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문예지성’ 경동교회서 평화를 얘기하다
일평생 조국의 독립과 인류평화에 몸 바친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만해대상. 이 상 수상자들답게 그들은 문학으로, 영화로 평화를 말할 줄 알았다. 2014 만해대상 문예부문 수상자 이란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이집트 작가 겸 저널리스트인 아시라프 달리(아시아기자협회 차기회장)는 8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경동교회에서 2시간 동안 “아랍 문예 지성의 평화메시지”를 주제로 Movie & Poem Talk를 가졌다.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문예 지성이 지니는 평화에 대해 깊은 토론을 나눴다.
‘과학·기술에 의존 않고 사랑 깨달아야 전쟁 멈출 수 있다’
아시라프 달리는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집안문제일 수도 있는 이웃나라끼리 싸우는 것은 이상하다. 한 나라에서 의견을 통합하고 그 다음에 두 나라가 협의해야 한다. 단 협의할 때도 전쟁이 정의롭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영향을 많이 끼쳤지만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 한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아랍권에 소개해왔는데 특히 고은 시인과 조오현 스님의 시를 아랍어로 번역한 대표적인 아랍의 지한파 인사다. 그는 “아랍문학을 비하하는 소리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아랍문학보다 한국문학이 더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플로어에 있던 청중이 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시라프 달리는 “누구나 한번쯤은 시를 써봤을 것이다. 나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쓴다.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많이 쓰는데 그 지역의 이야기와 그 지역에서 보고 느낀 것을 쓰는 것도 시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와 기사는 동행한다고 본다. 차이점이 있다면 시는 마감이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아시라프 달리는 진정으로 문자를 사랑하는 남자였다. 짧은 문자로 자신을 표현하고, 긴 문자로 쉴틈 없이 돌아가는 시대를 기록한다. 낭만이 있어야 삶이 풍요로운 법, 바쁜 일상이지만 나만의 시를 지어보자. 사소하게 느끼는 것들이 시의 재료가 되고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한다. 당장 지금 떠오르는 단상을 단 세 줄이라도 써보자. 그게 곧 나를 표현하는 시고, 그 단상을 기록하는 글이다.
‘리더들이 모두 시인이 되면 전쟁도 줄고 국가간 갈등도 없어질 것’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안영화인상을 수상하고 모스크바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이란 영화계의 거장인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영화는 ‘도구’”라고 했다. “같은 행성에 살고 있는 이웃끼리 싸우지 말자”며 말문을 연 모흐센 감독은 ‘도구로서의 영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데 쓰이는 도구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70만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이란 정부와 세계인들에 보여줬더니 50만명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17살 때 반이슬람 조직에 가담했다가 사형선고를 받은 뒤, 이란혁명 이후 6년의 수감생활을 했다. 그는 영화감독답게 질문에도 독특한 관점을 보여줬다. 사진을 찍을 때도 남다른 포즈를 취해주었다. 테헤란 빈민가에서 태어났기에 없는 자들을 위로할 줄 알고, 못 배운 자들을 위해 자기가 가진 힘을 쓸 줄 아는 것 같다.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날 토크쇼에서 자신의 영화 <칸다하르>를 짧게 편집해 보여줬다. 10분짜리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들쑥날쑥한 리듬감으로 코란을 외우고 있었다. “총이 무엇이냐”는 선생의 갑작스런 질문에 아이들은 기계가 물건을 찍어내듯 “화약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산자를 죽이고 죽은 자를 소멸시킨다”고 즉각 대답했다. 전쟁으로 다리 한쪽을 잃은 청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다리를 향해 입을 앙다물고 쉼없이 달린다. 이 영화는 책으로도 나왔는데 책의 첫 장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다.
‘당신이 이 글을 주의 깊게 읽는 데는 아마 한 시간쯤 걸릴 것이다. 바로 그 한 시간 동안 14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고 다른 60명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난민이 된다. 이 글을 이 비극과 죽음과 기아의 이유에 대해 쓴 것이다. 이 고통스런 이야기가 당신 개인의 행복과 상관없다고 생각되면 이 글을 읽지 마라’
“아프가니스탄의 불상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치욕스러운 나머지 무너져 버린 것”이라고 하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다른 지역에서의 분쟁을 둔하게 느꼈던 나는 <칸다하르>를 다시 찾아볼 예정이다. 이게 바로 <살인의 추억> 등 숱한 영화를 만든 영화제작자 겸 동국대 교수인 차승재씨의 ‘영화론’과 맥이 닿는다.
차 교수는 자신이 싫어하는 두 단어는 종교와 민족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는 기준은 민족과 종교이다. 인간은 스스로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므로 자신들을 지켜줄 울타리로 민족과 종교를 가지는 것 같다. 물론 둘 다 좋은 시스템이고 나도 신이 있다고 믿는다. 정치나 국가도 좋은 시스템이지만 이걸 이끄는 리더들의 욕심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종교, 민족, 국가가 나쁜 게 아니라 리더의 자질에 따라 좋고 나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문화예술이 사람들의 본성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모흐센 감독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영화’이고, 사람의 마음을 재밌게 하는 건 ‘오락’이다.”
기독교 교회에 열린 토크에 참석한 열린선원 원장 법현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여러 명분을 대지만 필요한 돈을 노리고 하는 결정이다. 신을 믿는 나라의 지도자들이 신만이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잘못이다. 모든 싸움의 원인은 한 아가씨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스언더스탠드(오해)다. 즉 부족한 시간 속에서 필요한 돈을 채우기 위해 결정하면서도 온갖 명분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대중이 기억해야 한다.”
이날 토크쇼는 아시아엔(대표 이상기)이 주최하고 경동교회(담임목사 박종화) 후원으로 열렸다. 김영원 비보이 감독 겸 제작자가 사회를 맡고 리사 위터 아시아기자협회 대외협력팀장과 송한솔 아시아엔 인턴기자가 통역을 맡았다. 김란향 인턴기자(연세대 국제관계학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