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여성영화’의 어떤 가능성
‘겨울왕국’에서 ‘우아한 거짓말’까지
주지하다시피 <겨울왕국>이 국내 개봉 46일째인 3월2일을 기해 마의 1000만 고지를 돌파했다. 외국영화로는 <아바타>에 이어 사상 2번째며, 한국영화까지 포함하면 11번째다. 이 기념비적 기록이 가능했던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으뜸 변수는 OST다. 그 중에서도 2014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거머쥔 ‘렛잇고(Let it go)’, 특히 ‘렛잇고’로 시작해 ‘렛잇고’로 이어지는, 따라 부르기 쉽고 경쾌한 멜로디의 후렴부다.
영화사적 맥락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픈 <겨울왕국>의 의의는 이른바 ‘여성영화(Woman Film, Women’s Cinema)’로서의 어떤 가능성이다.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이 짚었듯, 예의 백마 탄 왕자(의 키스) 없이도 가능해진 “<라푼젤>에 이은 ‘주체적 여성’에 대한 디즈니의 또 다른 시도!” “이성애의 대상이 아니라, 여성적 연대의 주체가 된 공주”(영화평론가 황진미) “언니 엘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동생 안나는 관계를 회복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여성주체적 만화영화를 할리우드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악명 높았던 디즈니왕국에서 빚어냈다는 사실이?
한 블로거가 적시(<겨울왕국>에서 해법 찾은 디즈니와 픽사의 융합)했듯, 그것은 지난 2006년 디즈니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로부터 74억 달러에 픽사를 인수하며 디즈니의 보수주의와 픽사의 자유주의 간 동거가 시작됐기에 이뤄질 수 있었던 성취였다. “엘사와 안나는 디즈니왕국에서 볼 수 없었던 자립적인 여성들이며 그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디즈니세계의 영원한 주제인 ‘진정한 사랑’은 단지 이성애를 의미하지 않는다.”
종래의 남성중심적 견지에서 보면 불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여성영화적 가능성은 <겨울왕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부터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 권칠인 감독의 <관능의 법칙>, 그리고 이한 감독의 <우아한 거짓말>에 이르는 일련의 한국영화에서도 선명히 감지·목격할 수 있다.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 정재은 감독의〈고양이를 부탁해>, 강형철 감독의 <써니> 등 그간 한국 주류 영화역사에서도 이들에 견줄 수 있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출현해왔다. 허나 3개월여의 짧은 기간 안에 이처럼 복수적으로, 그것도 문제적 수·걸작을 잇달아 선보이며 대중 관객들과 조우한 적은 내가 기억하는 한 없었다. 흥행 성적에 상관없이 이들 영화들에 남다른 눈길을 보내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래서다.
그들이 모두 “여전히 실체가 불분명한 혼란스런 개념”(<영화사전>)으로서 여성영화의 이상적 모델이라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성 이야기를 소재로 하거나 여성감독이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 여성영화가 될 수는 없”다. “여성의 문제와 그 문제에 대한 대안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 영화를 여성영화로 인정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이들에게서는 어느 모로 “남성 판타지로부터의 탈주(<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를 완전히 실현했다고 볼 수 없는 층위 및 지점들이 더러 존재하기도 한다(고 평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러나 “어떤 단일한 정의나 목적 없이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면서도 하나로 통합될 수 있으며”, “주류 담론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전통적인 관습과 섞이고, 겨루며, 그것을 변화시키는 감염된 양식”이라는 앨리슨 버틀러(<여성영화-경계를 가로지르는 스크린>)가 정의하는, 광의의 여성영화로서 손색없다. 캐릭터나 플롯도 그렇지만, 주·조연 여배우들의 존재감,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면 그 다름과 의미는 단연 두드러진다.
풍요로워진 한국영화 속살
2013년 한국영화 베스트 9위(www.izm.co.kr ‘영화평론가 전찬일의 문화탐방’ 참고)로 선정한 <집으로 가는 길>의 전도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 없을 터. 함께 연기한 남편 역 고수에겐 미안한 평가긴 해도 “전도연의,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 영화라 해도 과례가 아니다. 감독의 데뷔작 <도가니>와는 180도 다른 흥겨운 재미를 제공하는 <수상한 그녀>는 어떤가? 칠순 할매 오말순 역의 나문희는, 70대 초반 나이에도 900만에 근접하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미션 임파서블적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줬다. 배역과 감독 등을 잘 만나야 한다는 단서가 따라야겠지만 말이다. 오말순의 스무살 버전 오두리 역의 심은경은, 전지현 같은 치명적 매혹 없이도 그 못지않은 홈런을 날릴 수 있음을 웅변했다. 이 두 여걸은 박인환, 성동일 같은 연기파 남자 주연들을 그늘에 위치시킨다.
<관능의 법칙> 역시 마찬가지다. 문소리, 조민수, 엄정화 세 여성 연기자들은 이성민, 이경영, 이재윤 등 멋진 남자 조연들을 압도하면서 중년 여성의 건재를 과시한다. 시종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아한 거짓말>에 이르면, 그야 말로 ‘여성 만세!’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성동일이 분한 만호 역은 아버지로서나 남자로서나 한마디로 한심한 무능남이요 악당이나 주변부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추상박 역의, 완득이 유아인도 주변부에 머물긴 매한가지다.
20여 년 만에 엄마 역 현숙으로 스크린 연기에 도전한 김희애는 <마더>의 김혜자나, <변호인>의 김영애 등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우아하면서도 억척스러운 어머니 상을 감동적으로 구현한다. 가히 화룡점정이다. 현숙의 큰 딸 만지 역 고아성은 그 동안의 조연적 이미지를 떨쳐내면서, 재연되기 힘들 생애의 역할·연기를 뽐낸다. 이들만이 아니다. 극 중 사건의 두 주역인 현숙의 작은 딸 천지와, 천지의 친구 화연을 열연한 김향기, 김유정도 말할 것 없다. 아니, 천지의 또 다른 친구 미라 역의 유연미나 만지의 절친 미란 역의 천우희 등 조연들마저, 비중은 작아도 주연들 못잖은 인상을 전한다.
위 영화들은 예외 없이 예상보다 훨씬 큰, 여로 모로 주체하기 힘든 크고 그윽한 감흥을 안겨주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있어 한국영화의 얼굴과 속내가 그만큼 더 풍요로워졌다고 여기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