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교회 김형중 목사 묻다⑦] 종말의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
[아시아엔=김형중 베이직교회 목사] 종말이라는 단어는 늘 두려움을 준다. 심판과 연관되어 무서운 이미지를 준다. 그래서 종말의 때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종말, 그리스도인들은 이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종말로 장사하는 이들
“1992년 10월 28일! 온 세계에 종말이 임하며 휴거가 일어난다!”
다미선교회의 주장에 많은 이들이 현혹되었고 주목했다. 가족을 버리고, 재산을 팔아 갖다 바친 사람도 제법 많았다. 그런데 휴거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이장림이라는 교주의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이 드러나 징역형을 받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종말에 대한 설교가 사라졌다. 종말이라는 주제를 이단들이 가져가버렸기 때문이다. 종말에 관해 설교하거나 가르치면 “왠지 이단스럽다”, “이단 아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단들의 특징은 종말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두려움에 가둬버리고, 그 종말의 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따라야 한다고 설득한다. 신천지가 그런 거 아닌가? 그들이 말하는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4만4천명에 포함돼야 된다. 시간이 지나서 그 수가 넘자 바꾼 말이 사람 숫자 14만4천이 아니라 걸러진 사람이 14만4천명을 넘어야 한다며 “더 열심을 내어 전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악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우린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교회에 이런 이단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2.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원인이 있지만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종말에 대한 가르침의 실종 때문이다. 바른 종말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는 한 사회학자의 주장은, “종교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사후세계, 종말, 이런 것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도들은 종말에 대해 알고 싶은데, 교회는 종말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거다. 성도들이 이단들에게 종말을 무기로 협박당하는데 교회가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왜? 굳이 종말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계속 모이고, 양적으로 교회는 부흥하는데, 무엇하러 굳이 힘들고 어려운 종말에 대해 가르칠 필요가 있겠나? 교회가 종말에 관해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성도들을 이단에게 빼앗겨버렸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종말에 대한 바른 시각, 성경이 말하는 종말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3. 성경이 말하는 종말을 사는 자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말씀하시며,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마가복음 16:28, 마가복음 9:1, 누가복음 9:27)고 말씀하셨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박해와 고난이 있어도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셨으니 ‘마라나타’ 하면서 기다리는 거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는 이것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제일 먼저 정리한 사람이 바울이다. 신학적 용어로 ‘재림 지연 사상’(delay of παρουσια)이라고 부른다. 이 내용을 다루고 있는 성경이 데살로니가서다.
초대교회 성도들 중 예수님의 재림, 종말을 기다리면서 일을 하지 않았던 성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내일 모레가 종말이라면 무엇 하러 일하겠나? 더 기도하고, 교회에 있으려고 할 것 아닌가? 다미선교회가 그랬던 거다. 집도 버리고, 가족도 내버려 둔 채 모여서 기도만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은 두려움을 주는 종말에 대해 흔들리지 말라고 말한다.(데살로니가 전서 3:3, 데살로니가 후서 2:2)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본받으라고 말하며,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바울이 들려주는 종말을 대하는 자세는 평소와 같이,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4. 데살로니가서가 들려주는 종말을 대하는 자세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 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데살로니가 전서 5:6~9)
언제 예수님이 오실지, 종말에 관한 징조들을 보며 깨어 믿음·소망·사랑, 이 세 가지를 붙들고 살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것은 심판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 즉 믿는 이들에게 종말은 심판이 구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어 구체적으로 How to live?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데살로니가 전서 5:11~15)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이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사랑이 전부이고, 사랑이 모든 믿음의 종착지라는 것을 알았던 바울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종말의 때에도 기뻐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는 삶. 이것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전한다.
5. 종말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종말의 때가 왔음을 알리고 외쳐야 하지만, 세상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에 함몰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는 구원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종말의 두려움으로 협박하는 이단에 속지 마시라. 그들은 종말을 이용하여 영혼을 갉아 먹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영혼을 담보로 하여 사람들을 잘못된 교리에 묶어두고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가는 악한 사람들이다. 마치 천국행 티켓이 자기들에게 있는 것 마냥 적지 않은 돈을 내어 구매하게 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봉사·헌신·헌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구원을 핑계 삼아 하나님을 팔아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강도라고 비판하신다.
믿는 이들에게 종말은 두려움의 날이 아니다. 무서운 날도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종말, 마지막 심판은 어린양의 잔칫날이다. 새 하늘, 새 예루살렘이 펼쳐지는 날인 동시에, 더 이상 아픔·슬픔·곡함·눈물도 없는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천국,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가 펼쳐지는 날이다. 그러니 얼마나 그날이 기다려지는지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날 주님 앞에서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정결한 예수님의 신부로, 서로 사랑하며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한다.
*유튜브 채널: 성경속으로
*문의: intothebiblekr@gmail.com
그 때가 올때는 징조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 징조에 대한 관심도 없고 기득권을 가진 목회자들은 그저 잿밥에만 관심이 읬으니 자기 밥그릇 안빼길 생각만 하고 있으니 지금이 노아의 때요 롯때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노아의 방주도 어디선가 의인들을 모으고 있지않을까요?
일부 목사들의 일탈도 있지만, 진정으로 목회하시는 분도 있어서 사회가 그래도 유지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