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경계 넘은 두 ‘거장’,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나다
랑시에르-마흐말바프 17년 터울 극복 ‘완벽상통’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와 모흐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 1957~).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10월2~11일, 이하 BIFF)를 빛낸, 귀하디 귀한 두 손님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파리 제8대학 명예교수이자 유럽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알제리 태생 프랑스의 전방위 철학자다. “잠시도 어느 한 분과 학문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아직도 우리에게 독특한 생각들을 던져주고 있다.”(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길, 2013). “현재 전 세계의 시각예술과 영화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철학자 가운데 하나.”(철학가 이지훈) 그는 비경쟁 영화제 BIFF의 핵심 경쟁 섹션인 뉴커런츠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았다.
랑시에르 교수는 ‘영원한 시네필’이며 ‘시네마테크 키드‘로도 유명하다. 심사위원으로 본래 역할을 완수한 외에도 심성보 감독의 <해무> 등 일련의 BIFF 초청작들을 관람했다. 위의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를 포함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의 성일권 발행인·편집인, 김혜영 시인(부산일보) 등과 인터뷰를 소화하기도 했다. 70대 중반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물론 그 세계적 명성을 망각케 하는, 특유의 ‘열린’ 활동력이다. 그 중에는 8~10일 사흘간 열린 제2회 BC&F(BIFF Conference & Forum) 참여도 포함돼 있다. 돌이켜 보면 랑시에르의 컨퍼런스 방문은 거장이 안겨준 크나큰 선물이다. BIFF는 말할 것 없고, 특히 그와의 연락 업무를 수행해야만 했던 내게도.
BIFF 컨퍼런스 첫날인 8일 오후 두번째 세션은 영화를 중심으로 랑시에르의 철학과 사상 세계를 파고드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일 오전까지, 세션의 주인공이라 할 노거장이 현장을 찾아 인사말이라도 해줄 지 여부조차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아시아필름마켓 부위원장을 겸해 BIFF연구소 소장까지 맡게 된 필자가 미루고 미루다 그 전날 오후에야 비로소 랑시에르 담당 코디네이터를 통해 참석 여부를 물었다. 무례임이 명백했으나 ‘용서’를 구하는, 폰트 12에 A4 용지 3장에 달하는, 그런 유의 의례적 전갈에 비하면 지나치게 긴, 그러나 진심 어린 편지를 통해서였다. 진심이 통했을까, 랑시에르 교수는 8일 오후 예정돼 있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4시부터 2시간 반에 걸친 세션에 참석하겠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세션 시작 전 일찌감치 현장을 찾은 그는 의례적 인사말을 넘어 족히 20분은 됐을 기조강연을 선사했다. 오직 그만이 해독할 수 있을 난문의 영어원고를, 수준급 전문 통역사도 통역해내기 힘들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 갔다. 특유의 순진무구한 표정과 퍼포먼스적 제스처를 곁들여! 그리고는 예정보다 30분 이상 길어진 세션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예정돼 있지 않았던 이후의, 편하다 못해 남루했던 저녁식사도 십수 명과 함께 했다, 한국 고유의 불고기정식과 몇 잔의 ‘소맥’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빈말이 아니라 올 BIFF의, 아니 이 세상의 그 어떤 영화가 그 날의 그 체험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지훈에 따르면, 철학자가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이라고 한다. 이지훈은 그것이 ‘문화적 사건’으로 ‘매우 뜻 깊은 사건인 동시에 고무적이고 유쾌한 사건’이란다. 그는 “그동안 영화문화는 영화 제작자와 전문 평론가와 같은 ‘직업적 전문가’들이 이끌어 왔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문화의 변화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진단하면서. 그에 대해 노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일반적으로 철학자는 마치 철학이 마련해준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이 특별한 예술 즉 영화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실천해온 철학은 그 반대입니다. 전 언제나 경계와 위계를 무너뜨리는 철학을 실천해왔습니다. 서로 다른 예술과 서로 다른 학제(discipline) 사이에 있는 경계와 위계 말입니다. 이런 뜻에서 철학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영화에 관한 판단을 오직 영화전문가가 독점하게 만드는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철학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눈으로 영화를 본다는 걸 말합니다. 제가 초대받은 이유도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전문적 애호가(amateur)’로 초대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한없이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탈위계적인 거장의 이론과 실천이 이해되지 않을까.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어떤가? 이집트 작가 아시라프 달리, 한국 서예가 윤양희와 공동으로 지난 8월 제18회 만해대상 문예대상을 안으면서, 시네필을 넘어 <매거진 N>과 <아시아엔>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이고 시인이며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이란이 낳은 ‘세계적 거인’. 랑시에르 교수가 컨퍼런스에 동참하고 있을 때, 그 옆 장소의 포럼 두 번째 세션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영화의 진리’에서는 그 거인이 자신의 짤막한 영화 인생을 들려준 뒤, 최병학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의 발제(마흐말바프: 영화의 진리와 마흐말바프의 진리)와, 그에 이은 부산대 이왕주 교수의 발제(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카메라 ‘꽃’)를 경청하고 있었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그의 신작 <대통령>의 Q&A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그 두 거목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아시아 최고·최대 영화제 안에서 소박하지만 유의미하게 펼쳐지는 BC&F, 즉 ‘아카데믹 페스티벌’의 한 공간을 동시에 지키고 있었다니, 그 얼마나 멋진 한 편의 감동 드라마인가!
마흐말바프 감독은 굉장히 친절했으나 “영화관에 가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믿으시던” 카리스마 만점의 할머니를 사랑해,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영화와 영화관을 멀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제가 어렸을 때 영화관은 할리우드나 발리우드 영화로 가득했습니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찾아보기가 힘들었죠. 그러기 때문에 당시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별로 놓친 건 없습니다. 둘째, 어른이 되어 영화를 볼 때 영화라는 것을 처음 보는 거였기에 다른 관객에 비해 영화의 효과가 더 극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중략) 셋째, 어려서 영화에 대해 노출이 많이 되지 않았던 덕분에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나만의 길을 가는 데에 도움이 됐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아직 정신과 사고가 순수했었기 때문이죠.”
이 얼마나 흥미로운, 역발상적 시선인가. 철저히 경험들에 입각해 지금도 여전히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는 그에게 영화란 “한 번 배운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창조”인 것이다.
재창조라? 랑시에르와 마흐말바프 그 두 거목 사이엔. 십수 년의 나이 차에도 아랑곳없이 완벽에 가까운 ‘상통’이 이뤄졌던 셈이다. 그 기적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