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 조오현 스님의 ‘선시조’를 이렇게 읽었다”

오현스님이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한국의 자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식 시인 ‘설악 조오현 선시조 연구’로 중앙대서 박사학위

[아시아엔=배우식 시인] 법명 무산(霧山), 법호 설악(雪嶽), 자호 만악(萬嶽), 필명은 조오현(曺五鉉).

설악산 조오현 큰스님은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여 기존의 五言 漢詩 형식을 금과옥조로 고수하는 한국 선시조(禪時調) 문학에 새로운 시조형식의 ‘한글 선시조’의 전범(典範)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조오현은 문학사상 최초의 한글 선시조의 창작자이자 본격적인 의미의 선시조를 완성한 이로 평가받고 있다.

조오현은 종교적 깨달음을 이룬 뒤 살신성인의 정신과 무욕·무념의 경지로 동해를 싸고도는 신흥(神興), 낙산(洛山), 백담(百潭) 등의 대가람(大伽藍)의 중흥불사(中興佛事)를 일으켰다. 또 시인으로서 선과 시조의 결합으로 현대시조사에 유례없는 개성적이고 독보적인 선시조를 정립시켜 시조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우리 문학사에서 이러한 선적(禪的) 인식과 시조 양식을 결합한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조오현은 <아득한 성자>(시학, 2007)의 ‘시인의 말’에서 “건져도 건져 내어도/그물은 비어 있고/무수한 중생들이/빠져 죽은 장경(藏經) 바다/돛 내린 그 뱃머리에/졸고 앉은 사공아”라고 적고 있다. ‘공(空)의 세계’에서의 이 ‘사공’은 바로 성불한 자이며 또한 시인 자신의 모습이다.

이와 같이 조오현의 선시조 세계는 “일체 만상과 만법이 비어 있다는 전제를 출발점”으로 한다. 그의 선시조의 가장 중요한 사상적 배경에는 반야공사상, 중도사상, 불이사상 등이 있다. 이 사상의 중심에는 연기와 공(空)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조오현은 ‘연기’와 ‘공’사상의 시적 승화를 통해 개별적인 작품에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평등의 세계를 구현한다.

필자의 중앙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학위논문 ‘설악 조오현 선시조 연구’(2018년 2월)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뤄졌다.

“조오현 선시조의 형성 배경과 특징을 면밀하게 탐구하고, 선시조의 관점에서 본 다섯 가지 유형을 구체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물론 불교사상의 시적 형상화에 대한 연구와 함께 조오현 선시조의 문학사적 의의를 통해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불교사상의 시적 형상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조오현 선시조의 형성 배경과 특징’을 고찰하고 △‘선시조의 관점에서 본 다섯 가지 유형’ △‘불교사상의 시적 형상화’ △‘조오현 선시조의 문학사적 의의’를 살펴봤다.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 이전에 조오현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연구된 학위논문으로는 석성환의 ‘무산 조오현 시조 연구’와 김민서의 ‘조오현 선시 연구’ 그리고 유순덕의 ‘현대시조에 나타난 형식미학과 생명성 연구―이병기, 조운, 김제현, 조오현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석성환의 ‘무산 조오현 시조 연구’는 조오현의 ‘창작활동과 문학관’, ‘작품의 구조와 특징’, ‘작품세계’로 대별하여 고찰했다. 그는 결론에서 “무산 시조는 선방(禪房)의 인연에 의해 시조시를 만나 이를 선방에서 꽃피워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이룬 선시조라는 현대 시조시 안에서의 불교시조시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놓았다”며 조오현이 선시조의 지평을 넓힌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김민서의 ‘조오현 선시 연구’는 조오현 선시에 주목하고, 시를 형성하는 불교적 사유를 통해 그의 문학적 세계관을 규명하고자 했다. 김민서는 ‘선시의 형성 배경과 전승’과 ‘조오현 선시의 형성 배경과 창작 과정’, 그리고 ‘조오현의 불교적 세계관과 선시’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김민서는 그의 시가 일종의 돈오, 자성에 대한 직관적 지각을 특징하는 바, 우선 선에서는 이성에 의한 추상화와 개념화에 반대하고 구체적인 체험에 의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어 깨달음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임을 강조한다.

유순덕의 ‘현대시조에 나타난 형식미학과 생명성 연구―이병기, 조운, 김제현, 조오현을 중심으로’는 각 시인의 ‘형식미학’과 ‘생명성’에 주목한다. 유순덕은 특히 조오현의 ‘변용적 형식미학’에서 “단시조와 연시조, 사설시조를 정격으로 창작하면서도, 점차 변용 및 확장으로 나아가는 형식임”을 탐구하였다. 유순덕은 ‘순환적 생명성’에서는 “죽음은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적 생명성을 추구한다‘고 한다.

조오현 작품 연구와 관련해 학술논문 외에 평론, 해설 등도 많다. 이승하는 ‘조오현의 시에 나타나는 불·법·승’에서 “시를 통해 조오현의 불·법·승을 살펴본 결과 불교도와 시인의 삶을 다 성실하게 꾸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승하는 “조오현은 산중에서 고립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 대화도 하고 부대끼면서 법을 전해야 한다는 원효식의 법 이해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권영민은 ‘시조의 형식 혹은 운명의 형식을 넘어서기’에서 <아득한 성자>를 보면서 ‘왜 시조인가, 그리고 시조란 무엇인가?’를 자문한다. 권영민은 “‘한등’(寒燈)과 ‘죄와 벌’은 3장 형식의 완결성을 지키면서도 균제미를 지향한다”며 “‘산창을 열면’은 ‘파격적인 형식의 실험’을 보여준다”고 했다. 권영민은 이어 “조오현의 ‘이 세상에서 제일로 환한 웃음’, ‘신사와 갈매기’, ‘스님과 대장장이’ 등은 ‘내적 대화성이 표현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시적 형식의 발견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했다. 권영민은 이를 ‘이야기 조’의 시라고 분석한다.

이숭원은 ‘시조 미학의 불교적 회통(會通)’에서 조오현의 시를 다섯 가지 소주제, 즉 △서정 시조의 출발 △개성적 미학의 추구 △시조 미학과 불교 정신의 결속 △‘나’를 버리고 ‘나’를 찾는 수행 △산문시의 경허(鏡虛)적 특성 등으로 분류하여 소주제마다 일일이 작품을 인용·분석하여 그 의미를 밝힌다. 이승원은 “불교정신을 시조에 회통한 조오현의 시조는 현대시조사에 유례없는 개성적이고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지엽은 ‘번뇌와 적멸의 아름다운 설법’에서 조오현의 시세계를 ①잔잔한 바람의 설법 ②담담하면서도 눙청거리는 화법 ③우주적 질서와 고통의 언저리 ④자유정신의 현현 ⑤길 없는 길, 탁발의 만행(萬行)의 다섯 항목으로 분류하여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성호는 ‘타아(他我)가 발화하는 심연의 언어’에서 “조오현 시학은 세속과 탈속(脫俗)의 불가분리성을 증언하면서 동시에 사실과 허구(상상)가 결국은 한통속임을 시적으로 표상한다”고 말한다. 유성호는 “결국은 모든 대립적 경계선이 지워진 곳에 조오현 시학의 궁극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박찬일은 ‘불이사상의 구체화·불이사상의 변주’에서 이렇게 썼다. “오현의 불이사상은 원효의 무애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거칠 것 없는 사상, 경계를 두지 않는 사상인데, 다만 원효와 다른 것은 이런 사상에 대한 분별에 대한 인식이다.” 박찬일은 “<가타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죽음과 삶의 분별하지 않음이 아니라, 혹은 성(聖)과 속(俗)의 분별하지 않음이 아니라, ‘불이사상의 변주’로서 삶(혹은 속)의 전면적 수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서준섭은 ‘빈 거울을 절간과 세간에 놓기’에서 “조오현 스님의 최근에는 승속의 경계가 없고, 세속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며 “스님의 시는 ‘거울’과 같은 시”라고 말한다.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구경(究竟)이 접혀 있고 또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김형중은 ‘한글 선시의 현대적 활용’에서 ‘한글선시의 모델을 제시한 조오현의 선시세계’를 심도 있게 고찰한다. 그는 “어려운 문자인 한문의 한계성과 제약성으로는 도저히 우리의 신선하고 자유롭고 개성있는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기 어려우므로 우리의 글인 한글을 통해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식의 선시의 창작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평한다.

김학성은 ‘시조의 전통미학과 현대시조 비평의 실제’에서 “조오현의 시적 마력은 결핍의 감정을 넘어 귀함과 천함, 깨끗함과 더러움, 밝음과 어두움, 삶과 죽음, 성과 속, 세간과 출세간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져 조화의 합창을 이루어내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송준영의 ‘선시의 텍스트. <심우송>’에서는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고찰을 통해 ‘심우송’의 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경허와 만해의 <심우송>과 설악의 <심우송>이 우뚝하다”고 평가한다.

오세영은 ‘조오현의 선시조’에서 “무엇보다도 오현의 시가 우리 문학사에서 하나의 의의를 지닐 수 있다면, 그것은 시조 시형에 의한 선시의 현대적 확립”이라고 했다.

이근배는 ‘화두를 쏟아내는 설악산 안개’에서 “무산의 불가해(不可解)의 문자들을 어찌 다 읽을 수 있겠냐”며 “설악이 그 귀를 낮출 때쯤에나 어느 시객(詩客)이 지나가다 화답 한 수 던질런지?”라고 선문답 같은 말로 평을 대신한다.

장경렬은 ‘시인이 아닌 시가 쓴 시 앞에서’에서 “조오현 시인의 시에서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시를 쓰고 있음에 대한 시인의 자의식-그것도 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고자 하는 시인의 자의식-이 짚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조오현의 시 세계는 ‘시라는 구속’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존재하는 시 세계라는 것이다.

조미숙은 ‘조오현 선시의 특성’에서 “산사생활, 승려로서의 생활 등을 쓴 선취조와 ‘무산심우도’의 선기조 그리고 세속(世俗) 범인풍(凡人風)을 의미하는 우범조의 선시들을 차분하게 읽은 후에 내린 결론은 선시는 ‘각박한 현실에 대한 정신적 승화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최동호는 ‘심우도와 한국 현대 선시’에서 “경허와 만해를 거쳐 오현에 이르는 시적 흐름 또한 외래의 것이라기보다는 육화된 우리의 작품세계”라고 평가한 뒤 “불교시의 명맥을 넘어서 현대시사에 포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홍용희는 ‘마음, 그 깨달음의 바다’에서 “조오현의 시 세계는 아름다우면서도 닫혀 있고 닫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표정을 반사한다”면서도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자기 수행과 깨우침의 여로가 된다”고 하여 조오현의 선시조에 다가가기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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