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순의 초경의 뜰③] ‘로맨스 그레이’···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50대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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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유순 수필가] 몇년 전, 스캔들 쓰나미가?휘몰아친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보수집단을 대변하는 언론계 사람들과 문화·예술·정치·경제계 인사들의 명단이 비련의 여배우와 굴비 엮이듯 줄줄이 엮여서, 인터넷 누리꾼들의 입담 거리가 되었다.

자고로 먹는 문제와 남녀문제는 공자님도 못 말렸던 ‘대욕망’이란다. 아무리 예를 갖춘 선비라도 못 피해간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그 ‘대욕망’이라는 것이 동물적인 것에 그 바탕을 둔다는 것이다.

들판의 맹수는 오직 ‘먹이’와 ‘짝짓기’에 생을 건다. 동물사이의 위계질서, 권력의 서열도 결국 누가 먼저 먹이를 차지할 것이며. 누가 먼저 튼실한 암컷과 교미할 것인가를 정하는 수컷들의 싸움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들은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좀더 아름다운 짝을 위해 권력을 탐낸다.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일단 본질이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공자님은 나이 사십을 일컬어 유혹에 흔들림이 없는 불혹이요, 오십이면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이며, 육십이면 귀가 순하여 사람들의 말을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이순이라 하였다.

내 해석은 좀 다르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나이 사십이면 유혹에 잘 넘어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고, 오십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아야 패가망신 안 할 것이며, 육십이 되면 귀가 아이처럼 말랑말랑해져서 무슨 말이고 다 주워듣고 유아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니 자신을 더욱 점검하라는 교훈이 아닐까.

어찌됐든 불혹과 지천명, 이순을 향해가는 중년 남자들은 참 슬픈 족속이다. 오직 육신적 성공을 향해 치달아 사는 동안 그들은 너무 바쁘고 힘들었다.

한 눈 팔기엔, 세상이 그리 녹녹치 않아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가까이 할 틈마저 없었다. 오직 지위를 위해 ‘먹고’, 본능에 의해 ‘배설하며’ 살다가 문득, 어느 날, 자신을 뒤돌아본다.

머리는 하얘졌는데 아직 다리에 힘은 남아있고, 가슴은 휭 하니 뚫려있다. 그때서야 지고지순한 사랑, 포근한 사랑, 뻥 뚫린 가슴을 채워 줄 충만한 사랑을 찾아 가정 속의 가족을 돌아보니, 아뿔싸, 이미 그들은 ‘중년의 아빠’, ‘중년의 남편’ 없이도 충분히 잘 살 만큼 강인해져 있고 씩씩해져 있어서 끼어들 틈을 내주지 않는다,

밖으로만 도는 남편, 아버지를 포기한 지 오랜 데 이제 와서 웬 주착이냐며 오히려 불편해 한다.

그래서 잠 못 이루는 늦은 밤, 고요히 음악이 흐르는 럭셔리 바에서 향기로운 칵테일을 도란도란 마셔 줄 여자, ‘사랑하고 싶은 여자’에게 전화를 거는 거다.

그 아련한 순간의 황홀함은, 한번에 수억을 펑펑 써도 끝없이 솟아나는 화수분이 있다 한들, 손가락 하나로 몇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권력을 휘두른다 한들, 다 부질 없게 만든다.

그런데 그 짧은 달콤함이 인생 전체를 한 방에 훅 날려버리기도 한다는데 로맨스그레이의 함정이 있다.

로맨스그레이···.

얼마나 가슴 저리도록 슬픈 사랑 찾기인가.

누가 그 사랑에 돌을 던지랴.

‘아나마르테토스’

‘너희 중에 죄의 유혹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자는 돌로 치라’는 뜻이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던진 예수님의 돌직구다.

가슴 시리도록 가을바람이 청명하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고 한다. 가을 타는 남자들에게 하나님의 무한 사랑과 긍휼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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