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교회 김형중 목사 묻다⑤] 성경책, 폐지로 버려도 되나요?

성경책

[아시아엔=김형중 베이직교회 목사] 어떤 분이 “오래된 성경책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폐품으로 버려도 되나요?”라며 재미난 질문을 주셨다.

필자 또한 목사이다 보니 성경책이 많다. 선물로 받기도 하고, 성경 해석과 설교 준비를 위한 번역본들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책장을 채워가는 성경책들을 나눠주기도 하고 여러 번 이사를 통해 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책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때 나 또한 심각하게 고민했던 주제다.

1. 성경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
성경책을 버리자니 마음이 좀 찜찜하신 분들이 계실 거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이 책을 버리자니 불편한 거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댓글을 찾아봤다. ‘눈 찔끔 감고 버렸어요.’, ‘주위의 기독교인들에게 주세요. 굳이 버릴 것까지야…’, ‘주변에 있는 교회에 두고 오세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바른 방법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필자의 짧은 경험을 말씀드리려 한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했다. 딱지치기의 규칙은 한 장을 놓고, 내가 가지고 있는 딱지로 상대의 딱지를 뒤집으면 그 딱지를 접수한다. 그런데 친구 한 녀석이 바닥에 놓는 딱지를 어머님이 읽으시던 잡지책, 표지도 아닌 잡지 내지로 접어왔다. 잡지책은 종이가 얇고 빳빳해서 잘 넘어가지 않기에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수퍼 딱지’였다. 덕분에 수십 장 잃고, 겨우 한 장 따는 패배의 날이 계속되었다. 복수의 칼을 갈며 수퍼 딱지를 만들기에 전념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바로 성경책이었다. 성경책의 첫 부분을 찢으면 걸리기 쉬우니 중간 즈음을 칼로 잘라 딱지를 접었다. 결과 동네 딱지 왕으로 등극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뒷일은 상상에 맡기겠다. 딱지 사건의 트라우마(trauma)로 군대 제대 때까지 성경을 읽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성경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을 경전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다. 문자가 적혀 있는 책 자체에 신비한 기운이 있는 것처럼, 마치 성경책이 부적처럼 느껴지는 거다. 확대 해석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다. 한 해의 말씀을 뽑을 때 자신에게 좋은 말씀이 뽑히면 마음이 편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이 뽑히면 다시 뽑고 싶어 하는 모습 말이다. 물론, 한국 교회의 말씀 뽑기 전통은 말씀을 가까이 대하게 하는 좋은 전통이지만, 말씀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성경의 문자를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넘어 성경책, 성경 문자이라는 우상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2.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잘 지키는 민족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다. 이 말씀 때문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4-9)

그래서 유대인들은 손목과 이마에 말씀을 상자에 넣어 왼쪽 손목과 이마에 감고 다니는 테필린(Tefillin) 전통을 만들어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하려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다.

말씀으로 살려는 선조들의 마음과 그 전통을 따르면서, 살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며 율법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평가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그들은 말씀대로 박하와 회향, 근채의 십일조, 즉 조미료, 고춧가루의 십일조까지 드렸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것이다. 율법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 생명을 위해 주신 율법의 의미를 잊은 채 문자적으로만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신 거다.

그래서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게 되면, 성경의 본래의 뜻을 놓칠 수가 있다. 구약에 나오는 안식일에 대한 규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셨던 분이 예수님이다. 안식일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 안식일을 주신 이유, 본래의 목적을 다시 깨우쳐 주시며 본질은 놓친 채, 문자적으로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당시 종교인들을 꾸짖으신 거다.

물론 문자로서의 성경도 굉장히 중요하다.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이 문자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문자적으로 해석해야만 되는 본문들이 분명 있다.

3.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 맞다.
그럼 질문한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성경책을 어떻게 버려요? 하나님 말씀을 무시합니까?’

엄밀히 말하면, 성경책은 종이에 찍힌 글자일 뿐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친다면 죽은 말씀일 뿐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이렇게 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여기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책이 아니다. 즉 성경은 책장에 꽂혀 있을 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내 자아와 계속 부딪힐 때, 즉 말씀이 나의 모든 인격에 반응하며 내 삶을 이끌어 갈 때, 그것이 살아있는 말씀이 하나님의 되는 거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아는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발견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거다. 그러니까 성경책을 베고 자든, 던지든, 딱지를 접든 상관없다. 그렇기 말하기 전에, 그렇게 말을 하는 내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가고 있는지 아닌지 그것을 살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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