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교회 김형중 목사 묻다②] “설교는 목사만 할 수 있나?”
[아시아엔=김형중 베이직교회 목사] 지난번에 꼭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번으로 이어지는 질문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 설교는 누가하나?”, “목사가 아니어도 설교할 수 있나?”다.
이런 질문의 배경에는 ‘예배는 설교를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예배란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 구절을 그리스도인의 삶, 윤리적인 부분과 연관지어 설명할 때가 많지만, 사실은 삶이 곧 예배라는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말씀이다.
이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드러난다. 가인이 자신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씩씩거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7)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에 앞서서 그가 선을 행하지 않는 삶을 보셨던 것이다. 악을 행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형식적으로는 율법을 지켰지만 마음으로는 자기애(自己愛)를 추구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를 받으신 이유는 아벨이 가인보다 훌륭한 예물을 드려서가 아니라, 마음과 행동이 동일한 삶의 진정성(integrity)을 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배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배에서 설교는 꼭 목사만 해야 하나?
세상은 기준을 만들어 사람들을 구분한다. ‘license system’이다. 물론 license는 안전을 보장한다. 그러나 license가 자격을 말해줄 지 몰라도 자질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license가 있다고 사고가 나지 않을까? 오히려 자격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 비윤리적일 때가 많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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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설교와 성찬에 대한 집례, 그리고 세례를 마치 목사 license를 지닌 사람만의 전유물로 생각한다. 성경은 만인제사장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철저한 계급구조다. 그런 면에서 보면 종교개혁은 실패한 것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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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보면 설교를 하는 제자들은 랍비학교나 율법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예수님을 만난 경험과 성령 충만, 이 두 가지가 그들을 설교자로 세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 졸업장과 목사 안수라는 자격증을 필요로 한다. 교회에는 반드시 목사가 필요한 것처럼 말한다.
가톨릭교회의 ‘교회론’
이런 사고는 가톨릭교회의 교회론이다. 가톨릭교회가 생각하는 교회의 필수조건은 사제다. 사제가 없는 성례전, 예배는 그냥 모임에 불과할 뿐이다. 베드로를 통해 교회를 세우셨기에 베드로로부터 이어지는 사제의 중요성을 말하는 거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교회라는 제도, 건물을 맡기신 것이 아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는 베드로가 했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교회의 모든 것이 목사 중심이 되어 버렸다. 설교는 목사의 전유물이고, 세례와 성찬도 그러하다. 평신도와 성직자라는 선을 긋는다.
그러나 교회의 형성 과정을 말해주는 사도행전은 조금 다른 모습을 전해준다. 사도들이 가기 이전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에 의해 이미 교회, 예수를 섬기는 공동체가 있었다. 사도들이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 이전에, 제도권 교회로 세워지기 전에 더 왕성한 활동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도행전은 이를 ‘주의 손이 함께 하셨기에(행 11:21)’라고 설명해준다.
바울에게 ‘자격증’을 요구하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니었던 바울에게 사도의 자격증을 보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격을 논하는 것은 그들이 볼 때, 바울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도의 조건에 기준 미달, 즉 사도 같지 않아 보인 것이다.
그런 그들의 요구에 대한 바울의 답은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린도후서 3:1, 5)
복음을 듣고 받은 것이 예수님 앞에 추천서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교회됨의 증거라고 선언한 것이다.
설교자의 조건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의 license는 필요치 않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격을 허락하셨다.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 에이든 토저 같은 분들은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성령님께 이끌리어 교회를 깨우는 훌륭한 설교자였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설교는 목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한, 목사의 밥벌이 수단도 아니다. 복음은 이를 전하지 않고서는 답답하여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만난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주저하지 말고 담대히 전하시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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