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설국열차’ 1000만 관객 고지 오를까

봉준호 감독의 독보적 ‘브랜드 파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마의 1000만 고지를 넘을까. <7번방의 선물>에 이어 한국영화 사상 9번째로 ‘1000만 영화 클럽’ 멤버가 될 수 있을까. 개봉(7월31일) 7일째인 8월6일 오후 4시30분을 기해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400만 선을 돌파하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트랜스포머 3> <도둑들> <아이언맨 3>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이르기까지 역대 최고 흥행속도를 수립한 화제작들의 8일보다 하루 빠른 대기록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물론 두고 봐야 한다. 개봉 둘째, 셋째 주까지만 해도 파죽지세로 내달렸던 위 네 영화들 중에서도 <도둑들>만이 최종적으로 1000만 고지를 정복했을 따름이다. 일부 매체들로부터 “<설국열차>가 과연 10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을 받았을 때 그럴 거라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그 이유를 열거할 생각은 없다. 그 예상이 어긋날 경우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변명에 그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예측을 훨씬 웃도는 영화의 폭발적 흥행요인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상업적 예술’의 모범 사례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투자·배급사 CJ E&M 관계자는 “대한민국 최초로 진행되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괴물> <살인의 추억>?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에 대한 신뢰,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유명배우와 송강호, 고아성 등 국내 배우들의 연기호흡에 대한 호기심 등이 주효했다”고 흥행요인을 설명했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설득력 높은 견해다. 독과점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1000개를 상회하는 스크린 수, 영화의 그것과 비슷한 ‘양갱’을 시사회에서 나눠주는 등 독특한 마케팅 이벤트도 영화의 폭발적 흥행에 한 몫 했을 터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내가 특별히 강조하고픈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위에서 언급된 “…봉준호 감독에 대한 신뢰”, 달리 말해 봉준호 감독의 ‘브랜드파워’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대중 영화관객들은 관람 여부를 결정할 때, 감독 요인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다. 당장 문제를 내보자. 근 1년 새 1000만 이상을 끌어들인 세 초대박 영화들 즉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의 감독 이름을 대보라. 정답은 최동훈, 추창민, 이환경이다.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이라면 세 명 다는 고사하고 두 명, 아니 단 한 명도 제대로 대기 어려울 듯. 장편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전우치>에?이르기까지 연속 3안타를 날린 스타 감독 최동훈마저 그 이름만으로는 대중 관객들에게 각인돼 있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름 앞에는 대개 영화 타이틀이 따라야 “아, 그 감독”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 십상이다.

이름이 독립적으로 기억될 강우석, 강제규 감독 등도 <전설의 주먹>과 <마이 웨이>로 이름값에 부응하지 못하는, 흥행부진을 면치 못했다. 목하 봉준호 감독과 나란히 흥행과 비평 양 측면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감독인 박찬욱과 김지운도 미국에서 연출해 올해 개봉한 기대작 <스토커>와 <라스트 스탠드>로 대참패를 겪었다. 니콜 키드먼,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 월드 스타들이 출연했다는 사실 등을 감안하면 수모라 할 만한 바, 결국 감독의 명성이 박스 오피스에서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 점에서 봉준호의 브랜드파워는 단연 주목을 요한다.

전국 10만 가량에 지나지 않았던 <플란다스의 개>는 장편 데뷔작이었던 만큼 논외로 치자.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 걸작 스릴러 <살인의 추억>?대성공 이후 그는 줄곧 평단과 대중 양면에서 대한민국 최고 감독의 위상을 지켜왔다. <괴물>은 여전히 한국 영화 역대 박스 오피스 1위작이다. 기대에 현저히 못 미치는 성적을 보였던 <마더>도 300만 선을 넘었다. 그만큼 봉준호의 위상은 예외적이며 독보적이다.

과장이 아니라 한국, 아시아,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그 예를 찾기 어렵다. 한 나라 영화판 전체에서 흥행 정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열띤 비평적 성원을 받아온 감독은, 내가 알기론 없다. 당장 비견될 수 있는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도 비평적으로는, 봉 감독이 한국에서 받아온 정도의 지지를 받진 못했다.

흥행과 비평 한 손에 거머쥐어

봉준호의 브랜드 힘 못잖은, 아니 그 이상으로 결정적이라고 판단되는 <설국열차>의 흥행요인은 다름 아닌 스토리와 속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 플롯의 힘이다. 시사회에서 <설국열차>를 보고 나서 나는 어느 매체에 다음과 같은 단평을 제공했다. 별 다섯 개 만점에 4개 반을 부여하면서. “예술과 상업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며 작가적 주제를 잘 표현한 수작.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상업적 예술’의 모델로서 손색없다. <괴물>이나 <마더>를 능가하는 호평이다. 전체적 선호도·만족도 등에선 <살인의 추억>에 못 미치나, 그 동안 봉준호 감독이 추구해온 영화적 지향, 문제의식에선 그 걸작을 넘어선다.

감독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봉준호 그는 한결같이 인간세계의 시스템 문제를 극화하고, 그 시스템의 변혁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장르 영화라는 외피를 입으면서도, 장르 관습이나 제약에 안주하지 않고 체제 변화, 심지어는 전복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개인을 외면하거나 희생시키지 않았다. 늘 개인들의 사연을 통해 사회를 말했다. 봉준호를 세계의 숱한 감독들과 구분 짓는 주요 인자 중 하나다. 그 지점에서 <설국열차>는 봉준호 영화세계의 한 정점이자 새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처럼 주로 한국 관객들만이 아니라 아시아 및 서구 관객들까지 포용하려는 야심적 승부수다.

그렇기에 감독의 전작에서 구사됐던 유머나 디테일의 결여를 들어 <설국열차>를 향해 던지는 비판·비난은 편협한 단견이(라는 게 내 평가)다. 그 한국적, 달리 말해 지역적 맥락을 벗어나선 도저히 이해되기 쉽지 않을 유머나 곁가지를 <설국열차>처럼 거대한 담론과 주제를 표방한 대작에서 찾는다는 것, 그것은 연목구어 아닐까. 텍스트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거늘 말이다.

<설국열차>는 결국 체제 변화의 가능성을 통해 희망을 역설하는 스토리다. 그 스토리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속도감으로 2시간 여 동안 추동해간다. 그렇게 영화는 이 땅의 적잖은 대중 관객들과 전문가들을, 긍정 심리학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설파하는 ‘몰입(Flow)’ 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 아니겠는가. 크고 작은 불평, 불만 등의 와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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