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조오현 스님의 선시조⑦] “글은 변격이오, 삶은 파격이니”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지난 5월 26일 오후 열반하신 조오현 큰스님의 열반송입니다. 평생을 구도자로서, 시조시인으로서, 무엇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따뜻한 이웃으로 생을 살아온 오현 큰스님. ‘아득한 성자’ ‘인천만 낙조’ ‘침목’ 등 숱한 애송시를 남긴 그의 문학적 성취를 배우식 시인의 연구를 통해 돌아봅니다. <편집자>

[아시아엔=배우식 시인] 조오현의 선시조는 3장 3행 형태의 정격 선시조에서 시조 행의 구분과 음보의 변화를 발생시키면서 율격의 패턴이 조금씩 깨뜨려지는 ‘변격의 형식’을 보이게 된다. 이처럼 변격의 형식은 ‘3장 3행’의 정격에서 형태의 변형을 일으키거나 음보가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3장 3행의 형태적인 정형성을 다양하게 변형시키는 것은 시적 의미의 심화와 확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음을 말하며, 시조의 전형적 형태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와 상통한다. 이런 ‘변격의 형식’은 시조의 형식적인 변형과 확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조의 형태적 개방성은 단형시조로서의 평시조가 지니고 있는 형태적인 고정성과 제약성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수율의 제약적 규정, 즉 한 음보를 3자나 4자로 맞추는 것은 우리 언어의 자유로운 결합을 이반시키고 옥죄임을 함으로써 현대의 자유로운 심상을 담아내는데 부적합하므로 이를 벗어나 음보의 자유로운 운용을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킨다. 이런 선시조의 형식적 확장을 보이는 ‘변격의 형식’은 형식뿐 아니라 언어의 자유로움도 보여준다.

솔밭을 울던 바람은 솔밭이라 잠이 들고

대숲에 일던 바람은 대숲이라 순한 숨결

저 하늘 가는 저 달도 허심하니 밝을 밖에.

―「솔밭을 울던 바람은―산거일기 7」 전문

남산골 아이들은 흰 눈 덮인 겨울이 가면

십 리도 까마득한 산속으로 들어가서

멧새알 둥지를 안고 달빛 먹고 오더라,

―「남산골 아이들」 전문

우리 절 밭두렁에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

―「죄와 벌」 전문

하늘은 저만큼 높고 바다는 이만큼 깊고

하루해 잠기는 수평 꽃구름이 물드는데

닫힐 듯 열리는 천문(天門) 아, 동녘 달이 또 돋는다.

―「일월(日月)」 전문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내가 나를 바라보니」 전문

사랑도 사랑 나름이지 정녕 사랑을 한다면

연연한 여울목에 돌다리 하나는 놓아야지

그 물론 만나는 거리도 이승 저승쯤은 되어야

―「사랑의 거리」 전문

①에서 ⑥까지는 단시조 작품으로서 3장 3행의 정격에서 6행과 7행으로 시조의 형태가 변형된 ‘변격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1행과 2행의 결합으로 초장이 이루어지고, 3행과 4행이 결합되어 중장이 이루어지고, 5행과 6행이 결합되어 종장이 이루어진다. 다만 ⑤의 경우는 5행과 6행, 그리고 7행이 결합하여 종장이 이루어진 것이 특이하다.

형태의 변형과 함께 ⑤의 “배설하고/알을 슬기도 한다”와 ⑥의 “정녕/사랑을 한다면”, “하나는 놓아야지”, “이승 저승쯤은” 등과 같이 음보가 줄어들거나 음보가 늘어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시조의 3장은 시인의 의도에 의하여 각각의 장을 분행할 수 있다. 조오현 선시조는 ‘변격의 형식’에 의한 행의 배열로 자유로운 개성과 함께 시각적인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떼

―「아득한 성자」 전문

계림사 외길 사십 리 허우단심 가노라면

초록산 먹뻐꾸기 울음이 옷섶에 배이누나

이마에 맺힌 땀방울 흰 구름도 빛나고.

물 따라 산이 가고 산을 따라 흐르는 물

세월이 탓 없거니 절로 이는 산수간(山水間)에

말없이 풀어놓는 가슴 열릴 법도 하다마는.

한 벌 먹물 옷도 두 어깨에 무거운데

눈 감은 백팔염주 죄(罪)일사 목에 걸고

이 밝은 날빛에서도 발길 어두운가.

어느 골 깊은 산꽃 홀로 피어 웃는 걸까

대숲에 이는 바람 솔숲에 와 잠든 날을

큰 산에 큰절 드리려 나 여기를 왔구나.

― 계림사 가는 길」 전문

그의 마지막 날엔 산도 한 번 눈을 뜨라

어머니 머리맡에 눈물만을 남기신 생애

그냥은 차마 그냥은 감을 수 없었으라!

단 한 번 덮고 가실 천금(天衾)의 천을 짜시며

그 목숨 받을 때부터 돌릴 줄을 아셨던가

북망산 솔빛보다도 더 빛나는 만장(輓章)이여.

우러르면 하늘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생각

부처님 전 밝힌 설움이 행여나 꺼질세라

칠 남매 기르신 정이 강물 되어 넘쳤네.

―「종연사(終緣詞)」 전문

히히히 호호호호 으히히히 으허허허

하하하 으하하하 으이이이 이흐흐흐

껄껄껄 으아으아이 우후후후 후이이

약 없는 마른버짐이 온몸에 번진 거다

손으로 깊는 육갑 명씨 박힌 전생의 눈이다

한 생각 한 방망이로 부셔버린 삼천대계여.

―「인우구망(人牛俱忘)―무산심우도 8」 전문

⑦에서 ⑩까지의 작품은 연시조 형식의 선시조이다. ⑦의 첫째 수 초장은 4·2·5·4, 중장은 4·3·4·5, 종장은 3·6·5·5이고, 둘째 수 초장은 4·5·2·5, 중장은 4·4·4·4, 종장은 3·5·3·8을 나타낸다. 음보가 줄어들고 음보가 늘어나는 ‘변격의 형식’을 보인다. 특히 둘째 수 종장의 마지막 음보는 8자까지 늘어나는 확장적 음보 형태를 보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음송하게 되는 이면에는 3·4조의 기계적 율격으로는 거둘 수 없는 유연함과 유장함이 배어 나온다.

의미구조와 형식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조오현만의 독특한 행 배열은 음송은 물론 선시조 정신에서도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을 배가시키는 데 기여한다.

⑧의 작품은 네 수의 연시조이다. 각각의 장에 배열되는 4음보가 앞뒤로 짝을 이뤄 2음보씩 조응하여 각 장이 한 행씩을 이루지 않고, ⓼은 두 음보 한 구를 한 행으로 펼쳐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첫째 수 중장의 “먹뻐꾸기 울음이” 등이 음절 수가 늘어나 과음보를 보이고 있지만, 음보의 특성인 시간적 등장성(等長性)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율격의 패턴이 깨지기는커녕 오히려 가락의 흐름이 자연스러움이 느껴지게 한다.

⑨ 역시 각 장을 두 음보 한 구를 한 행씩으로 하여 두 행의 구조로 이루어진 변격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음보가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약간의 변화는 단조로움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유용한 장치다.

⑩의 작품 첫째 수는 6행 3장의 형식적 장치를 넘어서 문득 표현에 대한 긴장을 유발하게 한다. 의성어로만 형성된 첫째 수의 형태는 실험적이다. 시적 의미의 심화와 확대를 위한 ‘변격의 형식’과 ‘표현’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수는 음보가 늘어난 것이 있으나 일반적인 3행 3장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⓾은 첫째 수 6행 3장, 둘째 수는 3행 3장의 복합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는 ‘변격의 형식’이다.

이렇듯 변격은 행의 배열과 음보의 변화를 주는 실험적 형식으로서 3장 3행의 고정성과 단조로움을 피하여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런 변격의 형식은 신선함과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기존의 문법을 뒤틀고 전복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찾아온 것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아지랑이」 전문

나이는 열두 살 이름은 행자

한나절은 디딜방아 찧고

반나절은 장작 패고……

때때로 숲에 숨었을 새 울음소리 듣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10년 20년

40년이 지난 오늘

산에 살면서 산도 못 보고

새 울음소리는커녕 내 울음도 못 듣는다

―「일색과후(一色過後)」 전문

산영(山影)처럼 무게로운 석양볕 걷힌 하늘

말없이 손짓하며 저 강을 누빈 말씀

오늘은 지팡이 하나 잡아도 아, 여로(旅路)는 멀다.

일그러진 위무(慰撫)의 그늘 애안(涯岸)에 들앉으면

울림 없는 풀피리로 한 하늘이 열리는가

태초의 그 공적(空寂) 너머 고요로운 흐름이여.

무너진 절터 저쪽 태고(太古)로운 주련(柱聯) 아래

빈 마당 하나 장등(長燈) 그을음에 얽혔어도

저물은 세월 밖에서 어두움을 밝힌다.

―「세월 밖에서」 전문

촛불 켠 꿈은 흘러 연꽃으로 물들어도

마지막 목욕하고 앉지 못할 연대(蓮臺)여

설움의 소리를 듣고 차마 못 갈 보살―.

손에 쥔 백팔염주 헤아릴수록 무거움은

흩어진 상념들을 알알이 뀌음일레

달뜨는 뜨락에 서서 지켜보는 이 정토!

―「관음기(觀音記)」 전문

⑪의 경우는 “끝없는 낭떠러지”, “내뎐져져야 할”, “아지랑이들”, “아지랑이더란” ⑫의 작품은 “디딜방아 찧고”. “새 울음소리”, “듣는 일이었다” ⑬에서는 “지팡이 하나 잡아도”. “위무(慰撫)의 그늘”, ⑭의 작품은 “소리를 듣고”에서 5자나 6자 혹은 7자, 8자까지도 늘어난 음보가 나타난다.

우리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음보의 주된 자수인 3자 혹은 4자로만 한정할 경우에는 딱딱하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느낌을 동반하고, 한 음보가 가지는 자유자재한 섞임을 허용할 경우에는 훨씬 부드러움을 내포하게 되므로 조오현의 자수가 줄어들거나 늘어난 음보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조오현 선시조의 ‘변격의 형식’은 오히려 부드러움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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