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비키의 명상 24시⑫] 아름다운 이별 “솔직하게, 당당하게 털어놔라”
[아시아엔=천비키 본명상 코치] 한 사회 초년생 얼굴에 수심이 가득 하다. 평소 자신감과 용기에 넘친 젊은 친구였기에 마음이 더 쓰였다.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니 여자 친구와 헤어질까봐 마음이 많이 불안하단다. “오늘 저녁 식사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면서 얕은 숨과 한숨을 섞여가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헤어지면 어떤 일이 있을 것 같냐”고 물어보니 “여친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어요”라며 고개를 푹 숙인다.
다시 물었다. “이런 당신 모습 보면 그녀가 만나고 싶을까요?”
자신의 감정에서 빠져나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거 안다”고 했다. 그에게 “오늘 그녀와 만나면 진짜로 뭘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당신 없이는 안 될 것 같다”고, “정말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너무 불안해서 말이나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일단 “원하는 일에만 주의를 돌리자”며 감정을 털어내듯 몸을 털게 한 후 자세를 바로 세우고 호흡을 함께 하였다.
“숨소리를 의도적으로 크게 내어 배가 부풀려지고 줄어드는 것을 느껴보세요. 특히 날숨일 때 그렇게 해보세요. 익숙해지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 입김으로 다 빠져 나간다고 상상합니다.”
먼저 심호흡을 세 번 하였다. 조금 편안해졌다는 말에 따라, 다시 열 번의 호흡을 함께 했다. 숨길이 트이니 구겨진 표정이 점점 펴지고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다. 이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이 생겼다. 나는 편안해진 그에게 오늘 있을 그녀와의 만남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 경청하는 자신을 바라보세요. 당신의 답답함을 토로하기보다는 그녀의 감정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자신을 마음 속에서 보길 바랍니다. 도중에 끼어들지 말고 그저 침묵으로 있되 온전히 당신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들어줍니다.”
그의 감긴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눈동자가 멈출 때마다 나는 부드럽게 속삭여주었다.
“그녀의 생각을 다 들어봤나요? 그렇다면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보며, 그녀의 말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최근에 소원해지는 관계 속에서 무엇이 느껴졌는지를 솔직히 말합니다. 즉, ‘그 말을 들으니 서운하다. 슬퍼진다, 최근 당신의 모습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다’라는 표현을 해주세요.”
그의 감은 눈 속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내 “아무래도 저는 못하겠는데요” 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나약하게 볼까봐서 그렇단다. 평소에도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며 언제나 남자답고 호탕한 모습만 보여 주었기 때문이란다. 그에게 눈을 떠 내 눈을 보라고 한 뒤 말해 주었다.
“서운하면 서운하다,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라면 과연 그녀는 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붙잡으려는 마음에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말할 수 없다면 그 만남은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오래간들 당신은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진짜 행복감을 맛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몰라주는데 누가 당신의 감정을 보듬어 주겠는가. 다시 그에게 눈을 감게 했다. 자신의 감정을 느껴보라고 하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여지껏 헤어질까봐 두려워서 외면해 왔기에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몸의 감각들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그리고 정말 이 관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였다. 그가 용기있게 한 단어씩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끝으로 “서로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고 직접 이 순간 말해보라”고 했다. 명상이 잘 되었는지 그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오늘 저녁 만남에 자신의 진심을 떨지 않고 말할 수 있겠단다.
“그래요. 이런 밝은 모습으로 만나면 관계가 계속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헤어질 가능성도 받아들이셔야 해요.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금처럼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 듯 말이지요.”
그가 멈칫했다. 불안해도, 마음이 편안해져도 헤어지게 된다면 ‘우리가 왜 이런 긴 시간을 보낸 것이냐’ 하는 표정이었다.
“당신이 오늘 나와 처음 만날 때처럼 불안함과 두려움에 쌓여 그녀를 만나고, 진짜로 헤어지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렇게 되면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왜 그 때 하고 싶은 말을 못했을까?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을까?’ 등의 후회로 가득 찰 겁니다. 자신에 대해 분노감도 느껴질 거예요. 반면에 평정심으로 그녀를 만나 내 진심을 표현하고 헤어진다면 어떨까요? 감정의 주인이 된 경험을 통해서 성장할 거에요. 그러니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노력 대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고 솔직히 표현하여 내면과 조화하는데 힘을 쓰세요.”
그날 저녁 그에게 전화가 왔다. 헤어졌노라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위로를 해주었다. 지금 많이 아플 것이고, 그것도 며칠 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통찰하기 위해 그냥 그 아픔 속에 충분히 머물러 느껴보라고 했다. 자신의 사랑이 진실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 나를 잃어버리고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지, 혹시나 집착은 아니었는지를 제대로 보라했다. 그럴 때 아픔은 상처가 되지 않고, 성장통으로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헤어진 그녀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도 하나하나 떠올리며 한 때 사랑했던 그녀가 잘 살 수 있도록 축복해주라고 했다.
을미년 한 해가 지나간다. 아름다운 추억도 있겠지만 집착하거나, 떠나보내기 어려운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소중한 경험들이다. 과거의 경험을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로 쓰려면 애써 보내지 말고 멋지고 맘에 드는 이성을 바라보듯 음미하고 충분히 느껴주자. 충분한 애도 속에 축복의 시간도 가지며 2015년을 마무리하자. 2016년 새해는 당신의 뜻과 사랑으로 가득 찬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