 400엔, 중학생 이하 무료)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