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아랍영화 현주소 한눈에 중동문화 선입견 부수기

<팩토리 걸>은 아랍의 대표영화제 ‘2013 두바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4 아랍영화제’ 국내 팬에 임팩트 선사

지난해에 이어 제2회 2014 아랍영화제가 열렸다.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6월19일부터 25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는 6월20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됐다. 아랍영화제는 ‘독창적인 아랍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행사’를 표방하며 올해로 7회를 맞이한 아랍문화제(5월21일~7월3일)의 일환으로 개최된 것이다. 한국-아랍소사이어티가 주최하는 아랍문화제에서는, 영화제 외에도 ‘살람 파야드 前 팔레스타인 총리 강연’·‘주한아랍외교단 특강’·‘Fluid FormⅡ: 아랍현대미술전’·‘사우디아라비아 수잔 바아길 사진전’·‘일반인을 위한 아랍알기 강좌’ 등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했다. 물론 무료.

이번 영화제에서는 장편 극영화 6편, 다큐멘터리 2편 등 총 8편이 선보였다. 아랍 22개국 중 레바논·모로코·아랍에미리트·알제리·요르단·이집트·카타르·쿠웨이트 등 8개국에서 온 문제작들이다. 2013 칸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에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2014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지명 등에 빛나는 <오마르>(하니 아부-아사드 감독, 아랍에미리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시아에서 첫선을 보이는 영화들. 세계의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 또는 수상을 통해 그 수준을 검증 받은 수작들이다.

당당한 삶 여공 성장기 ‘팩토리 걸’ 백미

영화보기가 독서 못잖은 간접경험의 장이며 가장 큰 재미가 세계각국의 변화무쌍한 영화를 감상하고 음미하는 것이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번 아랍영화제는 이른바 ‘아랍영화’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시키거나, 더러 품고 있을 수도 있을 선입견을 깨부수기에 모자람이 없(을 성싶)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하는, 영화제 공동주관사인 ‘백두대간’을 통해 구해 본 두편의 영화만보아도 이런 판단은 과장이 아니다. 개막작인 <팩토리 걸>(모하메드 칸·이집트)과, 8편 중 유일한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 <블라인드 인터섹션>(라라 사바·레바논)이 그들이다.

<팩토리 걸>은 아랍영화의 강국으로서 이집트영화의 ‘위용’-1908년 이래 만들어진 4천여편의 아랍영화 장·단편 중 4분의3 이상이 이집트영화다(www.wikipedia.org, Cinema of Egypt 참고)-을 증거하기에 손색없다. 동료 공장 노동자들과 중하층 지역에 거주하지만 또래 여성들은 흉내내기조차 힘든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스물 한 살 여직공 히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목할 만한 성장영화이자 멜로드라마다. 그녀가 새로 부임한 훈남 감독관 살라에게 빠져들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여간 흥미진진하지 않다. 히얌과 살라 간에 끝내는 이뤄지지 않는 멜로라인도 그렇지만, 감독관과 히얌을 포함한 십수 명의 여성들 사이에서 조성되는 관계망이나, 적잖이 무거운 플롯을 상쇄시키는 밝은 분위기의 미장센과 경쾌한 리듬의 극적 호흡, 발리우드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효과 등도 주목에 값한다. 특히 히얌의 홀로서기를 보여주며 끝맺음하는 결말부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축약적으로 제시하며 예상 이상의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팩토리 걸>은 명색이 영화평론가인 내게도 이집트 나아가 아랍영화의 (재)발견으로 다가선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여성의 권리는 고사하고 목숨까지도 하찮게 여기곤 한다는 아랍사회에서 고작 20대 초의 여성이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줄 알고, 자신의 떳떳함을 입증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용단을 감행하며, 신분이라는 장벽 등으로 인해 그 사랑이 성사 불가능해지자 그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다니, 그런 평가를 내린다 한들 과장은 아닐 터. 이집트영화에는 <알렉산드리아, 왜?>(1978)·<기억>(1982)·<알렉산드리아 여전히, 언제나>(1989) 3부작과 <알렉산드리아…뉴욕>(2004)에 이르는 ‘알렉산드리아’ 연작으로 유명한 유세프 샤힌만 있던 게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부끄러워도, 또 다른 명장인 70대 초반의 이 감독 모하메드 칸도 그동안 이집트영화의 어떤 위상을 줄곧 증거해왔다. 이 영화는 제10회 두바이국제영화제 최우수 아랍영화상과 여우주연상 등을 안았다.

<블라인드 인터섹션>의 한 장면. <블라인드 인터섹션>은 영화 속 세 주인공의 운명이 만들어낸 비극을 그린다.

‘블라인드 인터섹션’, 운명 실타래 정교하게 묘사

<블라인드 인터섹션>은 <팩토리 걸>과는 또 다른 아랍영화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영화제 소갯글이 더 이상 좋을 나위 없이 적절하니 인용해보자.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세 인물의 삶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교통사고로 부모님과 모든 걸 잃게 된 누르, 원하는 모든 걸 가졌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 인디아, 폭력적인 어머니에게서 학대받으며 살고 있는 12세 소년 마르완, 세 인물의 삶은 타인의 행동과 그 결과에 의해서 순식간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일직선적으로 전개되는 전통적 서사의 <팩토리 걸>과는 대조적으로 영화는 세가지 중심캐릭터를 축 삼아 에피소드적으로 진행된다. 내러티브 구성만이 아니라, 시청각적으로도 톤과 매너가 서구의 그 어떤 웰메이드 영화의 세련됨에 뒤지지 않는다. 인구 4백여만명에, 연간 제작 편수 2012년 7편, 2013년 15편에 지나지 않는 레바논 영화의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마르완 에피소드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 영화는 세상에 그런 어머니, 그런 모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은 근본적 의문을 던지게 한다. 그 점에서 영화는 한없이 폭력적이며, 이데올로기적·정치적이다. 제3회 말뫼아랍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 제39회 브뤼셀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은 그저 주어진 게 아닌 것이다.

이쯤 되면 나머지 영화들에 대해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듯. 제38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상영작인 <락 더 카스바>(라일라 마라크쉬·모로코), 제10회 암스테르담아랍영화제 상영작인 <증거>(아모르 하카르·알제리), 제9회 두바이국제영화제 상영작인 <모나리자의 미소>(파디 하다드·요르단)과 두 편의 다큐멘터리, 제3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사랑은 바다에서 나를 기다리고>(마이스 다르와자흐·카타르)와 제6회 이스마일리아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제9회 두바이국제영화제 무흐르아랍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지명된 <내 안의 아버지>(카림 구리·쿠웨이트)에 이르기까지….

때마침 한 편의 아랍영화가 6월19일 개봉했다. 이슬람율법에 의거해 영화제작과 상영, 음악, 무용 같은 문화활동이 금지돼 있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극장영화 <와즈다>(하이파 알 만수르)다. 영화는 열살 소녀 와즈다(와드 무함마드 분)의 이슬람율법 도전기다.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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