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보기] 한·중합작 ‘미스터고’ ‘이별계약’ 흥행성공 공식
아시아영화,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아라
최근 선보인 두 편의 화제작은 한·중 합작을 넘어, 합작 영화 자체의 어떤 가능성을 제시한다. 7월17일 개봉된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고>와 6월20일 첫 선을 보인 오기환 감독의 <이별계약>이 그 주인공이다.
<미스터고>는 본업인 서커스보다 야구에 걸출한 재능을 보이는 마흔 다섯 살 중국산 고릴라 링링, 그와 가족이나 다름없는 열다섯 살 소녀 서커스 단장 웨이웨이(쉬자오 분), 그리고 링링을 스카우트해 한국 프로야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거물’ 스포츠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분) 등 세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코믹 감동 드라마다. 1985년 출간돼 선풍적 인기를 일으켰던 허영만 원작만화 <제7구단>을 자유롭게 각색해 빚어냈다.
<이별계약>은 오기환 감독, 이정재와 이영애 주연의 <선물>을 역시 자유롭게 리메이크한 코믹 최루성 멜로드라마다. 5년 간의 ‘이별계약’을 맺는 커플 리싱(펑위옌 분)과 차오차오(바이바이허 분)의 사랑과 이별을 축으로 펼쳐진다.
사실 텍스트미학적으로 두 영화는 크고 작은 아쉬움을 드러낸다. <미스터고>는 스펙터클 층위에서는 수준급 성취를 자랑하나, 드라마 구축 및 안배에서 <오! 브라더스>부터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에 이르는 감독의 전작들에 다소 못 미친다. 상대적으로 성기다. 130여분의 러닝타임이 짧진 않아도, 혹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간 것 아닐까 싶은 의문마저 든다.
<이별계약>도 <선물>에 비해 지나치게 무난하며 통속적이다. 스토리의 보편성은 여전하나, <선물>의 ‘한방’이 부재한다. 반전의 임팩트도 견줄 바 못 된다. 리메이크임을 감안해도 둘 사이에 놓인 12년 여란 짧지 않은 시간이 무색하다. 중국에서의 기념비적 성공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서의 흥행실적이 저조하다 못해 언급조차 되기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위 두 영화는 향후의 합작 방향을 제시하는 성공적 사례로 손색 없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나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 등에서 드러나듯, 과거엔 우리 배우, 감독, 일부 스태프들이 중국 영화에 참여하거나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반면 이 두 영화는 투자부터 배급, 개봉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긴밀히 상호 협업하는 본격적 글로벌 프로젝트로 기획·진행됐다. “한·중 합작영화들이 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올 만도 하다.
<이별계약>은 아예 중국 대륙을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 영화는 대한민국 제1의 영화 투자·배급사인 CJ E&M이 기획·배급을 맡았건만 이곳에서는 고작 60개 스크린에서만, 그것도 교차상영 방식으로 선보였다. 개봉 첫날 3000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밖에 동원하지 못했다. 박스 오피스 9위에 오르더니 당장 다음 날부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 땅의 관객들에게는 처절하게 외면당한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보다 두 달 여 전인 4월 은 중국 최대 국영 배급사 차이나필름그룹에 <이별계약>의해 대대적으로 선보이며 중화권 관객을 사로잡았다. 개봉 첫날 1600만 위안(한화 약 29억 원)을 벌어들이며, 중국 역대 로맨틱 코미디 최대 흥행작 <실연 33일>의 1500만 위안을 넘어섰다. 제작비 3000만 위안을 단 이틀 만에 회수했다. 이후 5주 동안 1억9000만 위안을 벌었다. 한·중 합작영화 사상 최고액일 뿐 아니라 중국 로맨스 영화 중 8위의 대기록이다. 한국 콘텐츠 기획력·기술력이 중국의 자본·배급·유통력과 일궈낸 ‘사건’이었다. 오죽했으면 정상회담 차 중국에 머물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 문화산업 분야 성공사례 중 하나로서 <이별계약>을 들었겠는가.
<이별계약>의 기록적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합작 당사국 모두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어느 한 곳에서라도 확실한 수익 등 목표한 성과를 일궈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도하라는 것이다. 그 시도가 일대 모험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할리우드가 해를 거듭하며 해외시장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톰 크루즈,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윌 스미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브래드 피트 등 초특급 월드 스타들이 올 상반기에만 줄줄이 대한민국을 찾은 까닭도 그 때문 아니겠는가.
<미스터고>의 시도는 <이별계약>을 압도한다. 김용화 감독은 영화를 위해 제작사 텍스터스튜디오를 꾸렸다. 감당키 불가능한 거액을 요구하는 통에 외국의 시각효과 업체에 의뢰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바꿔, 국내 인력들을 모아 그 스튜디오에서 주인공 링링을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냈다. ‘4년여에 걸친 기획 및 기술 개발’ 외에도 ‘총 400여 명의 스태프들이 1년 이상의 후반 작업을 거쳐 완성’시킨 한국 최초의 주인공 디지털캐릭터다. 링링 등 영화에 등장하는 두 마리 고릴라의 털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디지털 털 제작 프로그램인 ‘젤로스 퍼(Zelos Fur)’를 개발했다. 덕분에 80만 개 이상의 털로 뒤덮인 링링의 몸과 표정을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미스터고>는 중국 3대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화이브라더스와 함께 제작비의 25%에 달하는 500만 달러를 투자받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스튜디오가 나서 중국 내에서 5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영화는 7월18일 중국과 싱가포르에서 선보인 데 이어, 8월에는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베트남, 몽골 등에서, 9월에는 필리핀, 중동 국가 등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물론 그 나라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미스터고>가 한국 안팎에서 거둘 최종 결실은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결실이 ‘역사적’일 것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른바 ‘K-Film’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것이라는 홍보자료의 캐치프레이즈가 과장이나 허풍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들의 시도에 적잖은 거품이 내재돼 있으며, 따라서 보다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런 비판은 그러나 또 다른 성격의 문제제기다.
중요한 건 위 두 영화의 시도와 성공이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열악한 산업환경 등으로 인해 아직 주목할 만한 산업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언제든 유의미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시도한다면 꿈은 이뤄진다. 그 말 자체는 진부하게 들릴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