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파리의 한국남자’가 던진 인상적 감흥들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파리의 한국남자>는 전수일 감독의 열 번째 장편 연출작이며, 주연배우 조재현과 세 번째 함께 한 영화다. 영화는 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세계 첫 선을 보였다.
전수일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이 영화의 극적 설정 역시 간단하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신혼여행 중 어린 신부 연화(팽지인 분)가 갑자기 사라진다. 상호(조재현)는 연화를 찾아 매일 밤 파리의 뒷골목을 헤매며, 그때껏 보지 못했던, 날것 그대로의 파리의 속내와 마주하게 된다. 의심과 불안, 실낱같은 믿음과 희망 속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어느 날, 상호는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창(미콴락)과 아픔을 공유하며 아내가 사라진 후 처음으로 욕망을 느낀다. 그 이후 그토록 찾고 싶었던 연화로 추정되는 이를 알고 있다는 매춘부가 나타나고, 그녀를 찾아 파리를 떠나 마르세이유로 향한다.
보도자료를 빌린 이 짧은 소개에서 영화의 성격이 대략 도출된다. 미스터리 성격을 띤 로드무비요 일종의 성장영화랄까. 자연스럽게 몇몇 의문들도 찾아든다. 상호는 과연 연화를 찾게 될까? 그 이전에 연화는 납치·실종된 것일까? 혹 자발적으로 상호를 떠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굳이 대중·상업 영화가 아닌, 대개의 저예산 독립영화라도 그들은 으레 그런 의문들을 푸는 과정을 거쳐 그런 결말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감독이 전수일이라면 그와 같은 기대를 걸기란 난망일 터.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관객들은 위 물음들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얻을 수 없다. 감독은 자기 영화를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의향이 애당초 없다. 그 감독 참, ‘불친절’ 하달까?
지난 1월15일 오후 매체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은 “… 영화는 의미를 던지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을 캐릭터 속에서 생각할 기회를 전한다면 관객이 감상할 때 좀 더 풍요롭게 보지 않을까”라는 바람을 전했다. “계획대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연한 사건에 의해 운명이 바뀌게 되고, 주인공이 그 운명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의 과정을 따라가고 싶었다”고 하면서.
불친절은 따라서 그 낱말 속에 내포돼 있는 무례나 무시 등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것은 관객을 향한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이며 열려있음의 징표다. 이른바 영화적 절제니 생략 등은 그 수단이고. 또 그것은 비단 전수일 그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주류 작가와 감독들은 대체적으로 불친절해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하고 써왔듯 전수일 감독의 영화들은 결코 지켜보기 만만치 않았다. 조재현과 첫 작업을 한 단편 <내 안에 부는 바람>(1996)에 ‘아이:말에게 물어보렴’과 ‘노인:길 위에서의 휴식’을 앞뒤로 붙여 시간, 기억, 죽음에 대한 옴니버스 3부작 구성으로 빚어내 1997년 제50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장편 데뷔작 <내 안에 부는 바람>부터 조재현과 두 번째 작업한 최근 작 <콘돌은 날아간다>(2013)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그의 전작(全作) 중 가장 대중적이면서 다소는 상업적이라 할 수도 있었던 세 번째 연출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2003)나, 가장 마음 편히 볼 수 있(다고 여겨지)는 다섯 번째 연출작 <검은 땅의 소녀와>(2007)도 그랬다. 최민식이 <친절한 금자씨> 이후 3년여 만에 연기에 복귀한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2009)에서도 톱스타 최민식이 아니라 전수일의 작가성이 압도했다.
그렇다고 전수일 영화들의 속내가 난해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 별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단지 영화 연출 스타일 면에서 비주류 화법으로 일관한다. 감독은 대중 상업영화의 오락적 가치들을 최대한 억압한다. 무엇보다 느린 편집 호흡과, 움직이건 멈춰서 있건 간에 늘 응시적인 카메라 시선을 통해서다. 그래서일까, 여덟 번째 연출작 <핑크>(2012) 이후 체모 노출도 마다지 않는 적나라한 성 묘사도 선정적이기는커녕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 <파리의 한국남자>에서는 의붓아버지를 대상으로 창녀 창이 펼치는 노골적 오럴섹스가 유리창에 투사돼 묘사되지만, 그 느낌은 외설적이기보다는 외려 슬프다. 짙은 페이소스가 감지된다. 저예산이란 물질적 여건 탓에 대개는 스타가 부재하나, 최민식과 조재현 같은 스타가 출연해도 그로 인해 영향 받는 것은 거의 없다. 감독의 기질상 스타에 의해 자신의 영화적 진정성 및 메시지가 변질·퇴색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할까.
전수일 그는 ‘좁은 길’의 감독이요, ‘가지 않는 길’의 작가다. 긴 호흡으로, 여간해선 가지 않는 길을 걷는 작가다. 조재현은 어느 인터뷰에서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자세로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하는 전수일 감독이 대단하고 존경한다”고 전했다. 부산의 경성대학교 영화과 선배인 감독을 향한 홍보성 립서비스 아닐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의 진심은 매체시사 후 간담회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자리에서 조재현은 “개인적으로 예술영화 하시는 감독님에 대한 존경감이 있다. 끊임없이 하시는 분들에게 더 큰 존경심이 생긴다”고 했다. 조재현은 “상업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그것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커버해주는 시나리오에 관심이 많다”며, 예술영화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그가 왜 바쁜 와중에도 전수일 감독의 영화에 연거푸 출연했는지 이유를 명확히 말했다. “제가 이런 영화를 하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가 참여함으로써 제작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도 있다.”(<연합뉴스> 참고 및 인용)
그는 작금의 한국영화 풍토에 대한 유감도 밝혔다. “<파리의 한국남자>의 개봉이 확 유쾌하고 신이 나고 흥분되지 않는데, 이런 영화가 개봉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꼭 필요하고 중요한 영화임에도 관객과 만나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다양성 영화들은 상영관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는데다, 설사 운 좋게 개봉관을 잡더라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 시간대에 편성되기 십상이다. 조재현은 “이런 문제는 독립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역설했다. “1000만 영화에만 집중하다 보니 300만, 400만 짜리 영화도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재현은 ‘큰 영화’와 ‘작은 영화’가 공존하는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다.
<파리의 한국남자>는 영화도 영화지만 전수일의 생명력과 조재현의 문제의식이 영화평론가인 내게 평론가로서 본분·역할 등을 새삼 되새기게 해준 소중한 계기였다. 그때 그 감흥을 오랫동안 잊지 않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