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이 유치하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아름답게 떠오르는 추억은 유년의 뜰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그중에서도 어른들에게 떼를 쓰다시피 하여 즐겨 듣던 옛날이야기들은 아직도 그 줄거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이야기들 대부분이 조선 후기 야담 아니면 <춘향전>이니 <흥부전>이니 <장화홍련전>이니 <심청전>이니 하여 조선 후기 소설들을 요약한 것이었다. 그 옛날이야기들이야말로 내 유년의 뜰을 풍요롭게 가꾼 영양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해피 엔딩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세파에 시달리며 갖은 고생 끝에 결국은 아들딸 낳고 잘 살다가 죽었다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야기를 끝까지 듣다가 마지막에 주인공이 잘 살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한숨을 푹 쉬며 안도하고 단잠에 빠져들면 나 또한 꿈나라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또 하나의 인생을 살았다.

이 달콤한 추억의 해피 엔딩에 대한 환상은 상급 학교에 가면서 무참하게 깨져 나갔다. 현대 소설들은 해피 엔딩 하는 일이 드물고 더구나 서구의 문학 작품들은 비극적인 결말로 가득했다. 설사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나 코미디가 좌충우돌 과정을 거쳐 결국 결혼에 이르는 해피 엔딩으로 맺을지라도 그 뒤의 파란만장한 삶이 기다리고 있어서 잘 살다가 죽었다는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등 브론테 자매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는 그 비장미에 고통스러웠다. 그리스 신화의 비극에 뿌리를 둔 서구 문학의 특징은 불행한 결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비극, 아들이 어미를 죽이는 비극, 어머니를 사랑한 아들의 비극 등, 비극으로 시작하여 비극으로 끝나는 서양 고대의 비극들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이 쓰리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프랑스의 장 라신이 <페드라>의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과연 서구의 비극은 교훈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일까?

대학의 문학 평론 강의에서 우리 고전 소설의 특징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과 해피 엔딩을 들고, 이야말로 전근대적이고 유치하다는 해석에는 아연했다.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권선징악, 서로 돕고 살아가는 상부상조의 정신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 사회에서 변치 않는 미덕이라고 믿고 있던 나에게 충격이었다. 서구적 잣대를 어디에나 들이대며 스스로를 비하하던 풍조가 급기야 문학 평론의 장에도 파고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고통스러운 바다’ 고해(苦海)로 표현되는 세상살이에서 끊임없이 덮쳐 오는 파도처럼 갖은 환난과 걱정거리를 이겨 내고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두거나 가정의 평화를 이루어 낸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그 나름의 영웅들이므로 행복한 결말은 당연한 보상이 아닌가 싶은데 유치하다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 시대를 상장하는 캐릭터들이고 그 작품들이 가진 의미도 그 시대를 표현하는 것일지니 결국 현대 문학 입장에서 바라본 조선 시대는 유치하다는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조선은 중기에 40여 년 간격으로 두 번의 전쟁을 겪었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은 명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전쟁터로 한 당시의 세계 대전이었다.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2개월간의 병자호란은 짧은 전쟁이었지만 명?청이 교체되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바꿔 놓은 결정적인 전쟁이었다.

일본은 통일 전쟁 끝에 통일을 이루고 내전을 종식하자 비대해진 군사력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임진왜란은 그 돌파구이자 대륙을 향한 오랜 숙원을 풀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었다. 당시 동아시아의 주도국인 명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침략했다. 임진왜란이라는 장기간의 전쟁으로 조선은 하부 구조가 무너져 피폐해졌다. 그럼에도 전쟁이 끝나자 침략해 온 적을 국토에서 완전히 몰아냈다는 승전 의식은 조선 사회의 자부심이 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 사회에는 전쟁 영웅들의 무용담이 주제가 된 영웅 소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왜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기도 전에 일어난 1636년의 병자호란은 불과 2개월간의 전쟁이었지만 조선 사회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국제의 상징인 국왕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에 내려와 청 태종에게 항복 문서를 바치고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명의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 만주에서 힘을 기른 여진족이 국호를 청으로 정하고 명나라와 동서진영을 구축하던 조선을 선제공격했던 것이다.

이후 조선 후기 사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국가 사회를 재건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우선 상처받은 국민적 자부심을 회복하는 일에 전력투구했다. 두 번의 전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은 조선 사회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예를 정치 기준으로 하는 예치를 지향하고 청나라를 쳐 복수설치(復?雪恥)하겠다는 북벌론(北伐論)을 국가 대의로 설정했다.

임진왜란 때 구원군을 파견해 준 명나라의 신종 황제와 마지막 황제인 의종을 제사 지내는 것으로 국제간에도 의리를 지킨다는 조선의 입장을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으로 정리하고, 조선이야말로 군사 대국 청이 중원의 주인이 된 현실에서 명나라 유교 문화를 계승한 동아시아 문화 중심국임을 자처했다. 조선이 바로 중화라는 조선 중화주의의 천명이었다. 이후 조선사회는 내치에 주력해 조선 고유문화를 이루어 냈다.

두 번 세계 대전을 겪은 동아시아 세계는 자연히 평화를 갈구하게 되었다. 당대 동아시아의 맹주가 된 청나라는 물론이려니와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파도가 몰아치기까지 2세기 이상 동아시아 평화는 어쩌면 동아시아를 휩쓴 두 번의 전쟁이 가져다준 반대급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유교적 세계관 속에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꿈꾸던 조선 후기에 농촌 공동체 사회를 배경으로 권선징악과 해피 엔딩을 특징으로 하는 문학 작품들이 많이 나온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 사회는 평화와 안정의 기조 위에 모든 구성원들은 비록 신분적 차별성은 있지만 크게 볼 때는 더불어 함께하는 대동 사회를 꿈꾸었다. 평화는 국가 간은 물론 개인의 삶에도 최고 가치가 되었다. 문학 작품들이 한결같이 행복한 결말을 선택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반면거울은 현재 우리 사극에서 다루는 주제 의식에서 분명해진다. 조선 왕조를 건국에서부터 시간에 따라 다루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역사 드라마도 세종대의 태평성대는 건너뛰고 수양 대군의 시대로 가고 만다. 형제간에 피를 묻힌 수양 대군의 왕위 찬탈은 왕권 강화를 위한 대망으로 미화되고 사육신의 죽음 등 갈등 구도를 만들어야 흥미진진하다고 한다. 전쟁으로 얼룩지고 갈등으로 왜곡된 채 진보와 발전을 최고 가치로 삼는 현대인들에게 평화와 안정은 너무나 낯설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태평성대는 너무 싱거워서 재미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서구의 비극이 교훈을 위해서 생겨났다면 권선징악과 해피 엔딩을 특징으로 하는 우리 고전 소설 역시 교훈적 의미가 강하다. 똑같이 교훈적이면서도 이렇게 다른 것은 결국 문화의 차이이자 세계관이나 가치관의 차이일 터이다. 서구의 비극이 원죄 의식과 천국은 저세상에만 있다고 믿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표출이라면,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는 유교의 현세적 입장이 해피 엔딩의 동인이 아닐까?

이제 세계는 평화와 안정을 갈구하고 있다. 전쟁으로 지고 새는 제국주의에 역겨워하고 경쟁의 논리에도 지쳐 있다. 평화의 시대를 위해 재미는 덜하더라도 해피 엔딩의 읽을거리와 영상물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고대한다. 비록 촌스럽더라도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죽었다는 행복한 결말의 드라마를 보고 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미소 지으며 잠자리에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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