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정복국 스페인·미국에 반감 안갖는 이유?

필리핀 사람들은 370여년간 스페인, 50여년간 미국 식민통치를 받았으나 스페인과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 대륙에서는 1억명에 가까운 원주민들을 전쟁과 전염병으로 학살하고, 그들의 토지를 빼앗았다. (이웃인 중국도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지역을 점령하면서 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추방하였다) 그러나 스페인과 미국은 필리핀에서 대규모 학살 또는 추방행위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종적인 혼합 과정이 계속되었다.

둘째, 스페인과 미국의 정복자들은 필리핀 토착지배층들인 족장 및 촌장들을 다스리며 회유와 결혼 등의 형식을 취하였기에 대규모 토지 강탈이 발생하지 않았고, 지배층의 문화가 대대로 유지되고 강화되었다. 또 피지배층의 생활과 문화 역시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정복자들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구체제를 유지함으로써 필리핀 사람들의 사상을 더욱 보수화시켰다. 팽두이숙(烹頭耳熟)이란 말이 있다. 1678년 홍만종(1643~1725, 조선시대 실학자)이 지은 잡록에 나온다.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다”는 뜻으로 두목을 다스리면 그 나머지 졸개들은 저절로 복종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홍만종과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이 살았던 그 당시 시대의 상식이었던 모양이다.

셋째, 스페인과 미국 덕분에 원시적 부족 생활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통일을 이루어 문명화되었다고 꾸준히 교육하고 있다. 또한 완전한 자주독립이나 무력항쟁보다는, 식민 종주국가로부터 자치권과 동등한 지위보장에 더욱 역점을 두었던 호세 리잘(1861~ 1896)을 필리핀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교화(주입)시킴으로써, 식민 종주국가들에 대한 반감을 희석시키고 있다. 교화는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가진 지배층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민들을 지도하고 선도하는 것으로서 중요한 통치의 원리로 이용되고 있다.

스페인 식민시대 이후 최근(1960년대까지)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이 일본 다음으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우리(서민)들이 알고 있는 450년의 역사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1950~1970년대 한국이 얼마나 처절하게 가난한 나라였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1980년대 이후에야 두각을 나타낸,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국 또는 일본과 거의 비슷한 인종이지만 그들의 지배를 받아 온, 신생국가 정도로 알고 있다.

한국이 5000년 역사를 가졌다면, 필리핀 지배층(스페인계 지배층)들은 그리스·로마 시대 이전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유럽 역사의 자손들이다. (미국계 지배층들은 미국 역사의 자손들, 중국계 지배층들은 중국 역사의 자손들이라고 생각한다) 필리핀 지배층 조상들이 필리핀을 정복할 무렵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거나 중국과 일본에 패배한 ‘열등민족’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도 500여년 동안 우리(지배층)들이 기억할 만한 어떠한 힘도 영향력도 없었으며 세계 역사에 참여하지 못했던 나라였다.

민주화시위가 벌어지는 장면이 거의 매일 보도되었던, 1979년의 부마항쟁과 1980년 광주항쟁 그리고 그 후 끊이지 않은 폭력 투쟁, 1987년 6월항쟁 및 북한의 핵무장 등, 1980년대 이후에서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즉, 한국이 세계사에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겨우 3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을 지배했고 필리핀을 지배한 우리(지배층)들의 역사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그러나 독재 권력에 무력과 단결로 맞서는 남한 시민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고 장차 대단한 나라가 될 것임을 감지하게 되었다.

영국의 부유한 실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유명한 여성사회학자인 비어트리스 웨브(Martha Beatrice Potter Webb)는 1911년에서 1912년 사이에 아시아를 여행하고 난 뒤 쓴 글에서 한국인을 이렇게 묘사했다. “더러운 진흙집에서 살면서, 활동하기 불편한 더러운 흰옷을 입은 채 이리저리 배회하는 불결하고, 비천하고, 무뚝뚝하고, 게으르고, 신앙심이 없는 미개인 1200만 명.” 개화기 때부터 한국에 진출했던 미국인 선교사들도 미국에 전한 한국 관련 정보는 대부분 위와 비슷하게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기간 중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이 자치정부를 구성하는데 20년 내지 30년은 걸릴 수 있다며 한국을 ‘핵심적 가치가 없는 열등국가’로 평가했다.

해방 후 미군 점령군 사령관 육군 중장 존 하지(John R. Hodge)는 한국에 파견될 미군을 상대로 한국을 혐오하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우리가 두려워(혐오)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설사(다이어-리아), 둘째는 임질(고오너-리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코-리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도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에서 그 자신의 민족을 비하하는 표현을 했다. “천년의 역사는 개신(改新)되어야 한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는 한 마디로 말해서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연쇄사이다…. 이 모든 악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는 차라리 불살라 버려야 옳은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과 서구인들, 그리고 친일파 한국인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 폄하하는 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거나 변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리핀의 현재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리핀의 역사를 살펴본 것과 같이, 과거(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의 나약했던 원인을 살펴서 반성하고 한국의 현재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청년들이 진취적인 의식과 진보적인 역할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이 세계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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