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비키의 명상 24시] 술·담배 없이 못사는 아버지들의 작은 성공
[아시아엔=천비키 <아시아엔> 명상전문기자] 뜨거운 여름날을 뒤로 하고 계절이 바뀐 9월. 추석이 있는 이 달은 눈부신 햇살 아래 한 여름동안 맺은 알곡을 수확하며 결실에 감사하는 달이다. <아시아엔> 독자들은 상반기 동안 어떤 보람과 수확을 맺었는가? 특히 가족과 함께 하며 사랑을 전하는 한가위 달을 맞아 그들과 맺은 행복의 결실이 있다면 무엇인가?
필자는 가족과 갔던 여름휴가가 떠오른다. <매거진> 8월호에서 소개한 ‘온전한 알아차림’의 한 방법으로 폭음과 지나친 흡연으로 고생한 가족들을 도운 뜻깊은 시간을 여름휴가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사실, 2박3일간 여행의 시작은 유쾌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한 가족처럼 지냈던 지인 P의 가족과 함께 했는데 양 가족의 어머니들 요구로 휴가지도 피정센타(가톨릭에서 기도하며 휴식하는 장소)로 하였다. 어머니들은 먹고 마시며 노는 여행이 싫다고 했다. 두 아버지들 때문이라고 했다. 기도와 휴식, 여행이 어우러져 있는 피정센터의 공식 일정 이후 양쪽 가족이 한 방에 모였다. 자연스럽게 어머니들의 바가지 섞인 푸념이 시작되었다.
“네 아빠 때문에 못살겠다. 병원에서 혈압약을 처방받으며 술 조심하라고 했는데 어제도 친구들과 어울려 엄청 마시고 들어왔으니···아휴” 우리 어머니 푸념에 P의 어머니도 “내일이면 칠십인데 담배를 아직도 한갑씩 피워대는 게 말이 되나요? 결국 아프면 누가 돌보겠어요. 나나 비키 엄마가 간병을 해야 하잖아요?”
어머니들의 화와 원망의 소리가 날카로워지자 양쪽 아버지들은 “술 좀 마시고, 담배 좀 피기로서니 뭐가 그리 큰 문제냐”며 난색을 표했다. 그 사이에서 내 또래인 P는 핑퐁처럼 왔다갔다 하는 설전을 웃음으로 받아내며 조심스럽게 자신이 최근 절주에 성공한 방법을 우리 아버지께 조언해 드렸다. 주종이나 안주류를 바꾸시라, 술 마시기 전에 무엇을 드시라,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 술자리를 피해봐라 등 ‘하시라, 마시라’ 등의 이야기가 친절하게 쏟아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빛은 그다지 동기부여가 된 것 같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P의 아버지는 “왜 자네는 절주가 안 되느냐”는 핀잔을 곁들였고, 아버지는 그를 보고 “왜 나처럼 단박에 담배를 끊지 못하냐”며 맞받아쳤다.
남편들의 지나친 흡연과 폭주로 속앓이를 한 두 어머니는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길 바랬다. 다섯 분의 이런 저런 얘기를 다 듣고서야 나는 입을 떼었다.
제대로 맛보고 느껴라
“저는 담배나 술을 끊으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게요. 계속 피고, 드시길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엄마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흘겨봤다. 아버지들 또한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대신 드실 때 제대로, 온전히 맛을 보세요. 뼈속까지 말입니다. 마치 마지막 한모금의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온 몸으로요. 소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는 훅~하고 빠르게 삼키시는데, 온 몸으로 술을 마셨다라는 느낌이 들 때까지 삼키지 마시라는 말이죠. 삼키면서도, 삼킨 후에도 그 한잔이 몸에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제대로 느끼세요. 안주로 뜨겁게 끓는 알코올 기운을 빨리 지우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폭음 이튿날 후유증도 제대로 느껴주세요. 해장 등으로 풀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말이죠. P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배 피우실 때 딴 생각하시지요? 절대 생각에 마음을 뺏기지 마시고 그저 담배의 깊은 맛을 느끼는 데만 집중하세요. 담배를 빨아들일 때, 내뱉을 때, 그 이후 목과 코가 어떤지를 말이죠. 가급적이면 화장실이나 승용차 안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피우시고 이후 그 장소에 다시 들어가 깊은 숨으로 냄새도 완전히 맡으시길요”
P씨 부친은 딴 생각없이 담배 피우는 건 정말 어렵겠다면서도 풀린 눈빛으로 수긍하셨고, 아버지는 한번 해보시겠다는 눈빛으로 반짝였다. 그리 좋아하는 술을 “마시지 말라”가 아닌 “드시되 정말 깊은 맛을 제대로 보며 드시라”는 내 말 속에 일말의 희망을 느낀 듯했다.
덧붙여 나는 아버지들께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시라고 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느끼며 의도를 세우시라고 했다. 또한, 담배를 피우거나 술자리에 들기 직전 심호흡을 하고 그 모습을 떠올려 긍정의 에너지를 마시고 피우시라고 했다. 양가 어머니들께도 당부했다. 염려의 잔소리 대신 기도를 해드리라고. 그저 지켜보며 만약 작은 성공들을 하게 되면 아낌없이 칭찬해 주시라고 했다.
이후 양쪽 아버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P의 어머니로부터 “비키야, 너무 고마워.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살 것 같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아저씨와 직접 통화했다. 끊은 비법은 간단했다. 담배냄새가 배인 곳에 들어가 숨을 제대로 쉬어 냄새를 맡으셨단다. 역겹더라고 했다. 그래도, 시시때때로 ‘찌르르’ 하고 담배 욕구가 올라오더란다. 그때는 주의를 다른데 주고 묵묵히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라지더란다. 몸이 맑아지니까 그렇게 끊으려고 했던 프림에 설탕으로 버무린 커피도 이제 드시지 않는단다. 순수 커피만 몇 잔 마시게 되더라는 말씀이었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더 큰 변화가 찾아왔다. 기회만 되면 술자리를 찾거나, 만드시던 분이 열 번이 넘는 술자리에 가지 않으셨단다. 굳이 참석할 수 밖에 없을 때는 아침에 명상 중에 본 맑고 밝은 당신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가고, 술집에 들기 직전에도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들여다보고 참석했다고 한다.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정말 제대로 맛을 보았단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몸을 보셨다고 한다.
“얘야, 제대로 맛을 보았더니 도저히 마실 수가 없더구나. 소주로 혀가 타고, 감각이 마비가 된 것을 실감하겠더라. 삼키면서도, 삼킨 후에도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위가 찌리리 하니 맛이 탁 떨어지더라. 예전에는 무감각하게 톡 하고 털어 넣고 삼켰지. 느낄 새도 없이 안주를 집어 먹고···. 그러다보면 감각을 잃어 술이 사람을 먹고, 안주가 무한정 들어갔는데 네가 일러준 대로 마시니 참으로 신기하더구나. 있는 그대로 맛을 보니 못 마시겠더라구. 사람들이 나더러 술 끊었냐고 하길래 그 반대로 ‘정말 적극적으로 제대로 마신다’고 했다.”
나는 두분께 깊은 사랑과 감사, 그리고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신감으로 당당해짐을 알아차렸을 때 한 가지 주문을 더 드렸다. 노트에 계속 변화한 모습을 기록하며 작은 성공이 올 때마다 스스로를 칭찬하며 충분히 보상을 해주시라고. 그것이 그렇게 좋아하셨던 술이면 술로, 담배면 담배로 말이다. 두 아버지들은 내 제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신 내게 당신들의 ‘성공기’를 써서 주변 분들과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으로 또다른 누군가가 변화된다면 보상은 충분하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