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강력한 스토리텔링, 이란 영화의 새 장을 열다

‘포스트 리안’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포스트 리안’의 최상급 드라마와 문제의식에 경의를! 이란 아쉬가르 파르하디(42) 감독이 프랑스와 이란 배우, 스태프들과 조국 이란이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 빚어낸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 대한 내 최종 단평이다. 4년 간 별거 끝에 네 번째 결혼을 통해 새 삶을 시작하려는 한 여인(베레니스 베조 분)과, 이혼을 위해 이란에서 파리를 방문하는 남자(알리 모사파), 그리고 그녀의 새 남자(타하 라임) 등 주변 인물들을 축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가족 드라마.

영화는 크고 작은 갈등을 거쳐 서서히 충격적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 과정이 하도 드라마틱해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그만큼 스토리텔링 흡인력이 강력하다.?임팩트가 얼마나 강렬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워싱턴포스트) “예상치 못한 플롯과 우아한 디테일로 짜릿함이 있는 영화!”(가디언) “모든 디테일을 심플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색다른 미스터리로 풀어낸 뛰어난 이야기꾼이 돌아왔다”(Film-Forward.com) 등의 극찬이 세계 유수 저널 평자들로부터 쏟아져 나왔겠는가.

플롯만이 아니다. 문제의식이나 주제 또한 최강이다. 영화는 두 남녀의 이혼을 둘러싼 가족담을 통해, 현대 사회의 숱한 문제점들에 대한 어떤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네 인간들의 자기중심성을 비롯해 감정의 변덕스러움, 뿌리 깊은 세대갈등 등 숱한 인간사의 크고 작은 갈등들, 그 갈등이 야기하는 폭력 등의 문제, 아이들 교육의 난망함, 갈등에 대처하는 프랑스인과 이란인 사이의 차이 등에 대한 감독 특유의 시각을 최상의 드라마투르기로 극화해 펼쳐 보이는 것이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2013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돼 여우주연상 등을 차지했다. 2012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휩쓴 <아티스트>의 히로인 베레니스 베조는 ‘칸의 여왕’이 됐다. 그 이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을 통해 국내 첫 선을 보였다. 12월26일 개봉돼 상업영화 100만 선에 해당하는 누적 관객 수 1만 선을 새해 6일을 기해 돌파하고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상위에 머물면서 2만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포스트 리안’은 그래도 너무 과하며 성급한 진단 아닐까? 고작 40대 초반의 감독인데다 <와호장룡>(2000) 같은 흥행 대작을 낸 것도 아니거늘. 리안(李安)이 누구인가? 아시아 출신으로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세계영화사상 가장 큰 성공을 일궈낸 거목 아닌가! 그의 걸작 무협 멜로 <와호장룡>은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수상에다 북미 지역에서만 1억3000만 달러에 가까운 거액을 벌어들이며 외국어 영화로는 그 부문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지금껏 보유하고 있는 기념비적 블록버스터 아닌가?

더욱이 지난 20년 간 세계 3대 영화제를 통해 그 실력과 명성을 인정·축적해 온 거장 중 한 명이다. <아이스 스톰>으로 1997년 세계 최고 영화제라는 칸에서 각본상(제임스 셰이머스)을 수상했고,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로는 2005년과 2007년 거푸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안았다. 그에 앞서 두 번째 장편 연출작 <결혼 피로연>과 <타이타닉>의 히로인 케이트 윈슬렛을 발견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1993년과 1996년 베를린 황금곰상을 거머쥐었다. 아직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못 받았어도, 기록적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놀랍지 않은가?

장편 데뷔작 <사막의 춤>(2003)과 <아름다운 도시>(2004), <불꽃놀이>(2006)까지 감독으로서 아쉬가르 파르하디의 존재감을 입증한 세 영화는 미처 보지 못했으니 논외로 하자. 2009 베를린 은곰상(감독상)을 받으며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 <어바웃 엘리>나 2011 베를린 황금곰상과 2012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등에 빛나는 결정적 출세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시선을 확장하면 그러나, 위 진단은 과장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리안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다름 아닌 베를린영화제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확보했다. 베를린 최고상을 안은 나이도 마흔 살 전후로 비슷하다. 수차례에 걸쳐 대만과 이란 영화를 대표해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가 되고, <와호장룡>과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수상의 영예를 가져간 것도 닮았다. 영화텍스트 외적 사실만 엇비슷한 게 아니다. “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억압”이며, “나는 갈등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갈등에서 오는 긴장감은 캐릭터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라는 리안 감독의 진술(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섬세한 이방인의 시선, <테이킹 우드스탁>의 이안 감독’, 네이버 영화 참고)은 파르하디 영화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 사실은 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다…미래에 대한 보장을 추구하는 것, 하지만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이 두 가지는 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다”라는 진술도 마찬가지고.

페르시아문화 고유의 이야기성

두 감독의 영화에서 아시아적 정체성이 기표적으로나 기의적으로 표현·내포되고 그 기호를 통해 서양과 동양 사이의 작지 않은 대립·대조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조화 가능성 및 희망의 끈이 포기되지 않을 뿐더러 강조된다는 점 등도 닮은꼴이다. 나아가 그 두 감독의 역사적 성공을 통해 아시아 감독과 영화들의 잠재력이 다시금 발견되고 집중 조명됐다는 점에서도 둘은 18살의 나이 차를 넘어서는 공통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등 해외에서 작업한 한국 감독의 선배요 후배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갈라놓는 결정적 지점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 리안 감독이 대만 영화와 중국 영화의 얼굴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거나 못한데 반해, 파르하디 감독은 이란 영화에 대한 그 간의 어떤 이미지·고정관념 등을 근본적으로 수정·재고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영화가 영화제 등의 채널을 통해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다리우스 메르지의 <암소>(1969)를 필두로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의 <정물>(Still Life, Tabiate bijan, 1974) 등 이른바 ‘새로운 이란 영화’의 대표적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그 알려짐의 본격적 계기는 그러나,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와 공동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안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였다. 그 이후 키아로스타미를 위시해 <가베>(1996), <칸다하르>(2001) 등의 모센 마흐말바프, <하얀 풍선>(1995), <거울>(1997), <써클>(2000) 등의 자파르 파나히 등이 이란 영화의 대표 주자들로 자리 잡았다.

<천국의 아이들>(1997) 등 대중적 성공작으로 널리 알려진 마지드 마지디 같은 예외적 감독도 있지만, 그 영화들에서는 파르하디 영화에서와 같은 강력한 스토리성 내지 드라마성이 부재한다. 서구적 포스트 모더니스트(키아로스타미), 폴리티컬 액티비스트(마흐말바프), 비판적 아티스트(파나히) 등의 개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 영화를 관류하는 공통점은 이란 사회를 향한 체제비판적·‘탈페르시아적’ 시선이었다. 그 지점에서 파르하디 감독은 위 선배 감독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노선을 걷는다. “이야기들이 저에게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야기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연출의 변이 그 ‘다름’을 확연히 증거한다.

그 다름을 근거로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편을 들거나 옹호·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요지는 파르하디의 급부상을 계기로 이란 영화의 무게중심이 위 세 명장들에서 그에게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으며 이란 영화의 얼굴·담론 등이 근원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파르하디가 ‘이란을 대표하는 차세대 거장 감독’으로 일컬어지면서, 페르시아 문화 고유의 이야기성이 새삼 강조되면서, 아시아 영화의 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동의하거나 말거나.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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