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2001년 시민혁명과 에스트라다의 몰락
서민출신인 에스트라다 대통령(Joseph Estrada, 1937~)은 1998년 집권 이후 광범위한 서민들의 지지 속에 ‘반과두정치’(anti-oligarch,? 소수자에 의한 정치지배에 반대함)를 기치로 내세우고 사회주의 정책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필리핀 내 미국상공인협회를 비롯한 외국인 사업가들과 필리핀상공인협회 등으로부터 반기업적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2000년 10월, Ilocos Sur의 주지사 Luis Singson이 필리핀에서는 역사가 오래된 노름인 ‘Jueteng’의 수익금을 대통령과 친인척들에게 상납했다고 폭로한 것을 계기로 상원과 하원에서 탄핵절차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지도자들과 전직 대통령들(아키노와 라모스)을 포함한 야당 정치인들은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하였다. 2000년 12월, 대법원장 주재로 21명의 상원 의원이 판사로 임명되어 탄핵재판을 시작했는데, 매일 증인들을 불러 TV로 생중계하였다.
얼마 후 5억 페소의 투자금이 연루된 ‘Jose Velarde’ 명의의 은행계좌의 실제 소유자가 에스트라다 대통령인지 아닌지가 탄핵재판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2001년 1월17일, 탄핵재판소는 은행계좌의 핵심 증거가 포함된 봉투를 개봉하는 문제로 이견이 생기자 상원의원들 간에 투표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찬성(탄핵 찬성 측) 10표, 반대(탄핵 반대 측) 11표로 나와 봉투 개봉이 무산되었다. (에스트라다가 물러난 한 달 뒤) 상원 의원장 (탄핵 찬성 측)의 제안으로 국내외 언론사들 입회 아래 봉투를 개봉하여 보니, ‘Jose Velarde Account’의 주인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아닌 Jaime Dichavez라는 인물로 확인되어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혐의를 벗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정권은 바뀐 뒤였고, 에스트라다는 다른 건으로 재판을 계속 받았다. 2001년 1월18일, EDSA 거리에 기업인들과 가톨릭교회가 후원하는 대규모 시위대들이 운집하였으며, (일부 지식인들은 ‘매수된 시위대’들이었다고 비난했다), 2001년 1월19일, 필리핀 경찰과 국방부의 일부 고위 간부들이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다.
2001년 1월20일, 토요일 정오 추기경과 다수의 야당 정치인들이 증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시위현장에서 대법원장에 의해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로요(Gloria Arroyo, 1947~ )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서했다. 선서식이 끝나자 EDSA 거리에 운집해있던 군중들은 신부들과 수녀들을 맨 앞줄에 내세워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물리적으로 대통령궁에서 끌어내자고 외치며 대통령궁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Arroyo는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로부터 축하 전문과 함께 신임 대통령으로 인정받았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아로요 부통령의 대통령직 승계선언에 대해 법적, 헌법적으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지만, 시위대들이 대통령궁 담을 넘어 오더라도 발포하지 말라고 경호원들에게 당부하고, 자신과 가족은 대통령궁을 떠나 잠시 사저에 돌아가 있겠다고 발표하였다. 오후 2시경,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대통령궁을 에워싼 지지자들의 통곡 속에 남아있던 각료들과 경호 요원들, 기자들에게 일일이 악수하고, 대통령궁 뒤쪽 Pasig 강가에 마련된 경비정에 대통령과 가족들이 승선하여 대통령궁을 떠나는 장면이 생중계되었다. 그 후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으며, 2007년 10월26일 사면 복권되었다.
두 번째의 EDSA 혁명에 대한 비평가들은 “정치 가문과 재벌, 군 고위직 그리고 하이메 신 추기경의 모의에 의한 봉기”라고 분석한다. 외국의 비평가들도 이 봉기는 ‘법 절차의 패배’, ‘군중의 사태장악’, ‘쿠데타’라고 표현한다. 부통령은 대통령이 사망, 사임 또는 부적격판정을 받았을 경우에만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지만, 이 사태는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2008년 1월18일, 에스트라다가 속한 정당은 전국 일간지에 2차 EDSA 혁명은 헌법 유린이며 필리핀 민주주의에 훼손을 가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전면 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는 전 세계의 유력 일간지에 소개되었으며, 당시 대법원판사 Cecilia Mu?oz Palma도 EDSA II는 헌법을 위반하였다는 의견을 냈다. 2008년 2월, 가톨릭교회의 주교 및 일부 지도자들은, EDSA II가 발생하였을 때 교회의 참여와 역할에 대해 사과하였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의 경제 실적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1997년도 아시아에 불어 닥친 외환 위기로 인해, 1998년도 에스트라다 대통령 취임 당시 경제성장률 -0.6%였던 것이 1999년에 3.4%, 2000년에 4%로 점차 회복되었다.
?전임 라모스 대통령이 떠나면서 남긴 파산 상태의 국가재정과 0%의 농업생산, 12%의 물가상승률, -0.5%의 국민총생산률을 아시아 국가들이 아직 경제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도 집권 2년 동안 6.6%의 농업 생산성, 3%의 물가 상승률, 3.2%의 국민총생산률을 달성하여 국가경제를 크게 호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