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9·11 테러가 부시에게 준 선물 “정보실패가 문제야, 이 바보야”

미국은 소련이라는 적이 없어진 후 방황했다. 새로운 적이 어디의 누구인가를 몰랐다. 1990년대 초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미국의 방위시스템은 북극을 통해 공격해 오는 소련을 향하고 있었다. 2001년 9월11일. 그날 그 시각 북아메리카 창공은 유난히도 비행기 여행하기 좋은 날씨였다. 민간 비행기는 약 4천대가 떠 있었다. 붐빈 상태가 아니었다. 쾌적했다. 그 가운데 4대가 하이재킹 당했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2001년 9월12일. 9.11 다음날이다.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테러리스트와 전쟁을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주 짧게. 지친 표정이었다. 대통령은 CIA 부장을 불렀다. CNN 뉴스 보도가 구체적이고 시의적절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부아가 난 상태였다.

“누가 이 짓을 했다고 부장은 생각하고 있소?” 사실 부시는 부장을 좋아했다. 전임 클린턴이 임명한 민주당 사람이었다. 그리스 이민 아들로 솔직했다. 부시와 기질이 맞아 그 자리에 그냥 눌러 앉게 했다.

테닛 부장이 답했다. 그는 숨기거나 속이거나 뒤로 빼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판단 중입니다. 알카에다 짓으로 보이고, 감이 오고, 냄새 납니다.”

부시가 고함치듯이 말했다. “맨날 첩보 놓치지 말고 좀 제대로 귀 쫑긋 세우시오!”

크고 긴 귀로 적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토끼를 닮으라는 거다. 상대방 해치지 못하는 것이 토끼다. 생명간수 즉 생명경영 도구가 바로 긴 귀다. 공격을 피하기 위한 정보수집 안테나가 바로 귀다.

미국은 소련이라는 적이 없어진 후 방황했다. 새로운 적이 어디의 누구인가를 몰랐다. 1990년대 초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미국의 방위시스템은 북극을 통해 공격해 오는 소련을 향하고 있었다. 2001년 9월11일. 그날 그 시각 북아메리카 창공은 유난히도 비행기 여행하기 좋은 날씨였다. 민간 비행기는 약 4천대가 떠 있었다. 붐빈 상태가 아니었다. 쾌적했다. 그 가운데 4대가 하이재킹 당했다.

영공 지키는 미 공군비행기는 모두 7개 기지에 단 14대뿐이었다. 5개 기지의 10대는 비행장에서 출동 대기, 2개 기지의 4대가 체공 중이었다.

단 4대로 그 넓은 미국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4대 중 2대의 F-16은 긴급발진훈련 중이었다. 무기를 싣지 않았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소련 붕괴 후 훈련은 비무장으로 전환됐다. 나머지 2대는 F-15는 무장했다. 미사일은 4기만 보유했다.

공항 관제사들이 여객기 납치를 눈치챘다. 뉴욕 관할 방공사령부(NORAD)에 통지했다. 방공사령부에서는 출격을 지시했다. 민간 항공기 공격은 대통령 허가사항이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허가는 나중, 사령관인 내가 책임진다. “격추시키라!” 명령했다. 전투기는 무기가 턱도 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조종사들은 기체로 부딪쳐 추락시킬 각오를 했다. 같이 죽는 선택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따라잡지 못했다. 붕괴되는 광경을 목도하고도 어느 하나도 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내내 고통스러웠다.

정보실패는 곧?국민보호실패

뉴욕시경(NYPD) 헬기 조종사는 연기 때문에 옥상에 착륙 불가능했다. 그래도 빈틈 찾으려고 선회했다. 포기해야 했다. 내가 살아 돌아온 전쟁터보다 더 한 죄책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비통함 속에서 현장을 벗어날 때 눈에 들어온 사람들이 타워 최상층 107층에 보였다. 거대한 굴뚝 속에서 연기를 피해 바깥 공기 마시려던 사람들이다.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타워 안 사람들도 봤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인 헬리콥터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여기 사람 있다고 옷 벗어 흔들었다.

죽은 사람들 목소리와 당시 안타까운 상황들이다.

(제인) “나갈 곳이 없다. 죽어 가고 있다. 엄마하고 통화하고 싶다. 보구 싶다.” 그러나 통화가 폭주해 연결되지 못했다.

(수잔) “신호는 왔다…노 서비스…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 실은 아주 짧았다. 드디어 흐느끼는 소리 들렸다. 그 옆에서도 누군가가 울고 있었다.”

(윌리엄) 아내 로즈는 전날(9월10일) 비행기로 LA 출장 갈 예정이었다. 이튿날이 남편 생일이었다. 안쓰러웠다. 아침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11일로 출발을 연기했다. 토스토에 달걀 먹고 나간 길이 너무 미안했다. 사랑 남기고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그는 집에 가는 게 두려웠다. 사무실에서 미적거렸다. 밤늦게 귀가했다. 새벽 1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베개 밑에서 메모를 발견했다. 집사람의 필체다.

“I love you. When you read this, I will be thinking of you and will be back on Friday.”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당한 후 탈출하던 그때, 소지품 가지러 다시 올라 갔던 사람들. 돌아오지 못했다. 죽었다. 동료 구하러 재차 들어간 사람들, 서로 부축하며 나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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