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조오현 스님의 선시조①] ‘무산’ 설악에 빠져들다
나이는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 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사는 날에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고
그리고 흐름을 다한 흐름이나 볼 일이다.
조오현 스님의 ?’산에 사는 날에’란 시조다.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스님의 시세계를 이렇게 말한다. “조오현의 새로운 시법은 구어의 직접적인 수용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들의 현장인 삶의 일상적 공간을 그대로 시적 공간 속에 재현한다. 이들 살아있는 말들은 서로 뒤섞이면서 다양한 목소리의 대화적 상황을 연출한다.”
지난 2월 조오현 큰스님의 시세계를 연구하는 문학박사가 또 배출됐다. <아시아엔>은 배우식 시인의 박사학위 논문 ‘설악 조오현 선시조 연구’(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지도교수 이승하)를 독자들께 소개한다. <편집자>
[아시아엔=배우식 시인] 조오현의 선시조를 살펴볼 수 있는 기본자료로는 그의 첫 선시조집 <심우도>가 있다. 또 이어 발간된 <산에 사는 날에>, <만악 가타집>, <절간이야기>, <설악시조집>, <허수아비>, <아득한 성자>, <비슬산 가는 길>, <적멸을 위하여>, <마음 하나>, <내 삶은 헛걸음> 등이 있다. 이외에도 기본적인 자료로는 그가 역해(譯解)한 <벽암록 역해>와 <무문관 역해> 그리고 <선문선답>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 <열흘간의 대화> 등이 있다.
선시에 관한 연구는 1975년 석지현의 <선시(禪詩)>를 필두로 인권환·권기호·이종찬 등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원섭과 최순열이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현대문학과 선시>를 펴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석지현이 <선시감상> 사전을 출간함으로써 선시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조오현은 “평생 시조 100수, 시 30편을 창작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겸손의 표현이다. 2015년 발행된 <내 삶은 헛걸음>에서는 ‘선시조’만 177편이 수록되어 있다.
조오현 작품에 관한 연구는 학위논문을 비롯하여 단편적으로나마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오현의 ‘선시조(禪時調)’를 독립된 장르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연구 논문은 현재까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조오현의 기본자료에서 선과 시조가 결합되어 형성된 선시조만을 연구 범위로 한정하되 이를 위해 ‘조오현 선시조의 형성 배경과 특징’을 상세하게 고찰하려 한다. 또한 ‘선시조의 관점에서 본 다섯 가지 유형’에서는 조오현의 선시조 전반에서 변별되는 선시조들을 분류하고, 각각의 유형에서 나타나는 내용의 특징과 표현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선시조는 불교사상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불교사상의 시적 형상화’에서는 다수의 불교경전에서 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불교사상을 도출하여 그 핵심사상이 조오현의 개별적인 작품에서 어떻게 시적으로 승화되어 어떤 선시조의 시적 세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볼 것이다. 또한 시인의 입장에서의 조오현은 당연히 ‘현대시조’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본고는 Ⅰ장 서론에서는 ‘연구목적 및 의의와 연구사 검토 그리고 연구방법 및 범위’를 제시한다. Ⅱ장에서는 조오현 선시조의 형성 배경과 특징으로서 먼저 조오현의 삶과 선시조의 정의 및 조오현 선시조의 변별성에서 선(禪)과 시조(時調)에 대해 탐구한 다음 조오현 선시조의 일반적 특징을 형식적인 특징과 내용적인 특징으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Ⅲ장에서는 선시조의 관점에서 본 다섯 가지 유형으로 작품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선시조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선시조학적 유형을 살펴본다. Ⅳ장은 불교사상의 시적 형상화로 조오현 선시조에 나타난 여러 불교사상이 조오현의 각 작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시적 승화를 이루는지 살펴본다. Ⅴ장의 ‘조오현 선시조의 문학사적 의의’에서는 조오현 선시조의 문학사적 의의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Ⅵ장은 결론으로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조오현 선시조의 문학적 성취와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앞으로 조오현 선시조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선시조 혹은 선시는 “불교의 선사상(禪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그 오도적(悟道的) 세계나 과정, 또는 체험을 시화한 종교적인 시”를 말한다. 따라서 선시조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먼저 선에 대한 일반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선시조는 선적인 깨달음·과정·체험에 존립근거가 있으며, 또한 선시조에는 심오한 선사상이 담겨 있다. 조오현의 선시조 역시 그의 깨달음·과정·체험과 함께 선사상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조오현의 선시조 연구에서도 문학의 입장이 아닌 선사상 위주로 연구하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조오현 선시조 연구의 균형을 위해 문학적 접근으로서의 연구를 병행하고자 한다. 단, 선시조 형성의 기초를 이루는 배경적 요인들에 대해 먼저 살피고자 조오현의 삶의 이력과 조오현 선시조의 정의 및 변별성을 고찰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그의 저작물을 통해 조오현의 작품세계를 연구했다. <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장승, 1993), <선문선답>(장승, 1994), <벽암록 역해>(불교시대사, 1999), <무문관 역해>(불교시대사, 1999), <산에 사는 날에>(태학사, 2001), <만악가타집(萬嶽伽陀集)>(만악문도회, 2002), <절간이야기>(고요아침, 2003), <신경림 시인과 오현스님의 열흘간 의 만남>(아름다운 인연, 2004), <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개정판)>(장승, 2005), <설악시조집(雪嶽時調集)>(만악문도회, 2006), <아득한 성자>(시학사, 2007), <비슬산 가는 길>(고요 아침, 2008), <적멸을 위하여>(문학사상사, 2012), <마음 하나>(시인생각, 2013), <내 삶은 헛걸음>(참 글세상, 201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