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문화의 필요성

“들국화 필 무렵에 가득 담갔던 김치를
아카시아 필 무렵에 다 먹어 버렸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있던 시구인데 가끔 생각난다. 처음엔 가을날 들국화가 피거나 무르익은 봄날 아카시아 꽃이 필 때만 생각나서 계절을 노래한 시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시가 은연중에 우리의 저장 문화를 은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농경 사회이고 저장 문화가 발달했다. 그래서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곡식을 저장했을 뿐만 아니라 밥에 어울리는 반찬으로 여러 가지 김치를 담가 땅에 묻어 놓고 겨우내 그리고 봄까지 먹었기에 이런 시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이런 문화 습관은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재벌들도 그동안 팽창과 축적에만 관심을 쏟은 것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정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정경유착의 관계를 맺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치의 계절이 되면 경제인들이 심심찮게 정치권에 대해 과거와 다르게 처신하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눈치작전을 접고 분명한 어조로 자기 소신을 밝히는 것이 돋보인다. 더는 명분 없는 정치 자금을 낼 수 없다던가, 시장 경제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재계가 지지하겠다는 언급도 보인다. 아울러 경제인의 도덕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경제계의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재벌이나 기업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개별적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기업인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제 기업은 지금까지 사회에 이바지한 부분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지향성을 가져야 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

전통 시대의 직업적 위계가 사·농·공·상이었다는 사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사회의 지도 이념은 유학이었고 자급자족하는 농경 사회였기에 유학을 공부해 사회를 이끌었던 지식인인 사(士), 즉 선비는 선비 정신으로 무장하고 투철한 자기 인식과 실천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했다. 농민은 생산 담당자로서 ‘농자(農者)는 천하의 대본(大本)’이라는 것이 기본 인식이었다.

따라서 상공업이 주요 기간산업이 된 현대 사회에서 상공인이 대접받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현재는 직업의 위계질서에서 상공인이 차지하는 위상이 가장 높다. 그래서 상공인 단체나 경제인 연합회는 때로 정치 집단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상공인 출신 정치인도 많다. 이렇게 사회의 주축이 된 상공인들이 그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구실을 하고, 기업이 그 축적된 자본을 사회에 환원하고 이바지한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 시대에는 지방 곳곳에 산재했던 만석꾼·천석꾼이 집에 과객들의 무료 숙식을 위한 행랑을 항상 개방하여 사회봉사를 했다. 김삿갓이 죽장에 삿갓 쓰고 삼천리강산을 방랑할 수 있었던 것도 열두 대문 문간방에서 무료 숙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풍토가 사랑방 문화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이 대가들은 거의 사대부 양반집이었고, 그 재원이 농사에 있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통 시대의 사농(士農)에 대체된 현대 상공인의 기업들은 하루바삐 기업 문화의 꽃을 피울 준비를 해야 한다. 기업의 자금력이 있어야 하는 일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우선 문화재로 눈을 돌려 보자. 일제 강점기에 훼철(毁撤)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왕궁이나 행궁, 왕릉 등 왕실 관계 문화재는 물론이고 서원이나 향교 등도 헐리거나 경역이 축소되어 있다.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호 구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유지를 사들여야 한다.

전통 시대 그림물감인 석채 등 자연 물감이 거의 사라져 일본이나 독일에서 사다 쓰고 있다. 전통 그림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원료를 채취하고 재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문화재를 수리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러한 일을 국가 기관에만 맡겨 놓아서는 그 예산 규모로 보아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기업들이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선다면 기업 문화는 꽃을 피워 머지않아 열매도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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