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컬링팀 멘탈코칭 후기 “성공보다 값진 성장의 순간들”

사진 왼쪽부터 장혜지 선수, 천비키 코치, 이기정 선수.

[아시아엔=천비키 국가대표 컬링팀·SK와이번스 멘탈코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에 국민의 응원과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국가대표 컬링팀의 멘탈코치 천비키입니다.”

며칠 전 S기업의 부사장님과 임원급 200명이 있는 ‘명사의 특강’ 무대에 서서 큰 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은메달은 축구로 비유하자면 조기 축구팀이 유럽의 축구 명문 클럽을 이긴 것과 같다고 하지요. 그만큼 비인기 종목이었던 컬링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일으킨 겁니다. 그래서 기적이라고 하지요. 이 원인을 멘탈에서 찾기도 합니다”

컬링의 장반석 총감독님의 실감나는 강연 이후 나는 연구소장님과 함께 어떻게 멘탈코칭과 명상을 지원하여 신화를 만들었는지 발표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이후에 마음 한켠이 뻐근해져 왔다. 특별히 나는 믹스더블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었다.

이기정·장혜지팀은 올림픽 컬링 참가팀 중 가장 나이 어린 선수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하지만, 스킵 이기정 선수는 얼마나 당찬 지 올림픽 첫 출전에만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비록 여타 팀에 비해 경력도 짧고, 큰 대회 우승 기록도 없지만 한번 메달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하였다. 오빠의 불타는 열정에 휩쓸려 장혜지 선수도 함께 코칭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코칭은 1대1로도 진행되었고 목표설정, 동기 부여, 불안감 극복 등의 내용과 팀코칭으로 소통과 팀웍의 내용으로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깜짝 놀란 점은 두 선수의 팀웍이었다. 과묵하고 조용한 성격의 이기정 선수는 목표의식과 문제해결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반면, 밝고 깜찍한 장혜지 선수는 자기표현력과 감성지수가 높은 반면 기분에 좌우되는 유형이었다. 두 선수는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림’으로만 인지하면서 농담에조차도 사사건건 티격태격하였다. 컬링은 팀웍게임이다. 아무리 혼자 잘 해도 두 친구의 팀웍이 약하면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멘탈코치로서 둘 사이를 오가며 서로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장을 만들었다. “저는 실수할 때 미안해서 웃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도 웃는데 오빠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냐며 화를 내요.”

“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가 있나요? 진지하게 해도 모자라는 판에…. 저는 힘이 빠집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서로는 점점 대화 없는 관계로 치닫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이 코칭으로 만나면서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같지 않다’는 대전제를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반응에 있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내 기분을 모른다’ 등을 가슴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번 서로의 장점과 감사거리를 발견하고 표현함으로써 마침내 둘은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염려하고 위하는 ‘원팀’이 되었다. 장혜지 선수는 “저보다 실력이 월등한 스킵오빠가 제 실수에도 포커페이스로 있어주니 든든하고 고맙다”, 이기정 선수는 “어린 동생이 실수해도 위축되지 않고 밝게 웃어줘서 늘 고맙다”는 말에 익숙해졌다.

원팀 구축 이후, 우리는 올림픽 50일 전부터는 매일 아침과 저녁 전화기를 붙들고 명상을 시작하였다. 나 또한 출장지든 혹은 어디에 있든 깨자마자 전화통을 붙들고 그들과 명상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고, 마무리였다. 어느 때는 서로가 피곤해서 전화통을 붙들고 ‘뚜뚜~’소리와 함께 잠드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두 선수는 부상의 통증으로 인해 한동안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며 힘겨워 하기도 했다. 원정게임 중에는 불면증과 시차적응, 쌓인 피로로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이런 모든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감독님을 포함하여 끊임없이 소통하며 서로를 지지·격려하면서 올림픽에 차근차근 대비해 갔다.

하지만, 결과는 노메달이었다…. 우리가 이룬 모든 노력은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컬링 여자팀을 위해 존재했다.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던 컬링팀. 끼니 때마다 우리는 고민하며 의성의 그 뜨거운 마늘밭과 읍내를 얼마나 누볐던가? 누벼보았자 김밥집, 백반집이었다. 호사를 누리면 옛날 다방같이 조화로 장식한 돈가스 레스토랑이었다. 가끔 가다 읍내에서 비싸다는 샤브샤브 고깃집에 가면 마냥 즐거웠던 우리들. 든든한 식사길을 오가며 서로가 마음을 열어 이해하고 보듬어 주며 “정말 오빠가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지 몰랐어요” 하며 눈물 뚝뚝 떨군 길들, “늘 동생을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저를 믿고 따라 주니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듭니다”라며 결연한 이기정 선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평창 동계올림픽 후 이기정 선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천비키 코치님 덕분이라고 인터뷰를 다 준비했는데 어느 누구도 와 주지 않더라”고. “미안하고 허탈하고 무기력해서 한참을 집에만 있다가 이제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며 감사인사를 전해왔다. 그리고 며칠 후 휴대폰에 이런 문자가 들어왔다.

“천코치님! 아직까지 제가 뭘 해야하는지 모르니까 멘탈이 자꾸 흔들려서 운동 안하고 자꾸 핑계만 만드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다른 문자가 들어왔다. “천코치님! 제가 혼자서 멘탈코칭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 다음날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2년 동안 연습 열심히 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2년 후에는 다시 같이 코칭과 명상하면서 많이 가르쳐주세요. 다음 베이징올림픽 때를 향해 상황 좋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저 깊은 내면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기정님! 함께 했던 순간들을 소중히 담아주어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이미 너무나 훌륭하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기량을 다 보여주었어요.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웁니다. 2년 후에 저 또한 지금보다 더 많이 도전하고 성장해서 기정님이라는 최고의 선수 옆에 서 있을게요.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합시다.”

실패는 없다. 오직 도전과 배움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성공보다 값진 성장의 실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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