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스님의 칭기스칸 몽골제국 종횡무진 ’80시간’
[아시아엔=열린선원 법현 스님]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레고 오는 길은 다사롭다. 9월의 마지막 날, 33명의 선지식들과 함께 몽골 울란바토르를 향했다. 일행은 아시아의 금강송을 지향하는 예수사랑교회 김석원 목사님, 계관 <불교문예> 발행인 혜관 스님, 각계 전문가와 <매거진N> 평생독자 그리고 칼럼니스트 등이 었다. 나는 평생독자 겸 칼럼니스트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세계적인 감독 방은진씨도 함께 했다. 그녀의 독특한 예술혼과 <매거진N>의 노력이 닿아서인지 국회 국정감사의 일환으로 멕시코를 방문한 설훈 의원 등의 노력과 외교부의 합류로 멕시코에 여행갔다 9달째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양씨가 곧 풀려날 것이라는 소식을 현지에서 듣고 일행은 자기 일처럼 아주 기뻐하였다.
울란바토르공항에 내리니 약간 쌀쌀한 느낌, 몽골의 첫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행은 곧바로 시내의 이탈리아식당으로 옮겨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 전직 국회의장으로 8선째인 단찬기인 룬데잔찬 국회의원과 역시 국방장관을 지낸 체렌쿠 샤라브도르지 전 의원이 함께 해 일행을 맞았다. 이들은 이번 ‘아시아기자협회 미래포럼’의 몽골쪽 파트너인 춘룬바타르 아자 부회장의 오랜 친구들이라고 한다. 몽골 사회의 유력인사들의 융숭한 대접으로 일행은 초겨울 냉기가 휘감겨 오는 울란바토르 첫밤에 온기를 만끽했다.
아침을 일찍 먹고 울란바토르방송(UBS) 견학을 했다. 울란바토르 방송국 엘칵바도르지 발크자브 사장은 아시아기자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이상기 <매거진N> 대표와 진작부터 알고 지냈다고 했다. 방송국에 가보니 토요일 오전인데도 사장부터 임직원, MC와 기자, 감독과 엔지니어들까지 30여명이 일행을 맞아주었다. 이 방송국 간판 MC와 기자들이 몽골 전통노래는 물론 한국의 최신 노래를 지극정성으로 부르는 게 아닌가?
특히 몽골의 전통복식을 갖춰 입은 이쁘게 생긴 젊은 직원들이 마두금 연주는 우리들 심금을 울리기게 충분했다. 아뿔사, 그뿐인 줄 알았더니 발크자브 사장이 직접 마두금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춘룬바타르 아자 부회장과 20여년 전 UBS 개국멤버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유명한 작곡가다. 단체 촬영을 마친 UBS직원들과 우리 일행 전원은 무대에 올라 반주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UBS에서 준비하고 있는 대하드라마의 요약분을 보여주어 흥미있게 보았다.
UBS 방송국측은 스튜디오 불을 끄더니 준비한 영화를 보여줬다. 제목은 <Legend of Gobi>. 몽골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삶의 애환을 사계절에 걸쳐 찍었다고 한다. “아직 개봉 전이니 촬영이나 SNS에 올리지 말아달라”는 멘트가 인상적이다. 방송국 기자들은 일행 가운데 몇 명을 인터뷰했다. 그날 저녁(10월 1일) 뉴스로 내보낸다고 했다. 나도 몽골에 대한 인상과 우리를 환영해주는 모습 그리고 몇 년전 ‘푸른지구’ 인명진 목사님 일행과 함께 와서 바양노르솜 지역에 호수를 살리기 위해 나무 10만 그루를 심고 가꾸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점심은 지난 봄 방문때 방은진 감독도 들렀었다는 꽤 유명한 ‘콘 아트’ 식당에서 했다. 1층의 미술관도 소유·운영하고 있는 바트바야르 돌지드 사장은 “한국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한식과 몽골 양구이와 전통만두를 준비했으니 맛나게 드시라”며 권했다.
점심 식사자리에도 전날 저녁처럼 이 나라 주요인사들이 함께 했다. 국민작가인 멘드 오유, 무역개발은행 오르고돌 부행장, 간디르스 그룹 회장과 몽골 국가건설위원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에르데네출룬, UBS 방송국의 간투야 에르데네수렌 대외협력국장 등이다.
식사 뒤 1층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거기엔 개인이 모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값진 보물 수백점 있었다. 주로 몽골과 티베트 불교의 성보들과 민속품이다. 세계불교는 크게 초기불교를 유지하고 있는 테라와다불교, 대승불교의 참선을 위주로 하는 선불교, 극락세계 등 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정토불교 그리고 티베트와 몽골 등에 선행한 금강승이라 불리는 밀교로 나눌 수 있다. 나는 내가 아는 불교적 배경을 설명해주는 재미도 있었다. 불상에 관심이 많은 정진후 전 국회의원은 주인의 허락을 힘겹게 얻어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정 의원은 3박4일 동안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으려고 핸드폰을 한국에 두고 왔다고 했다.
1일 오후 1시간 정도 버스로 달리니 ‘고비몬’이라는 게르촌이 나타났다. 고비몬에서 ‘환영의 밤’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고비사막에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너른 초원을 말 타고 달리는 것과, 너무나도 가까이 내려와 있는 하늘에 찬란하게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은 체험일 것이다. 아쉽게도 프로그램이 너무 많이 준비돼 있는 바람에 말타기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또 구름이 많아 첫날 밤 별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몽골 전통음식으로 차려진 저녁을 맛나게 먹고 일행은 게르밖에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보드카를 연신 들이켰다.
게르 주인의 손자인 일곱 살 자르지는 수만리 이국에서 날라온 한국손님들과 손을 맞잡고 하얀 이 사이로 미소를 보인다. 고비몬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어느덧 심야에 이른 듯, 그러나 시계는 이제 밤10시를 가리켰다. 캠프파이어의 땔감들에 붙은 불은 거의 다 사위어 갈 즈음 본명상 코치 천비키님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조용조용 좌중을 압도했다. 그는 만남의 기쁨을 영성의 조화로움으로 승화시켰다. 흥겹게 춤 추던 사람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내면을 살펴보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터인데도 천비키 코치는 차분하고도 명징하게 일행을 본연의 나를 찾도록 이끌었다. 평화와 평온만이 그곳에 머문 듯했다.
평소대로 새벽 4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번득, 별을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게르 바깥으로 나와 남쪽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북두칠성이며 여러 별자리들이 은하수 주변에 빛나고 있다. 동반자들에게 “깨어나시오. 별이야, 별!” 외치고 다시 게르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게르 안이 너무 추워 잠을 못 잤다는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나도 추워서 빌린 몽골 전통의상을 입은 채 잠이 들었지만 여성들은 꽤 추위를 느낀 것 같다.
이날(2일) 오후 ‘13세기 캠프’로 이동했다. 800년 전 칭기스칸이 몽골제국 수립 전 공부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몽골의 무당이 기도를 하고, 신의 뜻을 받아 공수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몽골측 춘룬바타르 부회장에 이어 이상기 대표와 조덕진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편집장 등이 공수를 받았다. 30대 중반이나 됐을까, 그다지 나이 들어보이지 않은 젊은 샤만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에게 체험케 하는 것은 상당히 걸러진 즉,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게 아닌가 싶다. 북을 치면서 기도하다가 몽골 전통 술을 몇 잔 마시던 그의 목소리는 사나이들의 굵은 것에서 갑자기 술취한 고음의 여성과 아이 톤으로 변하더니 공수를 내린다.
상당히 의미 있고 분석력 깊은 공수를 내리는 무당이라고 한다.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 칭기스칸이 부하들과 공부를 했다고 하는 곳으로 일행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선 우리식으로 하면 붓글씨 선생이 몽골의 고문자로 일행의 이름을 정성들여 써주었다. 그가 쓰는 고문자는 쿠빌라이칸의 부탁으로 티베트이 파스파 스님이 1269년 만든 몽골문자다. 어쩌면 한글의 모태였을 지도 모른다. 이익의 <성호사설>이나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 등에 그렇게 나와 있다. 우리 한글처럼 왼쪽에서 시작하며 위에서 아래로 써내려가는 방식인 몽골·중국·티베트·터키문자는 쓰기가 쉽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 펼치려고 하였으나 원이 망하면서 사라졌다.
이날 저녁에는 주몽골 오송 대사가 ‘13세기 캠프’에 찾아와 몽골 전통 서커스를 함께 관람했다. 오 대사는 “지난 여름 한몽정상회담을 계기로 어느 때보다 양국관계가 돈돈하다”며 “특히 두나라 언론인과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한몽미래포럼이 민간부문의 교류와 발전에 크게 기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게르 안쪽 5평 남짓 공간에선 10대 어린이들이 몽골 전통서커스를 선보여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밤 9시나 됐을까? 게르 밖으로 ‘볼 일’을 보러 나간 일행 중 누군가가 외쳤다. “와, 저 별, 저 별들 좀 봐, 저 별들” 아닌 게 아니라 하늘엔 별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어릴 적 봤던 은하수와 북극성, 북두칠성···. 초저녁 별이은 너무나 찬란하게 가슴에 푹 안겼다. 다시 울란바토르로 이동이다. 애초 이곳 13세기 캠프에 묵기로 했던 계획은 ‘그 눔의 추위 탓’에 변경된 것이다.
마지막 날이다. 이른 아침 <아시아엔> 부편집장인 터키 출신 아흐멧 도우칸씨의 몽골 주재 터키학교 벗님들의 초대를 받았다. 전체 일행 중 이영권 동아석재 대표, 박서빈 서빈갤러리 대표, 조덕진 기자, 천비키 코치, 오세열 국민은행 동우회 사무국장, 그리고 이번 여행의 고비고비, 순간순간마다 때론 유머로 때론 노래로 그리고 때론 자기희생으로 ‘절대 친근’ 전북과학대 이만세 교수가 함께 했다. 터키교육재단으로 20여년 전부터 이곳에 국제학교 등 교육기관을 설립한 ‘Empathy’(공감) 본부는 일행을 가족처럼 맞아주었다.
투르굿 카라불루트 이사장은 “개별 국가뿐 아니라 이웃나라의 미래도 교육에 의해서 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며 “몽골의 학생들은 바로 터키의 자녀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몇 년전 종교간대화 모임(kprc) 대표로 터키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교육제도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투르굿 이사장의 말을 옮긴다. “우리 엠퍼시재단 학생이 1500명인데 선생님은 200명이다.
선생님 한 분당 학생이 8명이 조금 안된다. 또 교과목 교사 외에 생활지도 선생님이 계셔 학생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1년 열두달 365일 잘 살펴볼 수가 있다. 학생들이 특기와 적성에 맞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들 역할이다.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학교가 삼위일체가 되는 교육이 가장 최선이다.” 그는 한국 교육상황을 아는 듯 “한국의 교육열과 수준은 굉장히 높은데 인성교육을 보완하면 본래의 교육목표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정확한 지적 아닌가.
점심에는 엥흐바야르(58) 제3대 대통령(2005~2009년 재임)이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냈다. 엥흐바야르 대통령은 아시아기자협회와 특별한 인연이 있고 한국국적을 취득하기도 해서인지 원래 있던 소주에 몽골전통 마유주까지 새로 주문하며 정성껏 일행을 맞았다. 그는 한·몽골 관계와 역대 한국 대통령과의 인연, 북한 방문 뒷 얘기 등을 들려줬다. 대통령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겸손하고 따스하게 일행은 대해 인상적이었다.
그는 독실한 불교 신도로 2006년 만해상을 수상했다. 그는 “금강경을 몽고어로 번역하고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한국의 스님이나 전문가를 초빙하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그에게 미리 준비해간 천일홍 꽃차를 한병 선물하고 손목에 단주(短珠)를 채워드렸다. 건강과 정치적 재기를 축원하면서···. 마지막 날 오후, 나는 다시촐링사원을 찾아 담마자프 스님과 환담했다. 담마자프 스님은 중국이 주최한 세계불교포럼에서 두세 차례 만났다. 불자들의 공동체인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여수대회와 지난 9월말 서울대회에서도 만났으니 1주일 남짓만에 또 만난 셈이다.
몽골대사관 이재유 참사관 등 직원들과 공양을 마친 일행은 공항으로 향했다. 함께 한 보살님께서 좋은 선물을 주기에 태고종 총무원 봉직 때 함께 하던 여직원에게서 배운 뮤지컬 <님의 침묵> 한 소절을 불러드렸더니 좋아들 하신다. 그런데 아자 차재준 이사가 마이크를 잡고 “님의 침묵에서 만해스님으로 나온 김갑수씨 상대역 배우가 바로 나의 사랑하는 아내 박봉희”라면서 이끌어 내 노래를 직접 듣는 인연도 생겼다.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함께하신 전문가들께서 불교에 관해 물어보면 아는 대로 말씀해드리는 영광도 누렸다. 일행 중 혜관스님은 시인으로서 자분자분 ‘버스담화’를 아주 맛깔나게 하여 동참자들이 법화에 흠뻑 젖게 하였다.
부디 아자, 아시아엔 그리고 매거진N이 추구하는 ‘살아서는 뭇 삶과 솔바람 맑은 신선한 정보를 나누고, 죽어서도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 한몽미래포럼이 되기를 정진하는 가운데 새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