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미국판 ‘살인의 추억’ 토막범죄 ‘데니스 닐슨’ 이야기

데니스 닐슨, 1983년 2월8일 38세 공무원이었다. 퇴근해 바로 집으로 갔다. 기다리고 있던 형사 셋과 마주쳤다. 하수구의 사람 살점 때문이라 직감했다. “슬프고도 무서운 일”이라고 운을 뗐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2015년 4월8일, 월요일. Ss Hospital in Seoul 외래동 2층, 퇴근시간 무렵 지각한 환자가 헐레벌떡 뛰어 왔다. 접수계 여직원에게 묻는다. “혈압 재는 사람이 없나요?” “셀프하세요.”

이 짤막한 한 마디 말. 정확하게 이 나라 이 시대 모습이다. 어딜 가나 셀프다. “물은 셀프입니다.” 셀프 주유소도 성황이다. 트렌드다.

범죄는 물론 예나 지금이나 셀프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셀프. 자기가 저지른다. 경향(trend, 추세)가 있다. 사람이 저지르는 탓에 독창이든 모방이든 유행도 탄다.

요즘 범죄세계에서는 토막살인이 빈번하다. 원래 자주 범하는 범죄행위가 아니다. 그러다 이벤트 범죄(이슈 범죄)가 됐다.

일본에서도 20세기 후반 들어 매년 몇건씩 발생하고 있다. 서양에 비하면 동양은 그래도 드문 편이다.

데니스 닐슨, 1983년 2월8일 38세 공무원이었다. 퇴근해 바로 집으로 갔다. 기다리고 있던 형사 셋과 마주쳤다. 하수구의 사람 살점 때문이라 직감했다. “슬프고도 무서운 일”이라고 운을 뗐다.

수사반장 제이기 즉각 받아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범인은 이 놈이다. 육감이 팍 오자 바로 질렀다. “나머지 부분 어디 있어?” 엉겁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옷장에 있습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시체 동강이 플라스틱 가방 두개에 가득 들어 있었다. 주방 냄비 속에도 살점. 스튜나 카레를 만들었다고 했다. 찜으로도 먹었다고 했다. 천연덕스러웠다.

말수 적었고 일도 잘했다. 1972년, 이 스코틀랜드 출신 청년은 12년 군생활을 마감했다. 27세. 런던에 터를 잡았다. 런던경찰청 신임순경 모집에 합격해 경찰학교 졸업 후 순찰경관이 됐다. 원래 성격대로 군말 없이 성실했다.

비번 때는 동성애자 술집에서 시간 보냈다. 경찰은 놀 시간 적었다. 규율도 엄했다. 1년 하고 사직해 직업안정소에 취직했다.

호모섹스 성행한 군대에서 물들었다. 열다섯에 입대한 육군에서 homosex에 눈 뜨고 어울렸다. 한 하사관과는 오래 동안 관계를 맺었다. 그때 버릇 하나가 생겼다. 침대 머리말에 큰 거울 놨다. 거기 비친 모습 보며 섹스를 했다.

1975년, 30세. 길거리 폭력으로 곤경에 처한 노숙자 트윙클을 도와주고 동거를 시작했다. 집을 아늑하게 꾸몄다. 개와 고양이와 잉꼬를 길렀다. 뒤뜰을 가꿔 사과와 자두나무도 심었다. 동성애 연인 위해 정성을 다 했다.

1977년, 32세. 아뿔싸! 둘 사이엔 공통점이 없었다. 틈이 생겼다. 방을 따로 쓰게 됐다. 반짝이는 그 해 여름 떠나가고 말았다. 간간이 게이클럽에 가 욕구를 풀었다. 그게 유일한 바깥 세계와의 교류였다. 친구가 없었다.

출근하고 귀가하고, 내일을 기다리고 금요일에는 월요일을 기다렸다. 오직 나 혼자라는 외로움에 견디기 어려웠다.

1978년 12월30일. 크리스마스 연휴 엿새 내내 홀로 지냈다. 더 이상 고독 이길 재간이 없었다.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가지고 외출했다. 단골 게이 바에 가 위로받고 싶었다. 거기서 만났다. 꿈속에서 내내 그려왔던 내 이상의 소년과 함께 집으로 왔다. 술 마시고 즐겼다. 다음날 새벽 눈을 뜨니 옆에서 평화롭게 잠자는 얼굴을 보고 불안이 돌연 엄습했다. 날 밝으면 날 떠날 거 아닌가! 안 돼! 새해 첫날까지만이라도 내 곁에 있어야 해! 그렇게 하려면? 죽이는 방법 이외에 무엇이 있나? 죽은 자는 가지 못한다. 넥타이로 목을 졸랐다. 욕실로 운반해 몸을 깨끗이 씻기고 머리를 감겼다. 타월로 물기를 닦아냈다. 밤에는 꼭 껴안고 잤다.

1979년 1월1일. 죽은 연인에게 새 속옷과 새 양말, 겉옷도 입혔다. 밤에는 팬티까지 벗겨 애무했다. 다음 날 마루 밑에 시체를 숨기려 했다. 하지만 사후경직으로 실패해 벽에 기대어 놨다. 1월3일엔 경직이 풀려 마루 밑에 넣었다.

그리고 1일10일. 깨내서 목욕시키고 침대에 뉘었다. 흥분->발기->성욕 고조->자위->시체 위에 사정. 11일에는 거꾸로 매달아 놓고 자위->사정. 마루 밑에 다시 넣었다. 1979년 8월11일. 꺼내서 태웠다.

연속살인의 성공에 방심?

열여섯번째 시체처리가 미숙했다.

호모색스 상대는 16명. 다 죽였다. 시간(屍姦)도 했다. 시체 옆에서 자위하고 사정했다. 살을 발라 토막을 쳤다. 급히 치우려 하지 않았다. 부패하고 체액이 흐르면 닦아냈다.

1980년 12월. 그 동안 모아 둔 시체를 마당에서 태웠다. 동네 아이들 구경 와도 개의치 않았다. 축제 분위기였다.

피해자는 탈영병이나 노숙자, 마약 또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사회가 버린 사람이었다. 무전여행자도 있었다. 술 먹이고->즐기고->잠든 후 교살하거나 익사시켰다. 시체와 대화하며 자위하고 성교했다. 기르던 강아지에게 말 걸면서 저질렀다.

살인자에게 살인은 피해자에게 베푸는 자비였다. 구차하게 연명하는 삶의 짐을 덜어주는 행위였다.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고 스케치도 했다. 그런 생각에 대한 기록이었다. 체포됐을 때 한 말. “내 짐도 드디어 덜어주는구나”였다.

열다섯번의 살인과 연이은 성공. 발각과 체포 걱정 잊고 지냈다. 열여섯번째 피해자의 도려낸 살과 뼈를 하수구에 너무 많이 버려 막혔다. 배관공이 수리하다 발견해 길어진 꼬리가 밟혔다. 종신형.

유년기 역경과 할아버지 죽음이 가져온 호모 성향과 살인 습벽이 문제였다. 닐슨은 스코틀랜드 어부 가정에서 태어났다. 바다는 제 품에서 사는 사람을 종종 명부(冥府)로 데려간다. 운명과 미신을 믿게 만든다. 가난과 역경이 동거하는 생활이다. 탈출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버지는 어려서 도망가 얼굴조차 모른다.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자상하여 정이 붙었다. 그런데 고기잡이 나갔다 숨졌다. 닐슨 여섯 살 때였다.

주위에서는 할아버지가 멀리 가셨다 했다. 아침저녁으로 동네 어귀에 서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길 고대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실 분이 아냐’ 하면서. 여덟 살이 되어서야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다음부터 할아버지와 자신이 같이 익사하는 꿈을 수없이 꿨다.

할아버지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사랑은 근친상간으로 연결된다. 근친상간을 피하려면 상대가 여자여서는 안 된다. 남자여야 한다. 호모 정신구조의 형성이다.

같은 정신과정을 걸었다. 게이클럽에 출입했다. 같이 지내거나 동거하고 이별당하지 않으려고 죽이고, 죽이고서는 산 사람처럼 대했다.

현대과학은 뇌가 마음을 운영한다고 한다. 뇌에 이상이 발생하면 야릇한 짓을 한다. 정신의 병이다. 살해와 자살로 가는 이가 많다.

닐슨은 육군 취사요원이었다. 12년을 취사부서에서 근무했다. 칼질 훈련을 제대로 받았다.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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