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재판하는 인공지능, 인간 내면도 볼 수 있을까?

“10년 안에 AI로 대체될 주제에 잘난 척하기는…”
젊은 여자가 전화 법률상담을 하던 담당 변호사에게 그렇게 소리쳤다는 짧은 기사를 읽었다. 나는 요즈음 인공지능의 역할을 보고 놀란다. 40년 가까이 변호사를 해온 나보다 100배 1000배 실력이 나은 것 같다. 그 많은 법령과 판례들이 순식간에 척척 나온다. 그걸 보면서 젊은 시절 죽어라 법서를 암기하던 세월이 억울해졌다.
앞으로는 교만한 판사나 권위적인 검사 장사꾼인 변호사 대신 인공지능이 일하는 시대가 올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소리나 전관예우라는 말이 없어질 것이다. 오랫동안 변호사를 한 친구가 냉소적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관예우가 그 본질이 뭐겠어? 안면을 이용해서 질 걸 이기게 하고 이길 걸 지게 하는 거 아닌가? 인공지능에게는 얄짤 없는 거지. 그리고 인공지능은 돈 욕심이 없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없애 버릴 거야.”
인공지능이 재판을 대체하면 정말 공정한 세상이 오는 것일까. 인공지능은 법정을 배회하는 귀신의 장난을 알아챌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게 기도의 힘이 미칠까. 따뜻한 마음이 없는 기계가 하는 재판이 과연 바른 것일까.
평생을 법정 싸움이라는 시궁창 속에서 살아온 나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진다. 인공지능이 그곳에서 풍기는 악취까지 맡을 수 있을까. 법정을 지배하는 귀신 수와 성령의 힘까지 감지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간음을 한 여인을 예수 앞에 데리고 와서 재판해 보라고 했다. 2천년의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은 이번에는 인공지능에게 재판해 보라는 시대가 왔다. 인공지능은 뭐라고 대답할까. 돌이 아니라 벽돌로 까라고 하지는 않을까.
나는 법정에 악령이 배회하는 걸 수없이 보아왔다. 총리나 국회의원이 뇌물을 먹은 장소나 시간을 살짝 바꾸어 알리바이를 조작해 무죄를 만들었다. 악마의 돈이 강간당한 여성을 꽃뱀으로 만드는 것도 본 적이 있다. 30억 정도 들여 가짜 대법원 판결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법정은 귀신 수가 난무했다.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을 매수하면 진실이 거짓으로, 거짓이 진실로 바뀌었다. 오염된 판사들도 나는 봤다. 내가 아는 재판장을 어느 날 감옥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나의 재판을 하던 그가 뇌물죄로 구속되어 법복 대신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쑥스럽구만요”라고 하면서 슬며시 돌아 앉았다.
악령 못지않게 성령의 바람이 법정을 휘몰아 치는 걸 보기도 했다. 한겨울 이른 새벽 문이 굳게 닫힌 법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면서 기도하는 노파의 약한 등을 본 적이 있다. 아들이 그 법정에서 재판받는 날이었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이 의지할 곳은 하나님뿐이었다. 부자들의 기도는 땅에 퍼져 사라진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 닿는 것 같았다. 찬사 같은 판사에게 사건이 배당되는 걸 봤다. 심성이 고약한 판사에게 걸렸어도 신기할 정도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걸 여러번 경험했다. 사십년 가까이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귀신수보다 기도의 힘이 더 강하다는 걸 확신한다.
재판 업무는 본래 신의 일이다. 신은 인간에게 현명함을 주어 그 일을 대신하게 한다. 믿음이 독실한 한 법관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판사를 오래 하다 보니까 선고할 때 피고인의 표정을 살피게 돼. 유죄를 내면서 피고인의 눈을 쳐다보면 그 눈이 순간 ‘저놈이 나에게 속지 않는구나’라고 하는 눈빛이 순간 보여. 그러면 판사 입장으로서는 ‘제대로 판결을 했구나’라고 생각하지. 말로는 진짜나 가짜나 전부 억울하다고 하지. 말만 듣고는 몰라. 그리고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 멍해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러다 ‘아, 판사가 내 말을 들어줬구나’하고 오열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 표정들이 구구각색이지. 선고 전에는 존경한다던 재판장이 죽일 놈으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나님은 판사인 그에게 독특한 능력을 준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도 했다.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이미 인성이 파괴된 인물들이 많이 존재하는 걸 봐.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짐승의 영을 가지고 있는 거지. 쥐의 영을 가지기도 하고 뱀의 영을 가지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 사람을 사회에 다시 내보내면 폭탄 같은 존재들이 되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악마의 자식인 것 같아. 그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오랫동안 격리시켜야 해. 그게 판사가 져야 할 사회의 십자가가 아닐까.”
인공지능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거짓과 진실의 근원지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무채색인 데이터나 지식 그리고 이성만으로는 알 수 없다. 혈관 속에 사랑이 섞인 따뜻한 피가 흘러야 한다. 인공지능은 보조기구이지 하나님과 인간을 대신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