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김지석 부산영화제 수석, 하늘서도 영화제 하나 제대로 만들려 그리 서둘렀나요?”

칸영화제 영진위 부스에 차려진 김지석 부산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영정과 방명록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나는 딱 한번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를 만났다. 2014년 8월 11일 늦은 밤, 인제 만해마을에서였다. 이튿날 만해대상(문예부문) 을 받는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영화감독을 만나기 위해 김 수석이 부산에서 인제까지 온 것이었다.

나는 김 수석에게 “전찬일 평론가한테 얘기 들었다. 훌륭한 영화감독을 소개해주고 한국까지 오도록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마흐말바프 감독과 오랜 친구라고 했다. 김 수석은 1시간 남짓 만해마을 카페에서 맥주를 함께 마시면서도 몇 마디 하지 않았다. 이튿날 그는 인제읍내 인제내린천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그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석달 뒤 11월초 마흐말바프 감독을 서울에서 다시 만나 강원도 고성~속초를 거쳐 양양 낙산사에서 1박을 했다. 이튿날 경기도 문산 대성동 마을의 군부대까지 방문하며 꼬박 30시간을 이란의 영화감독과 함께 했다. 마흐말바프는 한국의 영화나 영화감독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 없었다. 다만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와 김동호 부산영화제 이사장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와 한국, 한국영화와의 인연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거다. 미스터 김동호가 큰 그림을 그렸다면 미스터 김지석은 아주 치밀하게 부산영화제를 키워왔다고 생각한다. 김지석 덕분에 나는 미스터리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만해상도 탈 수 있었다. 동양에선 그런 걸 인연이라고 한다면서?”

이후 내가 김지석 수석에 대해 들은 것은 전찬일 평론가 외에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이따금 카톡을 보냈지만(방금 세어보니 주로 안부를 묻는 카톡 문자를 5번 보냈다) 그의 답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 19일 방은진 감독이 문자를 보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 칸느서 별세했어요.” 오전 10시40분이었다.

포털에 조회하니 그의 부음을 알리는 기사들이 여럿 떴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을 써야할 텐데, 누가 좋을까’ 생각했다.

김 수석이 별세한 지 하루 반나절 지나 청탁을 받은 그는 쓰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추모면 좋은 말만 해야 하는데 아무리 고인이라도 그럴 순 없을 터”라며 “냉정하게 공과를 짚는 건 시기상조”라고 했다.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미적거리고 있는 그때 마침 한예종 임웅균 교수가 전화를 해왔다. 토요일 오후 3시반께였다. “나 지금 소주 두병째 혼술 하고 있어요. 죽은 천재 생각하면서···. 천재가 또 죽었는데, 아시아엔 뭐하고 있어요. 김지석 말야, 난 그 친구 잘 모르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부산영화제가 저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우리나라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내로라 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그런 사람 하나 못 지키고, 또 죽어도 그걸로 끝나야 하냔 말야? 아시아엔에서 꼭 좀 쓰세요, 제발!”

나는 임 교수에게 “김지석을 딱 한번 봤을 뿐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임 교수는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감하고 함께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거의 이틀을 뒤척이다, 월요일 아침 자판을 두드린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와의 단 한번 만남이 이렇게 여러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을 느끼며···.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 했다. 그의 회향(回向)을 기다린다. 만해마을에서 마흐말바프 감독과 맥주잔 나누며 이번엔 수다 좀 듣고 싶다.

그의 공생애와 애도 마음들을 정리한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향년 58세로 지난 18일 오후(프랑스 현지시간 기준) 프랑스 칸영화제 출장 중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는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창설 맴버로 현 부집행위원장이자 수석프로그래머직을 맡고 있다. 그는 20여년 동안 아시아영화 발굴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오며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세계적으로 발돋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유명을 달리한 김 부집행위원장을 기리기 위해 세계 각국 영화제도 애도 성명을 냈다.

칸 영화제에 이어 베를린과 로카르노 국제영화제도 동참을 했다. 칸영화제는 20일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애도했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그가 항상 지켜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위대한 설립자 중 한 사람”이라며 “그는 항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봐야 할 모든 영화를 보던 위대한 프로페셔널이자 프로그래머였다”고 기렸다. 프레모 위원장은 “우리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그의 죽음에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칸영화제는 그에게 헌사를 바치며 그의 유족에게도 깊은 조의를 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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