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한국적 리더십의 전형

지금 우리 사회는 리더십의 실종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리더십인가에 대한 논의조차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의 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절실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세월 우리는 어떤 문제의 해결에서 외국의 예를 드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여겼다. 물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밖의 모범 사례들을 모아야겠지만, 그보다 앞서서 해야 할 작업은 우리 역사와 전통에서 긍정적인 역할 모델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한 예를 우리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음에도 때로는 무지한 까닭으로, 때로는 게으름 때문에, 때로는 자기 비하 의식에 기인한 열등감 탓에 그러한 노력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해오지 않았나 싶다.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조선 시대 지식인인 선비와 그들이 갖고 있던 선비 정신이다.

선비 정신에 대한 외면은 제국주의적 식민사관과 민중사관의 흐름을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학계의 현실이 그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국주의와 정반대라 할 수 있는 문치주의 시대인 조선의 선비는 한국적 리더십의 전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역할 모델로 재조명이 필요한 바람직한 역사 전통이다.

선비란 고품격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지식인을 말한다. 그 특징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맑음의 미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지향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어려서부터 철저한 인성 교육을 받고 학문을 연마하는 ‘수기’의 단계를 거쳐 완성된 인격체에 이르러야 남을 다스리는 ‘치인’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 여기서 치인이란 권력 개념이라기보다 봉사 개념에 가깝다. 수기의 단계에선 사(士)이고 치인의 단계로 나가면 대부(大夫)이므로 사대부(士大夫)로 규정되었다.

선비는 지연이나 혈연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능력과 인격적 완성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였다. 선비가 조선 시대 지식인의 대명사일진대, 결국 조선 시대에 와서 우리 사회는 혈연보다 학문적 능력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음을 뜻한다.

지적 능력이 출세의 지름길이 되는 것은 동서고금에 다를 것이 없지만, 서양의 지식인이 권력자의 참모 역할에 그친 데 비해, 동양의 지식인들은 그들 자신이 사회를 이끌어 간 주체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의 지식인상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서양의 지식인들이 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그 앎을 직접 실현 못하는 한계인이기에 논리에만 매달리고 냉소적인 데 반해, 동양의 지식인은 자신들의 학적·지적 능력을 국가 사회에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어 더 진지하고 적극적이지 않았나 싶다. 지식의 많고 적음보다 실천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었던 점도 주목할 일이다.

선비의 배움은 학문과 예술을 일치시키려는 학예일치(學藝一致)를 추구했으니 전공 필수로 문학·역사·철학의 문·사·철을, 교양 필수로 시와 글씨, 그림의 시·서·화를 연마했다. 전자를 통해 이성 훈련을, 후자를 통해 감성 훈련을 했다. 이성 훈련은 의리(義理)의 구현으로, 감성 훈련은 인정(人情)의 구현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의리와 인정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고, 선비는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조화시킬 수 있는 인간형을 말했다.

그리하여 선비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서릿발 같은 기개와 꼿꼿한 지조로 외경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어려운 사람이나 고통 받는 이를 위해서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합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전인적 이상형을 설정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의 극대화를 위해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사적인 일을 뒤로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와 공평무사(公平無私)를 생활신조로 삼았고 최종적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하고자 했다.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니 이기적인 욕망을 이겨 내고 타인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확장하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러우나 내적인 강인함을 간직하려는 외유내강(外柔內剛), 청빈과 검약을 생활신조로 삼고 자신에게는 박하고 남에게는 후하게 하는 박기후인(薄己厚人),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부추겨 주는 억강부약(抑强扶弱), 모든 구성원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려는 공생공존의 정신, 옳은 명분은 반드시 지키고 명분에 맞지 않는 일에 함부로 뛰어들어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명분주의 등 선비가 추구하던 생활 태도와 가치들은 오늘날 지식인 사회에서조차 외면당하고 퇴색했다.

특히 선비들의 청빈 정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서릿발 같은 기개, 일관된 지조 지킴과 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진실정과 엄숙주의, 그 속에 간직한 유머와 여유로움, 탁월한 자기 제어력,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는 생활 태도 등 파고들면 들수록 그 세계는 새롭고 맑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인정과 의리를 중심축으로 삼은 선비의 삶과 선비 정신은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주는 경종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전통 시대 지식인보다 그 역할과 영향력이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이끈 사회 주체로서 진지하게 이상을 추구하며 학문과 행동을 일치시켜 갔던 선비 전통을 가진 국민 정서는 아직도 선비를 그리워하고 있다. 현재의 학자들은 정계에 나가도 전문 지식을 빌려 주는 참모 역할 밖에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에도 일반 대중은 오늘의 선비라 할 지식인에게 가치 규범을 세우고 시비 판단의 잣대가 되며 사회의 소금이 되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선비다운 지식인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적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선비다운 선비는 되지 못하더라도 지식인에게 주어진 책무는 여전히 막중하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도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시대적 책무를 다한 집단은 지식인 그룹이었다. 한국의 지식인이라면 선비를 전범으로 삼아 학문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학행일치 정신으로 실천하는 한국적 리더십의 전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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