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관음상’ 일본서 환수해 ‘영겁의 미소’ 나누길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어떤 미소일까? 몇 년 전 미국여행을 끝내고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해 공항 내의 상점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 때 어느 상점의 쇼윈도 한 구석에 새카만 칠을 한 불두(佛頭)가 눈에 들어왔다. 주먹보다 조금 큰 불두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청동으로 만든 흑인 부처님 같이 보이는데 그 미소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24달러라고 하기에 두말없이 구입해 필자의 덕산재(德山齋) 거실에서 매일 나와 교감을 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원불교 경주교당에 인연이 있어 경주를 찾았다. 경주 해안가 문무대왕 수중릉에서 북쪽으로 몇 Km를 달리면 감포(甘浦) 바닷가에 ‘지중해(地中海)’라는 멋진 레스토랑이 있다. 화가 출신의 주인이 경영하는 이 레스토랑에 역시 사람 머리통만한 불두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불두는 부여(夫餘) 어느 논두렁에서 발굴된 석두(石頭)인데 마침 그곳으로 여행하던 지중해 사장이 구입해 돌에 옷칠을 해놓았다고 한다. 나는 그 불두의 미소가 하도 신비스러워 경주를 여행할 때마다 달려가 생선요리를 즐기며 부처님의 미소를 감상했다.

지금으로부터 15, 16년 전에 배낭하나 걸머지고 중국을 비롯해 티베트, 네팔을 거쳐 인도로 들어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적지(聖跡地)를 찾아 두루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 사르나트(鹿野園)의 박물관에 들렀다. 인도 국립박물관으로 어마어마한 미술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깊은 곳 필자의 눈길이 닿은 곳에 부처님의 등신상(等身像)이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기억으로는 역시 검은 색 불상으로 그 미소는 가히 영겁(永劫)의 미소였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미소는 대개 영겁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신비로움이 있다, 석굴암(石窟庵) 불상의 미소도 그렇고 국보금 불상의 미소가 다 한결같이 신비의 미소를 띠고 있다.

6월 4일자 <한겨레신문>에 ‘금동관음입상 90여년 만에 일본서 소재 확인’ 소장자 “한국 귀환 바란다…환수 나서야”한다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옷주름·음영(陰影)·굴곡진 몸매 등이 완벽하게 세공돼 백제 7세기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이라며 1907년 부여에서 출토돼 1920년대 일본인이 매입·반출된 뒤 지금껏 ‘베일에 싸인 불상’이라고 했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가장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를 찾았다. 한국 미술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혔으나 1907년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뒤 일본에 반출돼 90여 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의 소재가 최근 일본에서 확인됐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은 이 불상을 소장해온 일본의 한 기업인이 지난해 12월 도쿄를 방문한 한국미술사학회의 최응천(동국대), 정은우(동아대) 교수에게 이를 공개했으며, 두 교수는 이 관음상이 진품임을 공식 확인했다.”

7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인자한 미소를 띤 표정, 어깨·허리 등을 살짝 비튼 자세, 천의(天衣)를 두르고 구슬장식(瓔珞)을 걸친 모습 등이 완벽한 조화와 미감을 보여준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국보 78호·83호 반가사유상,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맞먹는 명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농부가 발견한 이 불상은 1922년 일본인 이치다 지로에게 팔려 해방 직후 그가 일본에 갖고 간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유산회복재단측은 “70년대 이치다 한테서 불상을 사들인 현 소장자를 3년 전 찾아내 협의한 끝에 지난 연말 동의를 얻어 공개하게 됐다”며 “소장자는 불상이 귀환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쳤다”고 전했다.

불교미술사가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는 “반드시 돌아와야 할 한국 미술의 대표작이다. 정부와 학계가 환수를 위해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잊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미소로 우리나라에서 장인(匠人)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빼어난 얼굴과 몸매가 눈앞에 자태가 어른거린다”고 극찬했다.

지난해 말 일본 도쿄에서 이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을 실견(實見)한 정은우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 불상을 실측 조사한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도 “백제 조각 최전성기의 부드럽고 날렵한 조형감각이 여실히 드러난 명작”이라며 미술사 연구에 새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했다.

정은우 교수는 의견서에서 “백제 7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이라고 단언했다. ‘백제의 미소’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라는 말이다. 보관(寶冠)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위로 틀어 올렸고, 부드럽게 늘어진 천의, 다리에 힘을 빼고 목과 허리 등을 살짝 뒤튼 삼곡(三谷) 자세가 돋보이며, 미소를 머금은 자비로운 얼굴 표정과 우아함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불상을 어떻게 환수할 것인가”이다. 불상을 일본에 가져간 이치다 지로는 죽을 때, 후손들에게 “이 작품은 절대로 바깥에 공개하면 안 된다”는 유지(遺志)를 남겼다고 한다.

백제금동관음상의 가치는 국보 금동반가사유상과 백제금동대향로의 전시 보험가액인 300억~500억원대에 필적하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청이나 박물관 등 특정한 기관만이 추진하기에는 버거운 과제다. 범정부 차원의 환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삭막한 세상에 이제 ‘백제금동관음상’이 고향을 찾아 우리 국민들에게 신비의 미소를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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