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부산 찾은 명장 감독들 누구?
쿠엔틴 타란티노와 봉준호의 만남
아무래도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도, 10월3일 개막해 12일 막을 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후일담과 개인적 소회를 펼치지 않을 수 없을 성싶다. 올해는 그 간 활동해왔던 프로그래머로서가 아니라 BIFF 산하 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화제를 처음 치렀기에 그 함의가 더 남다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켓의 괄목할만한 성취를 상술할 마음은 없다. 그저 이 정도 요약만 밝히련다.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돼 적잖이 당혹스러울 지경이라고. 사실 그동안 아시아필름마켓은 일종의 ‘구색용’ 취급을 받아왔다. “미래가 없다!”는 등의 혹평을 수도 없이 들어왔는데, 올해는 그런 악평을 좀처럼 들을 수 없어 감사했다고. 놀라운 반전이 이뤄진 셈. 마켓은 말할 것 없고, 마켓 산하의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 북투필름 등 부대행사 전반에 걸쳐 기대 이상의 호응을 끌어냈다.
마켓 참가자 수만 해도 배지 등록 기준으로 2012년 1080명에서 1272명으로 16% 가량 늘었다. APM 미팅 건수도 433건에서 532건으로 99건 늘어났다. 영화의전당과 매한가지로 올해 3년째를 맞은 벡스코 시대가 정착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세일즈 부스, APM 미팅존 등 전시장 배열·디자인 등이 참가자들의 호감을 끌어냈다. 고질적 문제점이었던 와이파이망을 별도로 추가하고, 공기순환 등 마켓 환경을 개선했으며, 조도를 높이는 등 비즈니스 여건을 개선했다.
약속 어기던 ‘영화악동’의 파격 제안
마켓의 유의미한 성과와 함께 BIFF 2013의 최대 사건이자 수확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깜짝 방문일 것이다. 사실 BIFF는 그 동안 김동호 명예 집행위원장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필두로 세계적 명성의 이 ‘영화악동’을 공식 초청하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김동호 위원장이 몇 차례 구두 약속을 받아냈으나, 약속은 무위로 끝나기 일쑤였다. 헌데 영화제 초반, 느닷없이 타란티노 측에서 연락이 왔다. 조용히 BIFF를 찾아 그저 영화만 실컷 보고 가고 싶은데, 숙소와 통역, 그리고 배지를 제공해줄 수 있냐는 것.
BIFF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파격 제안이었다.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신 한 가지만 요청했다. 봉준호 감독과의 오픈 토크! 더 이상 멋질 수 없는 요청이었다. 그 요청을 타란티노 측에서 받아들일지 여부를 놓고 계속 연락이 오가는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배지 발급 외 아무런 조건 없이 방문하고, 오픈 토크도 하겠다는 것. 배우건 감독이건 국내외 여느 스타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소문난 영화광다운, 일대 파격적 결정이었다.
1994년 <펄프 픽션>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이래 줄곧 세계적 인기를 누려온 스타 감독의 비공식 방문은, 널리 알려진 그의 아시아영화를 향한 각별한 애정과 함께 BIFF는 물론 한국영화의 달라진 위상을 대변하는 사례로 손색 없다.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해보다 많은 국가대표급 스타 감독들이 BIFF를 찾았다.
한국부터 그렇다. 한국영화회고전을 통해 총 101편의 연출작 중 현재 상영 가능한 71편을 모두 소개하는 ‘전작전’을 연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아시아필름아카데미(AFA) 교장으로 참여해 ‘나의 인생, 나의 영화’ 마스터 클래스까지 한 이창동 감독,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선보인 <설국열차>의 감독 봉준호와 제작자 박찬욱, 그리고 “극장체인 CGV가 개발한 영사방식으로 극장의 전면 외 양 측면까지 활용, 270도 각도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X를 위한 세계 최초 단편영화 <더 엑스>의 김지운 감독, <뫼비우스>의 김기덕 감독 등 한국 대표 감독들이 대거 출동했다.
2013 칸 각본상 <천주정>의 지아장커, 2013 칸 심사위원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베니스 심사위원특별상 <떠돌이 개>의 차이밍량, 그리고 ‘영화감독 김동호의 첫 번째 단편영화 <주리>의 제작일지’인 52분짜리 다큐멘터리 <그의 미소>와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선정작 <대통령>으로 부산을 찾은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각각 중국·일본·대만·이란 대표 감독들이다.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사진>으로 2013 칸 주목할만한시선 상을 거머쥐었으며, 올 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리티 판 감독은 캄보디아 영화의 대표 선수다.
대표성이 더욱 돋보이는 감독들은 다음 네 명이다. 우선 ‘아일랜드 특별전: 더블리에서 할리우드’를 위해 온 짐 쉐리단과 닐 조단. 쉐리단 감독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나의 왼발>(1989)과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등을 만든 거장이다. 닐 조단은 오스카 각본상을 안은 <크라잉 게임>(1882)으로 세계 영화계에 충격을 주었고, 지금도 올드 영화 팬들 사이에서 폭 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명장 중 명장이다. 두 명장은 10월6일 함께 무대에 올라 핸드프린팅을 했다.
아모스 기타이는 칸 등 세계 굴지의 영화제를 통해 존재감을 입증해온 이스라엘 영화의 대표선수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중 영감을 받아 영화감독이 된 뒤 80편 넘는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작으로 <카도쉬>(1999) <이든>(2001) <약속의 땅>(2004) <디스인게이즈먼트>(2007) 등이 있다. 올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아나 아라비아>로 부산을 찾았다. “원 테이크로 80여 분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형식 실험이 돋보이는 수작이다.”(월드 시네마 프로그래머, 이수원).
대표작 <신의 간섭>으로 2002년 제5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굳힌 엘리아 술레이만. 이스라엘 태생이나 팔레스타인, 나아가 전 아랍권을 대표하는 세계적 감독이다. 그는 도하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압둘라지즈 알크하터와 함께 아랍권 영화를 홍보하고 BIFF와의 관계를 강화하기 방문했다고 한다. 이런 데도 2013 BIFF에 ‘대어’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