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팔순 노부부 사로잡은 헨리8세 초상과 반가사유상

한스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의 초상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오늘(12월 29일) 아내와 함께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정은진 교수(이화여대 미술사학과)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제10강 ‘영국·네덜란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강의를 경청했다.

이 강좌는 서양미술의 핵심에 위치하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전개 과정을 작품과 함께 감상하고 다채롭게 해석하고자 개설되었다. 애초 지난 4월 14일부터 12월 22일까지 총 16강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몇 달 휴강하여 내년 봄까지 이어질 것 같다.

영국에서 중세(中世)와 르네상스(Renaissance)를 가르는 사건은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 1455-1485)으로 붉은 장미를 표시로 삼은 랭커스터 왕가와 흰 장미를 표시로 삼은 요크 왕가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다. 1485년 헨리 7세부터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까지의 튜더왕조가 영국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절대왕권을 행사했다.

헨리 8세가 단행한 종교개혁은 교리나 신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영국 내에서 교회 조직의 수장을 국왕으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이에 국왕이 추기경과 주교를 임명했다. 건축의 튜더양식(Turdor architecture style)은 고딕양식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의 장식성이 더해졌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이 그린 헨리 8세 초상화,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귀족들의 초상화 등이 소개됐다.

네덜란드는 1550년 칼뱅주의자들의 유입과 1558년 스페인의 지배 등으로 정치적·종교적 혼란을 겪었다.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 유럽은 소빙하기(little ice age)로 기온이 하강하면서 기후 및 지형적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 강의에선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의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Man Tree’와 피터르 부뤼헐(Pieter Bruegel, 1525-1569)의 ‘The Hunters in the Snow’, ‘The Blind Leading the Blind’ 등 여러 미술작품들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매너리즘(Mannerism, 1530-1600)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era)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뜻은 양식/방법(style/manner)을 나타낸다. 매너리즘은 1530년경 로마, 피렌체, 만토바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특징은 자연을 모방하지 않으며, 고전주의(classical)를 반대한다. 고도로 세련되고 우아하며, 주제가 혼돈스러움(puzzling)을 준다.

필자는 이날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a),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Bartolomeo Ammanati), 조반니 다 볼로나(Giovanni da Bologna), 폰도르모(Jacopo Pontormo), 파르미자니오(Parmigianina, 1503-1540), 브론지노(Agnolo Bronzino, 1503-1572)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강의 후 우리 부부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사유의 방’에서 전시되고 있는 ‘반가사유상’을 관람했다. 삼국시대에 제작되어 쌍벽을 이루는 두 반가사유상(국보 78호와 83호)을 나란히 한 공간에 모시고 있었다. 평소 한 점은 수장고에 있고 한 점씩만 교대로 전시되던 두 반가사유상이 함께 상설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왼쪽 다리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린 이른바 반가(半跏)한 자세에 오른 뺨에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대어 마치 사유(思惟)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고민하여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Siddhattha)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반가사유상은 흙, 돌, 나무, 금동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며, 현재 40여 작품이 파악되고 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고대 불교조각사 연구의 출발점이자 6-7세기 동아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불교조각품 가운데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크기가 93.5cm로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중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최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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