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새해, 단 1프로 단 1분의 가능성과 희망만 있어도
[아시아엔=천비키 경남FC축구팀 멘탈코치 역임, 대한명상협회 이사] 임인년 새해, 정말 새롭게 맞이하고 싶다. 그 어느 해보다도 갓 태어난 아기처럼 살아보고 싶다. 멘탈코치이자 명상가라는 직업상 나는 누구보다도 웰빙 하면서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주변의 시선을 늘 받아왔고, 내 스스로 신념도 강했다. 그러나 새해 첫날, 나는 죽을 만큼 헤매고 힘들어하는 내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이렇게 밝히는 게 사실 겁도 난다.
하지만 성공스토리보다 나의 쓰라린 경험이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더 보람있고 직업인으로서의 나의 책임과 역할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의 민낯을 고백해본다. 더 이상 계획이 필요조차 없는 삶, 달력 없이 살아온 2021년 지난 한해를 말이다.
코로나사태가 발생한 2020년, 나는 오랜 병이 재발돼 외부활동을 거의 못하게 되었지면, 이참에 재택을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모두가 쉬어갈 수밖에 없는 코로나 상황에서 시간은 내 편인 듯했다. 한두 번 겪었던 상황도 아니고, 이제껏 병세를 안고 극복하며 살아왔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재활하면 또 좋아지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게 아니었다.
맨손체조, 독서, 명상 등 날마다 해오던 간단한 활동이 일상에서 점점 불가능해졌다. 아침마다 1시간 정도 정해진 수행을 못할 상황에 이르렀을 땐 온 몸이 무너지는 심경이었다. 걷고, 말하고, 밥 먹는 것조차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지팡이를 의존할 때도 있었다. 매일 밤 닥쳐오는 심신의 고통은 어떤가. 통증과 이상 증세로 거의 날밤을 새다시피 하였다.
20년 전, 내 몸에 이상이 처음 생겼을 때 병원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완치가 어려우니 그저 잘 관리나 하고 사는 게 최선이다.” 그 말에 따라 나는 온갖 대체요법이나 자연요법 등 해볼 만한 것은 다 했다. 그래서, 2020년 전까지만 해도 멘탈코치와 명상지도, 강의 등을 제법 잘 해낼 수 있었다. 주변에선 이런 내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까지 했다. 물론 내 입장에선 초인적인 힘을 쏟지 않고서는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해지면서, 온 몸과 맘이 무너져내렸다. 다시 병원을 찾아야 했다. 의사는 “지금 상태로 활동하는 건 어렵다. 입원해서 증세를 완화시키는 약을 복용해보자”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입원은 처음부터 ‘No’였고, 약은 원인 치료가 되지 않기에 먹다가 그만 두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매번 쓰러질 것 같은 의식과,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심리적 불안과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멘탈코치도, 명상가도 아니었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의심하고 언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불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환자일 뿐이었다.
사람들 멘탈을 강화시키고 평정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쳤던 나. 투병을 이겨낸 용기로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나. 명상 중 일반인으로는 드물게 고승 수준의 뇌파가 나온다 하여 ‘뭐 하는 사람이냐’고 부러움을 샀던 나. 그런 나은 온데간데 없었다. 평화롭고 잔잔한 바다 같이 고요했던 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걷잡을 수 없는 통증과 도저히 홀로 설 수 없다는 절망감에 눈물이 저절로 쏟아졌다. 눈조차 뜰 수 없는 어지럼증과 끔찍한 흔들림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 어떤 방법도 소용없는, 막막한 절망 속에 갇혀 나는 거의 매일 밤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다. 만신창이가 된 나를 누가, 어떻게 구원해줄 수 없을까? 그러던 지난 8월 어느 날, 그 날도 쓰러질 듯 중심을 잃을까봐 위태위태하게 산책하던 중이었다. 마음 속에서 작은 소리가 일어났다.
‘천비키! 괜찮아.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아. 잘 하고 있어.’
얼마나 나 자신에게 되뇌던 말인가. 나의 스승이 치유의 명상을 하며 얼마나 자주 들려주던 말인가. 아무리 믿으려 해도, 죽도록 애쓰고 용을 써도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말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정말 희미하게도 똑같은 말이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크기는 고작 1프로를 넘지 않았다.
그 순간 통증과 긴장 너머, 멘토의 말도 떠올랐다. “천비키 코치, 1프로만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도움 되는 1프로라면 해야겠지요.”
그래, 맞다. 1프로였다! 제로(0)가 아닌 1프로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불치, 난치, 이런 용어도 개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1프로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느낌이 아주 미세하게 내 에너지 방향을 바꾸었다.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여겨왔던 일들이 달리 느껴졌다. 일기부터 다시 썼다. 일기를 읽으면서 나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챘다.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기까지 하고, 흔들려서 보지 못하던 책을 하루 한 페이지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됐다. 균형을 잃어 넘어질까봐 엄두도 못 냈던 머리도 감았다. 지팡이나 누구 부축 없이 홀로 10분 이상 걸으며, 카톡 문자도 읽고 안부도 나눌 수 있게 됐다.
내 일기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나’ 에서 ‘되는 나’, ‘뭔가 해내는 나’로 채워지고 있었다.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도 나는 살아 있었다. 명상을 통해, 자다가 깰 때 호흡에 주의를 주면 다시 잠 들 수 있었다. 걷기, 먹기, 앉기 등도 맘대로 할 수 있고, 맨손체조도 어느새 하고 있었다. 이렇게 1프로에 집중한 후 나는 코칭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강의와 글쓰기도 씩씩하게 하고 있다. 나름 밝아진 내게 사람들은 “천 코치, 몸 다 나았어요?” 하고 묻는다. 내 답은 “아니다”이다. 아직도 중심 잡기가 다소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해냈고, 해내고 있고, 또 해낼 것”이라고 다짐하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 ‘1프로의 가능성’만 있어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기적 아닌가?
나는 요즘 20년 전, 나를 찾아와 괴롭히고 있는 이 아픔이란 존재에 대해 보다 너그럽고 독특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주변에 도움을 주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혹시 ‘제 몸도 못 가누면서 무슨 소리야?’ 하고 꾸짖는 독자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제 한달 전, 고교생 축구선수가 찾아왔다. 극도로 긴장된 모습에서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경기력은 물론 뜻대로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잠도 못자고 불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다 듣고 난 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본인이 하려는 방법이 1프로도 안 먹히나요? 진짜 1분이라도 잠을 못 자나요?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나요? 그렇지만 학생이 시도한 것으로 아주 조금, 가령, 단 1프로라도 효과가 났다면 그것은 바로 되는 거예요. 딱 1분이라도 잤다면 잠을 잔 거지요. 지금 학생이 하는 방법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지 마세요. 1분 1초, 1프로라도 효과가 있었다면 감사하면서 계속 해보자구요.”
나는 그를 격려하며, 몇 가지 방법을 코칭해 주었다. 고맙게도 그는 실행 사흘 만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알려왔다. ‘모든 게 안 된다던 사람’에서 ‘무엇을 해도 될 거라는 자신감을 지닌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방법은 무엇일까? 나와 다르지 않았다. ‘왜 이 방법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하면 되지’ 하고 바꿔 생각했단다. 그는 요즘 잠자리에 든지 30분도 안돼 잠들고, 수면시간도 2시간 이상 늘었다고 했다.
요즘 나는 팔굽혀펴기 60개, 스쿼트 80개, 그리고 만보걷기를 매일 실천하고 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안 된다’고 지레 포기한다. 2022년 새해 ‘안 된다’는 지우고 ‘된다’를 선택하면 어떨까? 1프로의 희망과 믿음으로! 독자들께도 기적이 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