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배우식 시조집 ‘이렇게 환한 날에’···”맑은 햇살로 내려오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이렇게 환한 날에> 시조집을 4월 10일 낸 배우식 시조시인은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어느
이른 아침,

길 바깥으로 길이 자라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방금 전
그 캄캄한 길에 불이 켜졌다.

환한 빛으로
타오르게 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배우식 시집 ‘이렇게 환한 날에’

시조집 <이렇게 환한 날에>에는 시인 이근배 한국예총 회장과 임헌영 문학평론가 겸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먼저 이근배 시인.

눈이 부시다. 뿌리 깊은 나무에 꽃이 피는 일은. 오늘의 시조가 바로 세상에 “이렇게 환한 날”을 구가(謳歌)하고 있다. 열두 해 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시조「인삼반가사유상」으로 처음 만난 배우식 시인은 내 나라의 오랜 모국어 가락에 매달려 날로 더욱 장엄하게 뻗어가는 현대시조의 산맥에 높은 키의 소나무로 우뚝 솟아오르고 있다. 또한 배우식 시인은 한국시의 본류인 시조와 자유시의 경계 허물기로 바깥세계로 발돋움하는 한국시의 지평을 넓히는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당신의 손/ 잡을 때마다/ 손바닥엔 빛이 밴다/ 햇발 꽃잎 한 겹, 한 겹/ 얇게 펴/ 바른 것 같은 (어머니의 손-초・중장)” 그렇다, 모국어의 손을 잡는 그의 손바닥엔 햇발 같은 시의 꽃잎이 우리네 가슴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지 않은가.

다음은 임헌영 평론가.

배우식의 시조에서는 햇살과 달 밝음과 별 빛으로 온 우주가 환하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무지개 색깔로 아름다우면서도 투명하고 명랑하며 생기발랄하다. 세상이 아무리 춥고 더우며 눈 내리고 바람 불고 비 오거나 가물어도 그의 소우주에서는 언제나 화평한 봄이다. 여기서는 얼음조차 따스하고 8월의 태양도 온화해진다. 이럴진대 시장판 진창의 흙탕물 속 여인조차도 배우식의 시세계에 들어서면 금방 환희 가득한 동정녀로 둔갑한다. 이 요술세상, 사이버가 만든 요술이 아닌 문학적 영감이 창출한 환상의 나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렇게 환한 날에> 실린 시 몇 편을 소리내 읽는다.

어떻게
알았을까?

당신 몸 비밀번호.

산새가
콕콕 누르자

철커덕, 네가 열린다.

안에는
달빛만 한 접시,

보는 눈 가만
환해진다. (‘달빛 한 접시’ 전문)

허공 걸어, 걸어 들어간
한 사람의 굴참나무,

산새들 날아오자 심장이 고동친다.

한순간
설렘을 돌아

돋아나는
수천 날개.

내 손은 바람이 되어
저 나무 새 밀어 올린다.

파란, 파란 날갯짓 소리 공중에서 펄럭인다.

아버지…
소리쳐 부른다.

반짝! 빛나는
새, 파란.(‘새, 파란’ 전문)

배우식 시인의 ‘북어’란 제목의 시는 2011년부터 고교 국어교과서, 2019년부터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입을 크게 벌리고만 있으면 산다고 아버지한테 귀 닳도록 들었습니다. 사람한테 잡혀가도 눈만 크게 부라리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고 도망간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도망간다고 아버지한테 귀빠지게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 하나 깜박대지 않고 크게 뜨고 있는 내가 무섭지요. 벌벌 떨리지요? (전문)

시인은 이번 시조집에선 ‘복어’를 선보인다.

헛배 빵빵 부풀리는 내 친구 복허풍씨

무섭지, 나 무섭지? 작은 입 종알종알 큰 이빨 빠각빠각 처음 보는 사람에겐 배 내밀며 을러댄다. 달처럼 태양처럼 둥글둥글 둥근 것은 허리 꺾지 않는다는 상상력 부풀리며 이 세상 진짜 왕은 둥근 배 자기라고 저 친구 허공으로 헛장 팡팡 쏘아댄다. 정말로 치명적인 맹독의 화살 대신 친구는 내 친구는 왜, 저리 허풍 떨까? 풍선 배 팽팽 탱탱 터질 듯 부풀리며 우쭐우쭐 건풍 치는 친우의 저 모습에 길가던 모든 사람 대소 폭소 터뜨린다.

그래도,
허풍은 벗의 힘 그것 또한 사랑한다. (‘복어’ 전문)

오는 5월 23일 3주기를 맞는 ‘설악 조오현 큰스님께’ 바치며 스님이 오래 전 쓴 ‘아득한 성자’를 같은 제목으로 삼은 시는 이렇게 읊는다.

오장육부
다 비우고,바람으로 날아간다.

공중에서
덩실덩실

허공에서 춤을 춘다.

창공엔
아득한 성자,

맑은 햇살로
내려온다.

이승에서 자신을 끔찍이도 아껴준 조오현 큰스님이 ‘맑은 햇살로 내려와’ 재회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듯하다.

경기대 교수인 이지엽 시인은 “‘새’이미지를 통한 風情과 절정의 생태학적 상상력”이란 제목으로 배우식 시인의 <이렇게 환한 날에>(도서출판 고요아침) 해설을 붙였다.

배우식 시인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