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칭호가 얼마나 소중한데···
18세기 말 조선 사회 격변기에 처해 있던 정조는 “문체는 세도(世道 :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를 반영한다”며 문체반정을 시도했다. 당대의 소설류인 패관 소품과 새롭게 등장한 신체문(新身體文)의 영향으로 문체가 타락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순정한 문체로의 반정을 꾀하며 세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 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체보다 앞서 말의 왜곡과 그에 따른 전통적 가치의 추락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는 전통 시대에서 근대로의 자연스러운 진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통이 왜곡되거나 평가 절하되어 자기 비하 의식까지 형성되었다. 그 결과 우리의 정체성마저 손상받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현상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되지만 중요한 전통용어가 왜곡되어 사용되는 것도 그 징후 중 하나다.
전통 시대 핵심 가치였던 의리(義理)는 깡패 용어로, 명분(名分)은 핑계로 전락한 느낌이 짙다. 사기(士氣)는 군대 용어로 전환되고, 시비(是非)는 싸움으로 변질됐으며, 선생(先生)은 길 가는 사람의 호칭이 되어 버렸다.
조선 시대는 의리와 명분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인 의리와 이름에 걸맞은 분수라 할 명분은 모든 일의 기준이자 잣대였다. 의리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의 범주에서 탈락시켜 금수로 간주되었다. 사람이면 의리를 알아야 하고 또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 명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사대부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
<왕의 남자>의 주인공인 광대 공길이 연산군에게 ‘군군(君君 :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신(臣臣 :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을 역설한 사실이 실록에 있다. 우리가 조선 시대의 천인 신분으로 알고 있는 광대도 임금과 신하의 명분을 따지고 바른 말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전통은 지금 우리의 삶에 맥맥하게 살아남아 있음에도 가끔 핑곗거리를 찾으면서 “무슨 명분을 만들어 보라”는 말을 한다.
사기는 원래 선비의 기개를 뜻한다. 선비의 시대인 조선 시대에 선비의 기개는 나라를 지키는 원기(元氣)라고도 했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사기가 떨어지면 나라의 기운이 스러지는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현대 사회에서 사기를 지식인의 기개로 쓰는 일은 없다. 다만 군대에서 사기는 중요한 용어로 쓰이고 있으니, 이는 가치의 전도라기보다는 쓰임새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비는 잘잘못을 가리는 행위다. 시비를 잘 가려야 사리에 밝은 사람으로 사철하다 평가받고 경우가 밝은 사람으로 대접 받았다. 잘잘못을 판단하는 잣대는 올바르고 분명한 가치관에서 비롯되므로 결국 인간의 품질 문제로 귀착되었다. 이제 시비는 싸움으로 변질되었으니 “웬 시비야?”하면 이는 “왜 싸움을 거느냐?”로 되었다.
선생은 전통 시대 존경스러운 스승에게만 쓰던 용어다. 인생의 사표가 되고 학문적 정통성의 매개가 되어 줄 뿐 아니라 학문적 난제를 깨우쳐 준 스승만이 선생으로 존칭되었다. 평생 선생 없이 홀로 선 학자도 많고 운이 좋은 경우 선생을 둘씩 섬긴 사람도 있었다. 천자문이나 기본 교과서를 가르친 이는 선생의 반열에 든 경우가 드물다. 학문적 도통(道統)에 관련되고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학문적 성장 과정의 과제를 깨우쳐 준 사람이 선생이기 때문에 하루 사사하고 선생으로 받든 예도 있다.
이제 선생은 길 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쓰는 통칭어가 되었다. 대학에서는 교수님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 부르면 기분 나빠하는 교수도 있다니 선생이란 칭호의 추락 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기틀부터 세우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고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모름지기 말은 정확하고 정직하게 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용어 역시 제자리를 찾아 써야 작금의 혼란이 조금이나마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정명(正名 : 이름을 바르게 함) 사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