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영화 ‘윈터 슬립’ 칸 황금종려상 수상
<전찬일의 칸 결산>
터키 누리 빌제 세일란의 ‘윈터 슬립’ 제67회 칸 황금종려상 수상
터키 영화, 1982년 일마즈 귀니 ‘욜’ 이후 사상 두 번째 영예
안배의 미학 혹은 구색 맞추기…
제67회 칸영화제(5월 14일∼25일)의 최종 승자는 결국 터키의 누리 빌제 세일란 감독이었다. <우작>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로 2003년과 2011년에 심사위원대상 등을 안았던, 터기 영화계의 보물 세일란 감독이 <윈터 슬립>으로 생애 최초의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터키 영화의 칸 정복은 1982년 일마즈 귀니의 <욜> 이후 사상 두 번째. 그로써 무관에 그친 일본 가와세 나오미의 <스틸 더 워터>와 더불어 총 18편의 경쟁작 중 두 편에 지나지 않았던 아시아 영화가, 강세를 보였던 유럽과 미주 영화를 제치고 칸 최고 영예를 차지했다.
세일란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올해가 터키 영화 탄생 1백 주년을 맞이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큰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심사위원 등에게 감사를 전하며, 터키의 젊은이들과 올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상을 바쳤다. 시상은 배우 우마 써먼과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함께 했다.
<윈터 슬립>은 이스탄불의 번잡한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유산으로 받은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의 외딴 작은 호텔을 운영하며 ‘연극의 역사’를 집필하려는 전직 연극배우를 축으로 펼쳐지는, 3시간 16분짜리 휴먼 드라마다. 최근에 이혼한 냉소적인 그의 누나, 언뜻 별 다른 문제가 없는 듯 보이나 자선 문제를 둘러싸고 결정적 균열을 드러내는 딸 또래의 아내, 그리고 세 중심인물들 주변의 몇몇 조연적 인물들이 에워싸고 있다. 영화는 개막 3일째 공식 선보이며 황금종려상 최유력 후보로 부상했다. 칸 데일리 스크린 인터내셔널 10인 평자들로부터 종합 평균 평점 3.4점(4점 만점)을 득하며, 좀처럼 접하기 힘든 찬사들을 끌어냈다.
<스크린 코멘트>의 한 기자는 “세일란이 기적에 가까운 성취를 일궈냈다”며 극찬했다. 뛰어난 리듬을 지닌 최상의 영화를 집필·연출했으며, 내러티브가 진행되면서 그 성격들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하도 흥미로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캐릭터들로 영화를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전작들에서처럼, 아나톨리아 산악 지역의 광활함과 변모하는 캐릭터들의 내밀함 간의 대조를 잘 보여주면서 말이다. 기자는 “올 경쟁 라인업에서 <윈터 슬립>에 대적할 상대를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데에 내기를 걸겠다”고 큰 소리 치며 리뷰를 마쳤는데, 그 내기가 적중했다.
하지만 <윈터 슬립>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낙관할 수는 없었다. 까다롭고 인색하기로 악명 높은 칸 현지 평자들이 호의적 평가를 내린 영화들이 유난히 많아서였다. <윈터 슬립>에 4점 만점을 준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또 다른 기자도, 23일 경쟁작 가운데 마지막으로 선보인 러시아 안드레이 즈비아진체프 감독?<리턴>으로 2003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최우수데뷔작품상(미래의 사자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의 <리바이어던>이 그 주인공이 되리라 대다수가 기대했는데, 각본상에 그쳤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빈말이 아니라, 올해로 17번째인 칸 경험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평이 많았다. 제인 캠피온을 수장으로 하는 9인 심사위원단 중 5명이 배우(한국 전도연, 미국 윌렘 데포, 프랑스 카롤 부케, 멕시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이란 레일라 하타미)인지라, 감독에 비해 느린 호흡의 긴 영화를 보는 게 상대적으로 덜 익숙할 그들에게는 <윈터 슬립> 같은 긴 영화가 적잖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나아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이기도 했다. 기우요 오판이었다.
<윈터 슬립>의 수상이 절반은 예상대로요 절반은 의외라면, 이탈리아 알리스 로바하 감독의 <더 원더즈>가 2등 상 격인 심사위원 대상을 가져간 것은 의외로 비칠 수 있다. 영화는 다른 화제작들에 가려 별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게 사실이다. 위 스크린 기자는, 1993년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와 황금종려상을 공동으로 가져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이 심사위원장으로서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여성 감독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독려하리란 예측이 많았는바, 그 예측대로 됐다고 암시까지 했다. 프랑스인으로만 구성된 르 필름 프랑세 15인 평자 중 13명으로부터 종합 평균 1.1점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허나 정작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는 4점 만점을 줬으며, 평균 2.6점의 호평을 받은 데 미치면 그 암시는 설득력을 잃는다. “그 간 보아온 여느 이탈리아 영화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색깔, 다른 개성의 영화는 민족지적 색채가 짙은 주목할 만한 성장 영화”로서 손색없다. 현대 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인 노거장 장 뤽 고다르의 <언어여 안녕>과 나란히 심사위원상을 같이 받은, 캐나다의 스물다섯 살 청년 감독 자비에 돌란의 <마미>와 더불어 영화는 “월드 시네마에서 독창적인 새 목소리의 출현을 확인시켜줬다”는 위 기자의 부연이 외려 설득력 있게 다가선다.
3등 상인 감독상이 미국 베넷 밀러 감독의 <폭스캐처>에, 여자 연기상이 캐나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맵스 투 더 스타즈>의 줄리안 무어에, 남자 연기상이 마이크 리 감독의 <미스터 터너>의 티모시 스펄에 안겼다는 데에 이르면 2014년 칸 심사위원들의 선택은, 좋게 말하면 가히 ‘안배의 미학’이며, 나쁘게 말하면 ‘구색 맞추기’이라 총평할 만하다. 아시아, 유럽, 미·영 등 영어권, 러시아까지,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출신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의 <팀북투> 정도만 빼고는 초청 경쟁작들의 거의 모든 지역을 총 망라해 상을 배분한 것.
경쟁 부문에 초청된 두 명의 여성 감독 중 한 명에게 심사위원대상을 안긴 것도 그렇지만, 80대 중반의 노장과 20대 중반의 신성에게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안긴 것도 절묘한 안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구색 맞추기로 볼 수도 있을 테고. 고다르의 영화는, 영화역사에서 누리고 있는 감독의 위상이나 영화의 성격 등에서 여타 경쟁작들과는 비교 불가능한 영화 미학·예술적 차별성을 띠기에 하는 말이다. 그 선택을 안배로 볼지 구색용으로 볼지는 물론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당연히 이변도 없지 않다. 일찌감치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로까지 거론된 <팀북투>와, 칸 현지 평자들로부터 가장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다르넨 형제의 <투 데이즈 원 나잇>이 빈손으로 돌아간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이래저래 2014 칸은 그 어느 해 못잖은 흥미진진한 과정과 결과를 남기고 역사의 저 편으로 넘어갔다.
칸/전찬일 아시아엔 칼럼니스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