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교회 김형중 목사 묻다⑨] 점보면 안 되나요?
[아시아엔=김형중 베이직교회 목사]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미래의 일에 관심이 많아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또 어떤 위험 요소가 등장할까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필자 역시 요즘 들어, ‘미래의 일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운세는 통계 아닌가?
유튜브로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는데,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는 웹캠의 화질로는 방송이 어렵다. 이에 웹캠을 구매하려 했더니, 작년 12월 10만원 하던 제품이 20만원 정도로 올라있었다.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앞날을 조금이라도 예측해서 미리 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한 무속인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소위 무당이라고 불리는 이의 영상이다. 무당인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데, 같이 상부상조하자 뭐 이런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 중 크리스천(집사, 권사, 장로 등)이 많다고 밝힌 부분이다. 앞날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에 무속인을 찾아간 것이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서인지, 어려서부터 점을 보면 안 된다고 배워왔다. 목사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성도들 중에 가끔 “재미로 보는 건데, 그게 뭐 그렇게 문제가 되나요?”, “신문에 나온 운세를 보는 건데,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통계라고 우기는 이들도 보았다. 심지어 하나님께 점을 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예정을 정해진 운명으로 이해하고 주장)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해줄까?
2. 사무엘의 영을 이용한 사울왕의 이야기
사무엘상 28장에 보면 사울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 앞서 굉장히 두려워한다. 하나님께 물었다. 그러나 답이 없으시다. 그래서 사울왕이 찾아간 사람이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그랬더니 사무엘이 올라와서 “네 나라가 끝났고 다윗에게 넘어갈거야”라고 이야기한다.
안 그래도 다윗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사울왕은 전쟁의 두려움을 없애고자 사무엘을 불렀는데, 오히려 그 말로 인해 더 두려워하게 된다.
보통 이 본문을 읽으며 “신접한 여인이 부른 영이 정말 사무엘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사무엘이 맞다” “아니다” 두 가지 의견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불러온 영이 사무엘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행위 자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울왕은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며, 왜 사무엘을 불러 올렸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할지, 패배할지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에 그는 왕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된 거다.
성경은 무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하나님께서 무당, 박수 등 접신하는 이들을 공동체에서 쫓아내고 죽이라고 까지 말씀하셨을까? 그들을 찾아가는 원인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마음을 빼앗기고, 다른 것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섬기게 되는, 우상숭배를 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애초부터 금하셨던 것이다.
운세나 점을 사람의 삶의 경험, 노하우에서 오는 통계의 한 종류로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통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함정이 있다. 리서치 대상의 범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차이다. 또한, 통계는 “예전에 이렇게 했으니 앞으로 이럴 것이다”라는 경험과 예측으로 이를 활용하는데, 삶이라는 것은 방정식처럼 딱 떨어지는 수학 공식 같지 않다.
현상은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존재는 수식으로 설명이 불가하다. 그래서 통계의 수치로 계산하는 AI를 무조건 신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하나님만을 섬기라
앞날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 손해보고 싶지 않은 욕심의 표현이 점을 보는 행위의 근거다. 바울은 이런 욕심을 우상숭배로 정의한다.(골로새서 3장 5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 이상의 것을 가지려는 마음이 우상숭배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하루하루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뜻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삶이다.(미가서 6장 8절)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그래서 1년치도 아니고 한달치도 아닌 하루치 식량 ‘만나’을 주신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손해 보지 않을까?”,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까?”,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니 점을 보고, 운세를 따지는 것 아닌가? 나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어버린 행동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여호수아의 고백을 들어보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여호수아 24장 15절)
그리스도인에게 운세는 필요하지 않다. 혹 운세가 정말 있다 해도, 그 운세조차 만드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알기 위해 만든 사람의 방법을 신뢰하기보다 아버지를 신뢰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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