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간다’ ‘도희야’ 칸서 뜨거운 호평

<전찬일의 칸 통신 1>

2억1300만명으로 연 관객수 세계 5위, 14억200만 달러로(극장 기준) 총 매출액 세계 7위 등의 기록 따위는 아랑곳없이, 한국 영화는 과연 지나친 상업화, 빈익빈부익부 등으로 인해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 우리 영화가 2년 연속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지 못하자 전격 제기되고 있는 진단이다.

그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이 자리서 밝히진 않으련다. 제67회 칸영화제 다른 섹션에 초청된 두 편의 한국영화가 선보이면서, 그 진단을 무색케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개막 5일째인 18일(현지시간) 병행 섹션인 감독주간에서 선보인 김성훈 감독, 이선균 조진웅 주연의 <끝까지 간다>와, 19일 또 다른 공식 세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선보인 신예 정주리 감독, 배두나 김새롬 송새벽 주연의 <도희야>가 두 주인공이다.

오는 29일(한국시간) 국내 개봉되는 <끝까지 간다>는 우연히 저지른 자동차 사고로 인해 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리고 그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건 안간힘을 쓰는 현직 형사 고건수(이선균 분)를 축으로 전개되는 액션 경찰범죄물이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하등 새로울 게 없다. 크고 작은 기시감들이 영화를 관류한다. 하지만 일련의 영화적 덕목들로 그 기시감들이 흠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완급 조절 빼어나고 설득력 높은 액션

무엇보다 극적 완급 조절이 빼어나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닫는 드라마와, 그 드라마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설득력 높은 액션,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 등을 뒤섞는 감독의 연출력이 일품이다. 8년 전 장편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별 다른 인상을 전하지 못한 감독의 그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솜씨를 뽐낸다. 더러는 보다 상세한 내러티브 장치로 플롯의 개연성을 강화시켰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나 그 아쉬움도 위의 덕들로 보완된다.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작지 않다. 그간의 섬세한 이미지를 넘어 액션배우로서의 가능성까지 입증한 이선균도 그렇지만, 영화가 3분의 1쯤 지나 등장하는 악당 박창민 역 조진웅의 연기가 압권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양적 비중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건수의 동료 최형사 역 정만식이나, 반장 역 신정근 등 조연들도 주연들을 돋보이게 하면서 제몫을 다한다. 극적 호흡을 적절히 리드할 줄 아는 목영진의 음악 등 사운드 연출도 효과 만점이다. 그만큼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것이다.

감독과 제작자 등이 참석한 영화 상영 후 반응은 ‘폭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몇 분 간 지속된 박수갈채야 의례적 호응이라 해도, 박수와 함께 터져 나온 환호성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대호응이었다. 칸 데일리들의 리뷰들도 영화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가령 올 칸이 이례적으로 한국영화에 인색했다는 할리우드 리포트 기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 애드리안 라인의 <위험한 정사>를 거론하면서 “<끝까지 간다>가 마스터클래스급 서스펜스를 제공한다”고 평했다. 장르 스릴러이면서도, “영리한 플롯 뒤틀기, 어두운 유머, 그리고 고광택 비주얼로 가득한 최상의 사례”라는 것.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기자의 평가도 그 못지않다.

22일 개봉되는 <도희야>는,<끝까지 간다>와는 또 다른 성격의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수작 휴먼드라마다. “외딴 바닷가 마을, 친 엄마가 도망간 후 의붓아버지 용하와 할머니로부터 학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14살 소녀 도희와, “도희 앞에 또 다른 상처를 안고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돼 나타난 영남, 두 여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회성 관계의 드라마다. 무엇보다 30대 중반의 여성 신예 감독이 제시하는 ‘유사가족’ 내지 ‘여성연대’의 가능성이 크고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감독·주연 배우들에게 아낌없는 갈채

감독은 그런 유의 영화들이 빠져들기 십상인 도식적 과정이나 결말로 흐르거나 치닫지 않는다. 가해와 피해의 구도마저도 일방적이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복합성을 던지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 점에서 피해자임이 분명한 도희와 영남의 최종 선택들은 얼얼함을 넘어 큰 충격과 여운을 선사한다. 세 주연 연기자의 열연이 영화의 강력한 임팩트를 가능케 했음은 두 말할 나위없다. 배두나는 캐릭터 연기자로서 최상의 감흥을 선사한다. 김새롬은 소녀와 여인 사이의 도희의 현현이라 할만하다. 송새벽도 그간의 도식적 연기와는 다른, 변신을 보여준다.

칸 현지 호응도,<끝까지 간다>의 폭발성엔 다소 못 미쳐도 영화의 진지함에 걸맞는 진지한 환대가 쏟아졌다. 감독은 물론 그와 함께한 세 주연배우들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상영 전 레드 카펫과 무대인사에서나 상영 후 대응에서 <도희야>의 주인공들은 준비된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성숙함은 그냥 성취된 것이 아니었다. 이만하면 그저 칸 경쟁작 부재를 들어, 한국영화의 위기 운운이 무리 아닐까?

한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창감독, 류승룡 이진욱 유승준 김성령 주연의 <표적>은 22일(엄밀히는 23일) 새벽 0시 30분부터, 학생영화 단편 경쟁 섹션인 시네파운데이션의 <숨>(권현주)은 21일 오전, 감독주간 단편 부문에 초청된 정다희 감독의 애니메이션 <의자 위의 남자>는 22일 오후 선보인다.(계속)
칸/전찬일 아시아엔 칼럼니스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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