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인 배우식이 새 시집을 ‘낙타’로 지은 까닭은?
3월 중순 시집 한권이 배달돼 왔다. 배우식 시인의 <낙타>(시 정예시인선 제2권, 2023년 3월 10일 초판)였다. 배우식 시인을 만난 건 5년이 채 안 되지만, 꽤나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다. 시인도 그렇단 얘기를 내게 한 기억이 난다. 조오현 큰스님을 축으로 만나서 그럴 것이다.
시집 <낙타>는 긴 문장들의 나열 대신 짧은 시적 ‘시인의 말’로 시작한다.
나와
사물이
얽히고설킨다.
내가
사물을 넘고
사물이
나를,
넘는다.
‘시인의 말’ 외에 4부로 나눠 모두 74편이 담겨 있다.
몸속의 모진 고통
다소곳이 숨겨놓고
늙은 저 외딴집 한 채
내 이름 급히 부른다
울지마···
나는 괜찮아,
목소리가 젖어있다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진 할아버지
조문을 하러온 듯
바람 한 점 울고 있다
그 곁에
눈물방울로
오랫동안 앉아 있다
(‘함께-어느 할아버지의 죽음’)
불꽃 품은 기다림이
어디 그리 쉬운 건가
기회를 찾느라고
앙상해진 나의 몸통
한 순간
당신을 위해
남김없이 태우겠네
(‘성냥-아내에게’)
중풍 걸린 울 어머니 울먹울먹 걸어간다
그 누구 어디서라도 마음껏 울 수 없어
참나무,
그 속에 들어가 울음 폭약 발파한다
문득 나는 칼끝처럼 날카롭게 예민해진다
파닥파닥 적막 쓸고 날아오는 한 무리 새 떼,
가지에
사뿐 옮아앉자 햇빛도 따라 내린다
나무마다 번져가는 햇살 지핀 저 도화선
새소리에 놀란 가을 얼떨결에 불붙인다
울음은
일시에 터져 저문 산이 붉게 탄다
단풍잎 하나하나 벌건 눈빛 나를 본다
섬기지 못한 죄를 뉘우치려 절을 하자
단풍잎,‘봄날은 온다’, 가만가만 말한다
(‘엄마의 봄날은 온다’)
2003년 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 <그에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시집)와 <인삼반가사유상>(시조집)을 냈다.
기자가 배우식 시인을 정말 부럽고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가 있다. 그의 시 ‘복어’가 2011년부터 고교 국어교과서에, 2019년부터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의 ‘복어’가 중고생들에게 얼마나 깊은 공감을 일으킬지 상상된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이름이 ‘낙타’로 지어진 건 이 시를 읽으면 어렴풋 짐작 간다.
나는 늘 무릎 꿇고
당신을
기다리네
무거운 슬픔까지
싣고 가서
버려주고
길 잃어
밤새 헤맬 때도
그길 찾아 주겠네
(‘낙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